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숙해지면 형님(운전기사)들이 바뀐다. 사회부·사진부에서 몇 년 일하면 전화번호 수십 개가 저장돼 있다.” 한 연합뉴스 기자가 2년마다 바뀌는 차량 운전기사를 두고 말했다. 취재진 이동 지원은 수십 년 지속됐고 앞으로도 필요하지만 기사들은 최대 2년까지만 일한다. YTN에서 연합뉴스로, 연합뉴스에서 지역지로, ‘파견직’ 운전기사들은 2년마다 메뚜기처럼 이동한다. 

#. “MBC 취재차량 운전기사 면접에 불합격하셨습니다.” 13년 동안 MBC 취재차를 몬 A씨는 2018년 12월28일 ‘해고’ 문자를 받았다. 계약 갱신 3일 전이었다. 위탁업체가 올해부터 바뀌며 새 업체가 면접을 치렀고 42명 중 10명이 불합격했다. 열에 아홉이 5년 넘게 MBC에서 일했고 10년 이상 일한 기사만 셋이었다. A씨는 “10년 넘게 일했는데 하루아침에 추풍낙엽이 됐다”고 말했다.

언론사 취재차 기사들 사이에서 “언론사가 비정규직 정책 비판 보도보다 내부 문제 해결부터 앞장 서 달라”는 토로가 나온다. 기사들 대부분이 외주위탁업체나 파견업체에 고용돼 있어 고용 불안정에 그대로 노출된다는 지적이다. 최근엔 인력 충원 없이 렌터카 차량 계약이 늘어나면서 고용 안정 보호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한 취재지원 차량 윈드쉴드에 '보도차량' 안내문구가 붙어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한 취재지원 차량 윈드쉴드에 '보도차량' 안내문구가 붙어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국회에 주차된 YTN 취재지원 차량. 국회는 대부분 방송사가 고정 취재차량을 배치한 출입처다. 사진=김용욱 기자
▲국회에 주차된 YTN 취재지원 차량. 국회는 대부분 방송사가 고정 취재차량을 배치한 출입처다. 사진=김용욱 기자

 

A씨와 동료들은 당장 생계가 급해 부당해고 다툼을 할 여유가 없었다. 한 기사는 대리운전을 뛰었고 한 기사는 ‘2년 파견직’인 또 다른 언론사 기사로 재취업했다. 연합뉴스 운전기사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부터 총 7명이 파견기간이 다해 퇴사했는데 한 기사는 4개월 째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외견상 부당해고를 주장하기 힘든 사정도 영향을 줬다. A씨는 외주업체에 고용된 용역노동자다. MBC 측은 “운전기사 인사 문제는 외주업체 고유 권한”이라고 했고, 외주업체 제니엘이노베이션은 “면접이라는 합리적 평가를 거친 결과”라고 밝혔다. 도급계약상 원청인 MBC는 고용 책임 주체가 아니며, 위탁업체는 용역 수행을 맡았지 기존 기사 재고용까지 계약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기사 파견 계약(근로자파견계약)도 합법 틀을 갖췄다. 파견법은 ‘근로자 파견은 1년을 넘지 못하지만 파견업체와 사용업체의 합의가 있을 땐 1년 연장할 수 있고 2년을 초과하면 사용업체가 파견근로자를 고용했다’고 본다. 즉 2년까진 직접고용 의무 없이 파견 기사를 쓸 수 있다. 연합뉴스 기사들이 2년까지만 일하는 이유다. 

내막을 보면 탈법 정황이 적지 않다. A씨는 13년 동안 1년 단위 기간제로 13번 고용계약서를 썼다. 소속 업체만 3번 바뀌었지 업무 환경은 같았다. 기사들 업무 시간·공간을 MBC 지휘·감독 없이 정할 수 없어 정상적 도급계약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직접고용 의무를 피하려 도급업체를 활용한 ‘위장도급’ 정황이다. 

대법원은 2016년 11월10일 상시·지속 업무를 2년 넘게 한 기간제 근로자의 ‘계약 갱신 기대권’도 인정했다. 사용자가 “이 기대권이 인정되는 자를 합리적 이유 없이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면 부당해고”다. 업체가 바뀌어도 고용을 승계해야 한다는 지침도 있다. 고용노동부는 2012년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에서 공공부문 단순노무 용역노동자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 승계하도록 정했다.

