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25일자 조선일보 기사(“수업시간에 ‘퀴어축제’ 보여준 여교사, 그 초등교선 ‘야, 너 게이냐’ 유행”)는 지난 6월22일에야 바로잡혔다. 기사가 나온 후 1년10개월만이다. 해당 보도는 최현희 초등학교 교사가 수업 시간에 퀴어 축제 영상을 보여줘 학부모 220여명이 수업 중단을 요구하며 항의했고, 학교에선 ‘야, 너 게이냐’는 말이 유행했다는 내용이다.

조선일보는 정정보도에서 △최 교사가 수업 시간에 퀴어 축제 동영상을 보여준 이후 학생들 사이에서 ‘야, 너 게이냐’ 등의 말이 유행했다는 점 △최 교사가 트위터에서 남성혐오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이라고 밝혔다는 점 △최 교사가 비판이 불거지자 남성혐오 트윗을 삭제했다는 점 등은 확인된 사실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최 교사가 남학생들에게 “말 안 듣고 별난 것들은 죄다 남자”라고 질책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고 최 교사의 수업 중단을 요구했다는 것도 ‘일부 학부모’였던 것으로 정정됐다. 정정보도는 지난해 10월 최 교사의 1심 승소와 지난달 서울고법의 강제조정에 따른 것이다. 

▲2017년 8월25일자 조선일보 보도.
▲2017년 8월25일자 조선일보 보도.

미디어오늘은 지난 1년10개월 조선일보를 상대로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한 최현희 초등학교 교사를 5일 서울의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최 교사는 2017년 당시의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모욕, 비방, 협박 등의 폭력)과 소송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올 3월 복직해 교사 일도 병행하고 있었다. 

최 교사는 정정보도에 대해 여전히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정보도는 ‘사실이 확인된 바 없다’, ‘사실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나왔다. 내 사건이 아닌 이상 정정보도를 관심 있게 본 적이 없어 몰랐는데, 정정보도가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 같으면서도 ‘유체이탈 화법’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이 아니라면 무엇이 사실인지 알 수 없는 정정보도이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자신은 언론의 왜곡 보도로 막심한 피해를 입었는데 정정보도만 보면 어떤 것이 사실인지 왜 이런 보도가 나왔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

최 교사는 자신이 수업 시간에 퀴어 축제 영상을 보여주고 난 뒤 학교에 ‘야 너 게이냐’는 말이 유행했다는 보도 내용을 반박했다. 최 교사는 “영상을 보여주기 전부터 교실에서 ‘게이’라는 말이 놀림처럼 사용됐다. 교실 내에 공공연하게 성소수자 혐오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인권교육 차원에서 언급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퀴어 축제 영상을 보여준 이유도 그것 때문”이라며 “그러나 조선일보는 완전히 인과 관계를 뒤집어 보도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최 교사는 트위터로 남성 혐오 인터넷 커뮤니티로 알려진 ‘메갈리아’ 회원임을 밝혔다”고 썼다. 이와 관련해 2016년 7월 게임 캐릭터 성우 김자연씨가 겪은 일을 먼저 설명할 필요가 있다. 김씨는 ‘여자들은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트윗을 올렸다가 게임회사 넥슨 유저들의 항의를 받고 게임 속에서 목소리를 삭제 당했다. 당시 트위터에서는 해시태그를 단 ‘나도 메갈리안이다’ 운동이 일어났다. 

최 교사는 “‘나도 메갈리안이다’ 해시태그 운동 메시지를 담은 트윗을 리트윗했다. 그걸 두고 내가 메갈리아 회원이라고 (조선일보는) 주장했다. 판사들이 해시태그와 리트윗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이를 설명하기 무척 힘들었다.”

