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의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블록체인’은 아직 우리 곁에 오지 않은 느낌의 단어다. 그런데 블록체인은 자체의 느낌보다는 ‘비트코인’이라는 암호화폐의 대명사로 찾아왔고, 많은 이들에게 그렇게 각인됐다. 그럼 본질은 무엇일까. 현직 기획재정부 공무원인 이차웅 과장이 쓴 <블록체인, 플랫폼혁명을 꿈꾸다>를 보면 그 사실에 근접할 수 있다. 

그는 ‘비트코인’ 등을 ‘지불토큰’이라고 특정하고, 이것은 블록체인의 한 부분일 뿐 본질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오히려 지불토큰의 열성적인 지지로 인해 블록체인이 냉소가 된 것을 지적하면서, 손가락(지불토큰)이 아닌 달(블록체인 플랫폼)을 보라고 말한다. 

그는 블록체인을 ‘디지털 데이터’와 이것을 원료로 만든 ‘디지털 서비스’, 그리고 그 서비스가 거래되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구분한다. 특히 블록체인이 가진 플랫폼으로 기능을 설명하고, 이 분야에서 글로벌 선도국이 되기 위해 사활을 다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한국이 IMF관리체제에 들어가는 시기에 대학에 입학해, 행정고시를 통해 2000년부터 기획재정부에서 일한 국제금융통이다. 공직에서도 국제금융이나 외환 분야를 다루었고, 영국과 미국 경험을 통해 국제적 감각도 키웠다. 특히 IMF에서 이코노미스트 등으로 활동하면서, 국내 재경 분야에서 드문 외환 전문가다. 
저자가 밝힌 이 책의 핵심은 세가지다. 우선 블록체인이 플랫폼 세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저력이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 가능성을 현실화하려면 우선 블록체인 기술의 ‘생존퍼즐’을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블록체인 플랫폼 앞에 놓인 ‘3대 장벽’을 넘는 것이다. 

그럼 그는 왜 블록체인이 세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혁명적 도구라고 생각할까. 그는 우선 블록체인이 쉽게는 디지털 데이터의 기록, 저장, 활용하는 기술이라고 본다. 특징이 있다면 ‘분산형 디지털 관리기술’이라는 것이 더해진다. 비트코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기존에는 화폐의 데이터를 중앙은행이나 시중은행이 발행하고 관리했다면 비트코인은 각 개인의 컴퓨터에 암호화된 데이터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 쉽게 이해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데이터의 교류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데이터를 분산해 관리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세상 모든 부분에서 적용되는 플랫폼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 저자가 말하는 ‘생존퍼즐’은 무엇일까. 이것 역시 세상에 통용되는 비트코인의 사용에서 알 수 있다. 비트코인의 경우 데이터기록이 확정되는 데 최소한 한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된다. 만약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한시간 가량 기다리라면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비트코인이 성공하려면 처리속도, 관리비용 등의 효율성이 충족한 가운데, 데이터 신뢰도, 시스템 안정성, 탈중앙화라는 3대 강점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72페이지 ‘블록체인 혁명의 시작’에서 말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저자는 기존 블록체인이 기술에 기반한 분산형과 데이터 관리에 둔 것이라면 향후에는 탈중앙과 플랫폼을 철학으로 한 ‘블록체인 플랫폼’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블록체인 플랫폼’은 모든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매개체다. 장소가 될 수 있고, 네트워크 상의 시스템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플랫폼기업은 애플, 아마존, 알파벳, MS, 페이스북 등이다. 이들은 이미 세계 시가총액 상위 5개 기업이다. 한국에서라면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이 해당할 것이다. 오프라인에서는 쇼핑, 운동, 문화를 한꺼번에 누리는 스타필드 같은 장소가 플랫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는 ‘블록체인 플랫폼’은 이렇게 거대한 기업이 세계를 발아래 두려는 기세의 거대한 플랫폼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탈중앙화’가 전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이런 중앙화된 플랫폼을 쫓으려하면 미국이나 중국이 이끄는 거대한 플랫폼 파도에 휩쓸릴 가능성이 크다. 

