2016년에도 2019년에도 변하지 않는 질문 

대형 통신사들이 케이블 방송을 인수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 인수 국면은 기업들의 입장에서 시장의 재편과 자본의 흐름으로만 이야기 되거나 국내 OTT 서비스를 키워 넷플릭스 같은 해외 OTT 서비스와의 경쟁에 대비하겠다는 정부의 야심찬 계획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런 계획 속에서 시민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2016년의 인수에 관련한 논의와 비교해보면 SKT의 인수합병에 반대하며 LGU+와 KT가 내세웠던 ‘나쁜인수’가 소비자들의 권리를 뺐고 질 낮은 콘텐츠를 양산할 것이라는 반대 논리는 2019년에는 없다. 사실상 주요한 내용은 바뀌지 않은 인수합병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금은 KT와 LGU+도 저마다 케이블 방송사들을 인수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지금은 그 때와 다른 ‘좋은인수’인가? 유료방송의 공공성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필요 없는가? 유료방송 산업은 그저 국가 산업일 뿐인가? 그렇지 않다. 방송은 여전히 시민들의 권리이며 그의 공공성은 여전히 추구해야 할 가치이다. 정권이, 상황이 바뀌었다고 방송이 담보해야 할 공공성에 대한 의무가 약해지지는 않는다.  

케이블 방송사들이 처음 운영을 시작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지역성을 케이블 방송사 운영 및 콘텐츠에 반영한다는 전제로 서비스가 구상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케이블 방송사들의 지역별 편재가 가능했으며 지역에서 가입자들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전제 조건 때문이다. 대형 통신사들이 진정으로 소비자들을 위한 서비스를 실현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이 바로 케이블 방송의 전제조건인 ‘지역성’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이것은 2016년에도 2019년에도 변하지 않는 질문이다.     

▲ SK브로드밴드, CJ헬로 등 통신사와 지역케이블 노동자들로 구성된 희망연대노조가 “통신 대기업 배터질때 지역 케이블은 죽어간다”고 적은 플래카드를 들고 서울시청에서 청와대까지 행진했다. 사진=이정호 기자
▲ SK브로드밴드, CJ헬로 등 통신사와 지역케이블 노동자들로 구성된 희망연대노조가 “통신 대기업 배터질때 지역 케이블은 죽어간다”고 적은 플래카드를 들고 서울시청에서 청와대까지 행진했다. 사진=이정호 기자

케이블방송에서 ‘지역’이 없어진다면

그러나 케이블 방송의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지역성’ ‘지역성의 반영’은 대형 통신사들이 저마다 케이블 방송사 인수에 나서며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태에서 인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어떨까? 상상해보자. 

지역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통로는 지금보다 더 적어질 것이다. 지역 주민들은 지역 소식을 방송에서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동시에 소비자로서의 권리 또한 침해받을 수 있다. 사업자 전환 과정에서 소비자들은 가입자 숫자로만 환산되기 때문에 그러한 우려가 발생한다. 그 우려들을 좀 더 들여다보자.

우리가 매일 뉴스에서 보는 ‘사회문제’들은 어쩔 수 없이 특정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서울 강서구의 특수학교 문제, 동작구의 노량진 수산시장을 둘러싼 갈등, 인천시의 수돗물 문제, 경기도 시흥의 어린이집 학대 등 다소 부정적인 이야기 뿐 아니라 성동구의 상가임차인과 건물주간의 상생협약, 종로의 우수 도시재생 사례등 모두 지역에 속해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식들은 메이저 언론에서 간단한 소식으로 다루어지는 가십인 경우가 많다. 지역주민들이 이러한 정보들에 깊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문제이고, 해결하려는 노력은 있는지, 구청이나 시청등의 입장은 어떤 것인지, 지역 구의원 시의원들의 반응은 어떤 것인지 말이다. 지역의 주민으로서 지역의 소식에 방송을 통해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권리를 잃어버리게 되는 형국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은 유료방송 사업자들의 가입자 빼내기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은 채 사업자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사업자들은 소비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당연한 듯 가입자 정보를 공유하고 그것을 가지고 영업을 하거나 케이블 방송의 가입자를 본인들의 서비스로 끌어가려는 가입자 빼가기의 대상이 될 것이다. 