MBC 기사들은 이미 4년 전 고용 승계를 용역업체와 약속한 적이 있다. 2014년 12월29일 외주업체가 제니엘에서 성원개발(현 맥서브)로 바뀌기 이틀 전 기사들 노조인 언론노조 MBC분회는 성원개발과 “MBC 분회 조합원 전원 고용 승계한다”는 합의서를 썼다. 

당시 상황을 아는 전직 기사 B씨는 “안광한 전 MBC 사장 이후부터 고용 승계 약속 관행이 없어졌다”며 “원청이 고용 승계에 의지가 있으면 외주업체 계약에 당연히 반영된다. 교섭 중 실제 그런 말을 위탁업체로부터 들었다”고 밝혔다. 

▲2014년 12월29일 MBC 취재차량 운전용역을 위탁받은 업체와 노조와의 합의서. MBC와 외주업체가 계약서를 쓰기 직전 작성된 합의서다.
▲2014년 12월29일 MBC 취재차량 운전용역을 위탁받은 업체와 노조와의 합의서. MBC와 외주업체가 계약서를 쓰기 직전 작성된 합의서다.

 

이는 MBC만이 아닌 언론사 대부분의 문제다. 운전기사를 직접고용한 언론사는 매우 드물다. 미디어오늘이 22개 일간지·주간지·방송사를 조사한 결과 기사를 직접고용한 언론사는 시사인(1명), 뉴시스(2명) 밖에 없었다. 나머지 20개사는 외주업체에 맡겼다. KBS와 조선일보는 각각 손자회사와 자회사를 통해 기사를 고용해 고용 안정 정도가 더 높았다. SBS 한 기사는 “다행히 2014년부터 지금까지 업체가 바뀌지 않아 고용이 유지됐지만 언제 바뀔지 모를 일”이라 말했다. 

‘렌터카 차량’이 늘면서 기사들 불안감은 더 크다. IMF 외환위기 후 정규직 운전직들이 대부분 용역노동자가 됐다면 지금은 외주업체 인력마저 줄고 렌트카 소속 기사 비율이 늘고 있다. 한 KBS 기사는 “수년 전 용역기사와 렌트카 기사 비율이 8대2였다면 지금은 5대5와 6대4 사이”라며 “인력은 자연 감소하고 충원은 안 되는데, 그만큼 렌터카 시장이 커져 불안감이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는 이런 사정을 고려해 운전기사 정규직화를 시도했으나 무산됐다. 지난 1~2월 연합뉴스 차량부 기사들은 ‘이르면 3월1일 연합뉴스 자회사인 연합미디어 정규직으로 채용이 된다’는 계획을 차량부를 통해 들었다. 본사 소속은 아니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고용이었다. 그러나 2월 말 돌연 중단됐다. 연합뉴스는 “고용 안정 보장을 위해 파견 근로자 신분의 운전직 근로자를 자회사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위장도급 가능성이 제기돼 불가피하게 중단했다”고 밝혔다. 

이후 기사들 불만이 터져 나왔다. 당시 차량부에선 “2년마다 사람이 잘리는 걸 보고만 있을 거냐”, “무기계약직 추진은 불가능한 것이냐” 등 항의가 분출했다. 

오달록 언론노조 KBS본부 방송차량지부장은 “외주업체 경우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기사들은 표적이 돼 계약 갱신이 어려워진다. 업체는 ‘합리적 평가’라며 해고하면 그만이고 그래서 동료가 잘려나가도 쳐다보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계속 대물림 되게 놔둘 것이냐. 언론사들도 내부 비정규직 문제를 등한시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부당해고된 운전기사, 복직 1년 뒤엔 ‘합법 해고’

2년 마다 입찰, 용역노동자 ‘해고 사각지대’

취재차 운전기사들은 “외주업체 기사 자르기는 누워서 떡 먹기”라며 올해 퇴사한 한 MBC 기사 사례를 꺼냈다. 회사 쪽에 ‘문제의 운전기사’로 찍혀 부당 해고된 뒤 복직 1년 만에 외주업체 변경과 동시 자동 퇴직한 기사다. 기사들은 ‘고용 승계 없는 입찰’이 고용 불안 핵심이라 지적한다. 