▲ 《블록체인, 플랫폼 혁명을 꿈꾸다 |이차웅 지음|나남 펴냄| 368쪽|2만4000원》
▲ 《블록체인, 플랫폼 혁명을 꿈꾸다 |이차웅 지음|나남 펴냄| 368쪽|2만4000원》

그래서 그는 한국형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그는 블록체인 경제의 핵심 경쟁력은 데이터 관리와 컴퓨팅의 탈중앙화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이를 토대로 플랫폼 참여자에게 더 큰 이익을 분배하는 이상적인 규칙들의 조합에 있다고 본다. 일종의 거버넌스인 이 조합이 바로 ‘블록체인 플랫폼’이라는 것이다. 이 플랫폼은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경청하고 이들의 이익을 충실히 보장하기 위해 변화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절대적인 국가권력이나 독점적인 거대자본이 설계한 하향식이 아닌, 구성원이 스스로 설계하고 구현해나가는 민주적·자율적 플랫폼(거버넌스)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은 지금 진행되는 플랫폼 경쟁에 대입해보면 쉽게 느낄 수 있다. 세계는 이미 양대 플랫폼 상황으로 가고 있다. 아마존이나 구글, 유튜브 등이라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오랜 패권국가인 미국이 뒤에 있다. 반면에 바이두, 탄센트, 알리바바 등이 주축이 된 중국 플랫폼은 미국 주도의 플랫폼을 저항하기 위해 벽을 세우고 자신들 주축으로 생태계를 세우기 위해 노력한다. 미중 패권 전쟁은 무역이나 군사 등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내면에서는 4차산업혁명의 미래를 담고 있는 정보 경쟁의 성격도 명확하다. 

저자는 한국이 이들의 판에서 방황하기 보다는 독자적인 블록체인 플랫폼을 만들어야 하고, 그럴 수 있는 기초가 있다고 역설한다. 그는 독일이 추진한 ‘플랫폼 인더스트리 4.0’ 같은 민간주도의 상시적인 혁신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장이다. 열린 싱크탱크나 열린 포럼 등의 방식으로 진행될 이런 활동을 위해 민관이 손을 모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이 이런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예상외로 많다. 우선 네덜란드나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 하고 있는 허브 국가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나라들은 농업이나 어업, 화훼, 식품 등에서 주변 강대국들을 상대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책 79페이지에서 시작되는 ‘플랫폼과 데이터 관리’의 시작에서 소개하는 전남의 한 농촌마을이 그런 예다. 이곳에서 짓는 농사는 스마트한 기계와 시설을 관리하는 네덜란드 농업서비스 회사를 이용하고, 판매도 B2B 플랫폼을 이용할 경우 효율성은 높아진다는 것이다. 특히 생산물 정보나 날씨 등의 빅데이터를 결합하면 가장 효율적인 부가가치가 나오는 농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 역시 ‘농산업 플랫폼’이라고 이름 붙인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단순히 고객 만족 차원을 넘어 인류 보편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플랫폼 모델이 될 것으로 본다. 

그 과정에서 가장 경계할 것은 ‘반칙기술’이 사용되는 플록체인이다. 실제로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지불토큰은 블록체인이 만들어지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금융 기능을 우선적으로 내세웠다. 결국 결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트래픽 등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최근 큰 주목을 받고 있는 페이스북의 지불토큰인 ‘리브라’의 등장도 주먹을 끈다. 하지만 ‘리브라’는 달러 같은 법정화폐와 가치를 연동한 스테이블코인이다. 당연히 미국 정부나 달라를 발행하는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의 갈등을 막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실제로 이런 장치를 두었음에도 세계 정부는 리브라에 부정적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들이 주도하던 금융권력을 페이스북이 일정 부분 가져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리브라가 통용될 경우 각 국가들이 수행하던 환전, 거래수수료 등은 사라질 수 있다. 

무역 갈등으로 시작된 미중 패권전쟁은 갈수록 확전태세다. 일본 역시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에 대한 주요 소재 수출금지를 통해 한국 경제를 위협한다. 이런 상황은 부분적으로 나아질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해소되기 어렵다. 흔히 말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처럼 자신을 대적할 새로운 강대국을 막을 수 밖에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저자가 말하는 플랫폼 전쟁이기도 하다. 한국이 미국 주도의 정보 세상(구글, 페이스북)에 갈 것인지 중국 주도의 세상(알리바바, 바이두, 트립)에 가는지 두 나라는 눈을 부릅뜨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이 어떤 5G 기술과 같이할지는 두 나라에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기존의 한 플랫폼을 선택하기 보다는 힘들더라도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구한말 우리 선조들이 스위스 같은 중립국을 선택하고자 했지만 실패했던 길이다. 그 실패는 일제 강점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지금의 시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정부의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는 기재부의 공무원이기도 한 저자는 이미 시작된 플랫폼 전쟁에서 우리만의 길을 찾자고 역설한다. 

조창완 서남해안기업도시개발 상무, 문화산업상생포럼 부의장, 출판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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