최 교사는 조선일보 기사 가운데 “최 교사가 ‘한남충’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한남충’이라는 언어 사용 자체에 문제 의식을 표현한 트윗을 리트윗하기도 했고, 일부 내가 리트윗한 트윗 중 ‘한남충’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트윗이라 해도 그 단어 사용에 동의하지 않으나 원글의 맥락 일부를 공감하는 차원에서 리트윗을 했다”며 “내가 ‘한남충’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작성한 트윗은 없다”고 반박했다. 

최 교사는 조선일보 기사에 의해 자신이 ‘한남충’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는 것, 메갈리아 회원이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부조리하다고 지적했다. 최 교사는 “내가 이들의 주장에 ‘나는 그렇지 않다’고 증명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부조리하다고 느껴졌다. 또한 메갈리아 같은 사이트는 해당 시기에 이미 폐쇄돼 입증 자체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최 교사는 조선일보가 “학부모들은 그가 평소 남자아이들에게 ‘말 안 듣고 별난 것들은 죄다 남자’라며 질책한 일 등도 문제 삼았다”고 보도한 것도 반박했다. 최 교사는 “어디서 이런 말이 나왔는지 짐작도 못할 정도의 소설”이라며 “이런 것을 일부 제보자들에게 전해 들었다고 해도 기사에 쓰려면 사실 확인이 필요한 사항”이라고 말했다. 

학부모 220명이 수업 중단을 요구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최 교사는 “간담회에서 수업 중단을 요구한 학부모도 있었지만 대화를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참석한 부모도 있었다. 조선일보는 마치 모든 학부모가 ‘수업 중단’을 요구한 것처럼 썼다”고 말했다. 
 

▲2019년 6월22일 조선일보 지면.
▲2019년 6월22일 조선일보 지면.

최 교사는 “조선일보 기자가 특정 이익 집단 입장에 서서 기사를 작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업윤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변론기일에 만난 조선일보 기자는 역시나 억울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사실을 알아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고 느껴졌다”고 비판했다. 

최 교사는 이런 맥락을 현실적으로 모두 담지 못하는 정정보도 제도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적극적으로 교사를 보호하지 못하는 교육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조선일보 기사 이후 많은 악플을 견뎠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정정보도가 나왔다고 그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나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학교나 교육청의 부당한 교권 침해에 대해 사후조치가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육청에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고, 학교 측에서는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가정 통신문을 냈지만, 정정보도의 문장들과 비슷했다. 나를 직접 만나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는 내가 직접 나의 진실성을 증명할 수 있지만 그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런 일을 당해도 개인이 직접 소송하고 스스로 오해를 풀고, 오해가 풀렸다는 것도 개인이 알려야 했다.”

최 교사는 “학교나 교육청은 항상 이런 식이다. 교사들이 부당한 일 앞에 개인으로 싸워야 하는 문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가 보수화하고, 시대 변화나 교사 고민이 교육실천으로 이어지기가 힘들다”고 지적했다. 

최 교사는 복직해 6학년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최 교사가 현재 맡은 6학년 아이들은 사건이 발생하기 1년 전인 2016년 3학년으로 만났던 아이들이다. 아이들도 최 교사 사건을 알고 있다. 

최 교사는 “아이들은 그렇게 쉽게 속지 않는다. 적어도 내 앞에 있는, 매일 일상으로 만나는 교사가 특정 신문에 보도된 것처럼 문제 있는 교사, 나쁜 교사가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안다”며 “성평등 교육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고, 특히 아이들과 내가 있던 교실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관심 없이 오로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문제를 과장하고 왜곡하는 이들에 분노한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정정보도 받아내기까지 1년10개월, 무슨 일이

2017년 최현희 교사 언론인터뷰에서 정정보도까지...조선일보 기자 “해당 사안은 공론장에 맡길 사안”

최현희 교사는 조선일보와 1년 10개월 동안 소송을 통해 정정보도를 받아냈다. 2017년 당시 최 교사는 서울 송파구 위례별초등학교의 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최 교사는 ‘우리 사회의 성별 고정관념과 성차별 문화가 학교 현장에서 재생산하는 것에 비판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학교 내 ‘페미니즘 북클럽’이라는 독서 동아리에 참여했다. 

