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내 전산시스템 유지보수 노동자들은 지난 1일부터 ‘올해 내 정규직 전환 협의체 구성’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앞서 국회 청소노동자들이 2017년초 직접 고용돼 화제가 됐다. 이후 엘리베이터 설치보수 노동자들의 직접고용도 이어졌다. 그러나 국회 전산시스템 노동자들은 논의에서 빠졌다. ‘고도의 전문직’이라는 이유에서다.

“IT분야는 고임금 고기술력, 고비용 장비란 고정관념에 정규직 전환이 막혔습니다. 실상 우리 중 상당수는 급여명세서에 식대가 없습니다. 기본급에서 식대를 빼면 최저임금이 안 되는 탓입니다.” 전산시스템 노동자 가운데 13명은 점심시간마다 호소문을 배포하고 피켓 시위를 한다.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내부 정보기기 유지보수 사무실에서 이들을 만났다.

정보기기 유지보수팀 소속 김계상(34)씨는 국회 내 컴퓨터와 정보시스템을 관리한다. 팀원 17명이 본청·의원회관·의정관 등 국회 안 모든 PC와 프린터 등 전산 장비를 담당한다. 의원 및 보좌진과 직원, 기자들이 기기를 쓰다 장애를 신고하면 이들은 ‘콜’을 나눠 받고 출동한다. 1명이 하루 10건 정도 소화한다.

이들은 상임위원회와 특별위원회, 본회의 등 각종 회의가 열리기 전 각 PC와 프로젝터·전광판·안건 시스템 등 장비를 켜 테스트하고 고친다. 사무실에 쌓인 고장 난 장비 수리와 창고 관리도 이들 몫이다. 원칙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지만, 이들의 일과는 ‘정국’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난다. “업무 강도가 국회 ‘시즌’에 따라 달라요. 국감 땐 ‘콜’이 엄청나서 오전만 41건 뛴 적도 있어요.”

그 외 사이버보안과 인터넷의사중계 유지관리 노동자들을 합해 총 65명이 국회에서 IT 전산 관련 업무를 위탁 수행하고 있다.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내 정보기기 유지보수 사무실에서 만난 전산시스템 위탁용역 노동자 김계상씨(34).  그는 “출입증 색깔에 따라 국회 내부에서 받는 눈빛과 대우가 다르다”며 출입증을 들어보였다. 국회 소속 노동자는 하늘색, 외부용역 노동자는 노란색이다. 사진=김예리 기자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내 정보기기 유지보수 사무실에서 만난 전산시스템 위탁용역 노동자 김계상씨(34). 그는 “출입증 색깔에 따라 국회 내부에서 받는 눈빛과 대우가 다르다”며 출입증을 들어보였다. 국회 소속 노동자는 하늘색, 외부용역 노동자는 노란색이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들은 원청인 사무처의 지시를 받고 국회에서 일한다. 그러나 용역업체 소속이다. 국회정보시스템 팀 37명은 10개 위탁업체로 갈라져 있다. 원청인 사무처가 조달청 입찰을 거쳐 소규모 IT업체들이 꾸린 컨소시엄과 계약해서다. 3년마다 입찰하는데, 노동자들은 3년마다 소속업체가 바뀐다.

“공고엔 90% 기술, 10% 비용이라지만 사실상 저가 경쟁이에요. 기술 격차가 크게 안 나요. 장비 비용은 고정이니 업체들은 인건비에서 허리를 졸라매죠.” 임금은 최저임금 안팎을 오간다. 김씨는 2011년부터 계약을 3번 갈아탔지만, 그때마다 사실상 최저임금을 적용받았다. “8년 일했는데 월 급여가 217만원 정도예요. 그마저 노조가 생기면서 올랐어요.” 5년차 미만은 최저임금이 안 되니 식대마저 기본급에 포함시킨다.

고용노동부는 ‘2단계 기관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서 정규직 전환 예외사유로 “고도의 전문적 직무”를 들었는데, 사무처는 이 점을 직고용 제외 근거로 삼았다. △의사 △변호사 △공인회계사 △변리사 △관세사 △엔지니어가 여기 포함됐다.

해당 문건은 “단순히 업무 내용이 ‘전문적’이란 이유로 전환 대상에서 제외시키지 않도록 유의”하라고 했으나 무용지물이었다. 노동자들은 “(가이드라인에) 애매하게 ‘엔지니어’란 이름이 온갖 ‘사’자로 끝나는 직종들 끝에 붙어있는데, 최저임금을 받는 고도의 전문 직종도 있느냐”고 되물었다.

지난해 국민연금공단과 한국가스공사는 전산직종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했다. 연금공단은 협의 테이블을 거쳐 58명 전원을 전환했고, 가스공사는 고급 기술자 25명을 제외한 50명을 직접 고용했다.

국회 사무처는 2020년 정규직 전환 관련 노사-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들은 “최소한 올해 안에는 꾸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년 협의체가 구성되면 실제 논의는 관련 예산이 책정된 뒤 2021년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 65명의 계약은 2020년 말 끝난다. 김씨의 동료는 “계약이 새로 이뤄질 때마다 내부에 문제제기하는 이들이 제외돼왔다. 그게 원하청 계약의 또 다른 효과”라고 우려했다. 유인태 사무총장의 임기도 2020년 끝난다.

▲국회 내 정보기기 유지보수팀 노동자 13명은 파업 중 점심시간마다 국회 사무처 직고용을 촉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국회 내 정보기기 유지보수팀 노동자 13명은 파업 중 점심시간마다 국회 사무처 직고용을 촉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이들은 “파업을 하면서도 어디에도 소속하지 못하고 가운데 붕 뜬 기분”이라고 했다. “어느 회사 소속이든, 항상 국회를 위해서 일했어요. 근데 이렇게 파업이 발생하니 8년간 얼굴 보던 사람들이 뭐가 힘든지도 물어보지 않아요. 그 점이 가장 힘들어요.”

국회 사무처는 전산시스템 노동자들의 파업과 정규직 전환 협의체 요구와 관련해 “사안을 논의 중이나 확정한 건 없다. 특별히 알릴 입장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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