2011년부터 MBC 취재차를 몰았던 황지석(51·가명)씨는 지난해 12월31일 8년 근무 끝에 퇴직했다. 올해부터 2년간 운전 업무 입찰을 딴 A업체가 면접 심사 후 그를 불합격 처리했다. 계약갱신 3일 전 불합격했단 문자 통보가 다였다. 

그는 고용계약만 1년 단위로 썼지 정규직이었다. 8년 동안 1년짜리 고용계약서를 8번 썼지만 ‘상시·지속 업무를 2년 넘게 한 기간제는 정규직으로 본다’는 대법 판례가 있다. 

황씨는 용역업체가 바뀌며 해고됐다. 그는 기존 업체 정규직이지 새로운 A업체 직원이 아니었다. 불합격이 해고라 주장해도 A업체는 ‘신규 채용 탈락일 뿐’이란 입장이다. MBC는 통상 한 업체와 4년 계약했다. 8년 일한 황씨는 2번의 업체 변경을 거쳤고 운전기사 대부분이 노사 합의로 고용 승계됐다. 올해 노조는 고용 승계를 적극 주장하지 않았다. 기사 10명이 해고됐고 빈  자리는 새 인력으로 채웠다. 

▲황씨의 부당해고 구제신청 과정 중 제출된 진술서들. 왼쪽은 회사의 강요에 의해 '해고에 동의한다'는 청원서를 작성했다고 고백한 직원의 확인서고 오른쪽은 회사가 증거로 제출한 '해고 동의 청원서'다.
▲황씨의 부당해고 구제신청 과정 중 제출된 진술서들. 왼쪽은 회사의 강요에 의해 '해고에 동의한다'는 청원서를 작성했다고 고백한 직원의 확인서고 오른쪽은 회사가 증거로 제출한 '해고 동의 청원서'다.

 

방송차량 기사들은 이 사례를 ‘대량 표적 해고’라고 말했다. 황씨를 비롯한 일부 기사들이 기존 업체와 갈등을 빚은 인물들이었다. 황씨는 2017년 4월까지 2년 간 노조위원장을 맡았고 통상임금 청구소송 등 직원 권익을 위한 행동에도 적극 동참했다. 그러다 노조 임기를 마친 바로 다음 해 해고됐다. 곧장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한 그는 4개월 후 복직했다.

기사 해고가 얼마나 쉬운지 해고 과정에서 드러났다. 회사가 평가한 황씨의 근태 실적, 근무자세 평가 등은 비합리적으로 낮았다. 황씨는 “출근 지문을 등록 못한 날 실장에게 구두 보고했으나 (기록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했다. 40여명 직원 대부분이 ‘황씨의 근태와 인간 관계가 좋지 않아 해고에 동의한다’는 진술서를 회사에 제출했다. 단 한 명만 ‘회사 강요에 의한 진술서’라 증언했는데 올해 1월 황씨와 함께 강제 퇴직됐다.

황씨는 “회사가 인사고과를 충분히 자의적으로 매길 수 있는데, 단순히 ‘면접에서 탈락했다’는 새 업체 말도 신뢰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전 업체에서 황씨와 부당해고로 갈등을 빚은 박아무개 소장은 새 업체 소장으로 고용 승계됐다. 

인력 감축에도 속수무책이다. 일례로 MBC 차량기사는 2003년 90여명에서 2006년 75명으로, 2018년 42명으로 꾸준히 줄었다. 원청사가 인력 자체를 줄여 입찰 공고를 올리면 외주업체는 그만큼 기사를 해고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용역업체가 맡던 발전차·스태프차 업무는 2014년께 MBC 중계부로 이관됐다. 여덟 명분의 임원차 운전도 2017년부터 파견업체 직원이 맡았다. 취재차량 운전을 외주업체 위탁하는 언론사 대부분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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