시민들에게 미디어에 대한 권리-방송에 대한 접근성, 방송의 지역성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유료방송 사업자에게 그러한 권리-공공적 책무를 무시할 권리, 이익을 중심으로 가입자의 정보를 다룰 권리-가 없다는 것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시민들에게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책을 알 권리가 있다. 지역의 소식을 전하는 채널을 가질 권리가 있다. 그 채널을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리고 자신이 주로 시청하는 유료방송을 선택할 권리도 있다. 

시민들의 것은 시민들에게로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지난 4월 초 강릉의 속초, 고성에서 산불이 일어났을 때 지역 케이블 방송사인 CJ헬로 영동·영서·강원 방송은 강원도 지역 대형 산불 사고를 맞아 30시간 연속 특별보도 체계를 가동했다. 실시간 재난 정보등을 성실하게 제공해 지역 방송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KBS 제주방송총국의 사례도 모범적이다. 지역의 뉴스는 수도권 뉴스 다음으로 밀리는 것이라는 통념을 깨고 지역의 소식을 전면에 배치하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 지난해 12월부터 매주 목요일 한차례 지역뉴스 시사 종합프로그램인 ‘7시 오늘 제주’를 방송했다. 7시 오늘 제주는 온전히 제주만의 소식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제주도의 방언이 방송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모습도 지역성을 반영하는 방법으로 시도되고 있다. 

이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림이 ‘7시 오늘 제주’에 대한 제주 시청자들의 시청 행태와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만족도 점수는 평균 70.7점으로 나왔다. ‘영상이나 화면이 좋다(72.3점)’, ‘믿을 수 있다(71.5점)’, ‘중요한 사회이슈를 잘 다룬다(71.2점)’, ‘내용이 충실하다(71.1점)’, ‘신속하다(71점)’는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 관련 기사 : 미디어오늘) ‘KBS제주 ‘반란’과 같은 새로운 실험 통했다‘ ]

지역의 이슈가 지역민들에게 어떤 소구력을 가질 수 있는지 단적으로 드러난 예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사회의 다양성을 추구한다. 사회에서 좋은 가치라고 인식되는 ‘개성’ ‘창의성’도 그 다양성 하에서 존재할 수 있다. 더 많은 지역의 이야기, 지역에서 필요한 직접적인 정보와 소식을 추구하는 것도 그 ‘다양성’ 추구의 한 방향이다. 

이러한 모범 사례를 통해 배워야 한다. 케이블 방송을 인수하려는 통신기업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사례의 확장을 통해 자신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지역 주민들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편성에서 일정 비율 이상의 지역 콘텐츠 편성, 각 지역 방송국에 자체제작기반 제공,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기회 확대등의 기준이 인수 이전에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에 투자를 해야 한다. 투자 없이 이익만을 얻을 수는 없다.  

앞으로의 유료방송 역시 지역의 이야기를 필수적으로 해야한다. tbs 라디오의 경우 “우리동네 라디오”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에 네트워크를 둔 지역 미디어들과 협력 하고 있다. “지역의 소식을 전한다”는 기획으로 현재 일주일에 5일 방송으로 100회를 맞이하기도 했다. 이런 사례는 tbs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을미디어 활동가, 마을 활동가, 지역 시민 단체, 봉사단체, 청소년단체들을 케이블 방송의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 그들을 위한 방송, 그들에 의한 방송에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케이블 방송의 인수 합병 문제는 지역 케이블 방송사들이 왜 지역에 존재하는가? 왜 지역을 기반으로 두고 운영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피해갈 수 없고, 피해서도 안 될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