2017년 6월 인터넷 미디어 ‘닷페이스’는 해당 학교의 ‘페미니즘 북클럽’을 취재했고 최 교사를 인터뷰하게 된다. 해당 인터뷰에서 최 교사는 학교 운동장에 남학생들만 뛰어 노는 현상을 예로 들며 성별적 사회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후 최 교사의 인터뷰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게 되고, 최 교사는 모욕에 가까운 비난을 받았다. 

▲2017년 6월 최현희 교사가 '닷페이스'에서 인터뷰한 영상.
▲2017년 6월 최현희 교사가 '닷페이스'에서 인터뷰한 영상.

학교의 일부 학부모들도 학교와 담당 교육청으로 민원을 냈다. 같은 해 8월23일 학교는 학부모 간담회를 열고 학부모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그해 9월 언론에서 보도가 쏟아졌다. 한겨레는 2017년 9월7일 ‘페미니즘 교육, 남혐·동성애 권유로 둔갑하다’라는 기사에서 최 교사의 교육이 SNS 상에서 왜곡돼 퍼져나갔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비난이 커지자, SNS에서 ‘우리에겐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합니다’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당시 초등성평등연구회 교사들이 기획한 ‘8·26 공동행동’ 등도 보도됐다. 경향신문은 10월 최현희 교사를 인터뷰한 기사를 실었다. 이후 최 교사는 경향신문에 ‘최현희 교사의 학교에 페미니즘을’ 칼럼을 연재하기도 한다.  

조선일보도 관련 기사를 냈다. 그해 8월25일 조선일보 “수업시간 퀴어축제 보여준 여교사...그 초등교선 ‘야, 너 게이냐’ 유행”라는 제목의 기사와 다음날 “혁신학교 수업 재량권 줬더니...편향된 성평등 교육”기사가 게재됐다. 조선일보는 그해 9월1일에는 “‘퀴어축제 영상 튼 위례별초 교사 사과하라’ 1340명 서명”이라는 기사도 추가로 썼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2019년 6월 “수업시간 퀴어축제 보여준 여교사...그 초등교선 ‘야, 너 게이냐’ 유행” 기사를 정정하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이상윤 부장판사)는 2018년 10월26일 조선일보가 정정보도를 내고 조선일보와 해당 기자가 400만원을 최 교사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난 6월19일 서울고법에서 강제조정이 확정됐다. 

2018년 10월26일 판결문을 살펴보면 재판부는 △일부 표현을 조선일보가 단정적으로 보도했고 △기자가 관련자들을 추가 취재하거나 이미 취재한 자료에 대한 객관적 확인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신속하게 해당 기사를 보도할 만한 특별한 필요성이 없었으며 △교사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정도가 가볍지 않다고 밝혔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김지연 전 조선일보 기자는 9일 미디어오늘에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김 기자는 해당 학교의 학부모들이 탄원서를 낸 것 등을 참고하면 기사를 작성한 배경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 기자는 “정정보도가 억울하진 않지만 학부모 입장 탄원서도 읽다보면 이 사안은 기사가 많이 나와서, 공론장에 맡길 사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기자는 기사를 작성하면서 최 교사에게 직접 연락하지 않은 것을 두고 “학교 교무실에 수차례 연락했는데 최 교사가 부재해 연결해줄 수 없다고 했고 개인 연락처도 주지 않아 교장 선생님께 연락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현재 조선일보를 퇴사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조선일보 기자가 “해당 사건을 공론장에 맡겨야 한다”고 한 주장에 대해서 최현희 교사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조선일보 기자는 사안을 공론장에 맡긴 게 아니라, 피해가 극심한 상황을 인지하고서도 진실을 가리려는 마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비난할 수 있는 장으로 이끌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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