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어려운 노동상담이 있다. 바로 직장 내 괴롭힘 상담이다. 서울노동권익센터에도 상사나 동료에게 괴롭힘 당한다는 전화가 자주 온다. 사소한 갈등을 계기로, 사직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인센티브나 연차 같은 자기 권리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괴롭힘이 시작된다. 괴롭힘의 대상이 된 노동자는 폭언, 업무배제, 불합리한 업무지시, 물건을 집어던지기까지 하는 공포 분위기,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 상황에 직면해 있다. 

출구 없는 괴롭힘에 우울증과 공황장애 같은 정신질환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퇴사를 결정하기도 쉽지 않다. 50~60대 중장년층은 이 나이에 갈 곳도 없다고 하소연 한다. 20~30대도 만성 구직난에 마찬가지 상황이다. 상처만 잔뜩 받고 퇴사하자니 억울하기 짝이 없다. 

노동자들은 ‘서울노동권익센터’니까 노동법 전문가니까, 해답을 구한다. 오는 15일 전까지는 어느 법에도 ‘직장 내 괴롭힘’ 개념이 없었다. 발생한 피해를 민·형사소송에 끼워 맞추는 식이었다. 형사상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로 고소하거나 민사상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하는 식이었다. 노동자들이 매우 난감해할 것이 예상되지만 저 방법들을 읊을 수밖에 없었다. 

▲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사내 고충처리절차를 확인하기는 하나 절차가 있다한들 성실한 조사와 후속조치가 취해질지는 전적으로 회사 의지에 달렸고 보편적 강제력을 가진 수단이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너무 다양해 민·형사 절차로 직장 내 권력관계를 바탕으로 일어나는 경우의 수를 다 담기 어렵다. 소송이라는 높은 벽 앞에 노동자들은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나 또한 노동법 전문가로써 해줄 게 없다는 무력함이 밀려온다. 무력함에 싸여 상담은 마무리 된다. 

오는 16일부터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실시되니까 이제부터는 할 말이 좀 있지 않냐고 하면 뭐라 답하기 참 애매하다.

근로기준법 76조의2는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와 금지를 담고, 근로기준법 77조의3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의무 규정하고 있다. 조치의무에는 조사의무, 피해노동자 보호, 행위자 조치, 신고에 불이익 처우 금지 등이 있다. 그리고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 등’을 필수로 기재하도록 했다. 또한 77조의3 6항 직장 내 괴롭힘 신고한 자에게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하면 벌칙규정도 두고 있다. 그런데 기존에도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 등 인사상 불이익은 부당해고 구제절차로 다툴 수 있었기에 이 벌칙규정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얼마나 효과 가 있을지 의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등에 대한 보호조치와 행위자에 대한 조치 등이 회사 차원에서 제대로 이행돼야 실효성 있는 피해구제가 가능한데 이 부분에는 법적 강제력이 없다. 취업규칙에 규정된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발생 시 조치의무가 성실히 이행되도록 담보할 수단도 딱히 없다. 물론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개념을 법에 규정하고 법으로 금하는 행위임을 명백히 한 점은 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어느 정도 사회적 경각심을 주고 자정효과도 있을 것이다. 

다만, 실효성이 너무 적다. 앙꼬 없는 찐빵이라면 과장일까. 직장 내 만연한 괴롭힘을 예방하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를 효과적으로 보호하기에는 다소 미흡하지 않나 싶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곧 시행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뾰족한 대안 없는 상담을 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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