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핵산업계에서는 핵발전소가 안전하다는 근거로 ‘다중 방벽’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 설명에 따르면 핵발전소는 사고 시 외부로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지 않도록 5겹의 다중 방벽을 둔다. 1단계 핵연료 펠릿, 2단계 핵연료 피폭관, 3단계 원자로 용기, 4단계 격납 건물 철판, 5단계 콘크리트 격납 건물이 바로 그것이다. 

다중 방벽 중 1, 2단계는 핵연료를 감싸는 것이고, 3단계는 원자로 용기이기 때문에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중대 사고가 발생하면 4, 5단계인 격납 건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두께 1.2m에 달하는 콘크리트 격납 건물은 내부 폭발이 일어나더라도 외부로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는 것을 막기 때문에 말 그대로 핵발전소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다.

▲ 영광한빛원전 전경.
▲ 영광한빛원전 전경.

그런데 최근, 이 ‘최후의 보루’에 심각한 문제가 계속 밝혀지고 있다. 재작년 5월, 전남 영광 한빛 4호기 격납 건물 내부 압력에 문제가 생겼다. 밀폐되어야 할 격납 건물에서 압력변화가 발견된 것이다. 조사 결과 두께 6mm 철판이 부식되어 구멍(공극)이 발견되었다. 이후 조사 범위를 전국 핵발전소로 확대했더니 고리 3~4호기, 한빛 3~6호기, 한울(울진) 2, 5, 6호기에서도 철판 부식이 발견되었다. 더 큰 문제는 이 조사 과정에서 콘크리트 격납 건물 구멍도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한빛 3호기와 4호기에서 각각 94개와 96개의 구멍이 발견되었다. 이 중 20cm가 넘는 구멍도 각각 56개와 20개에 이른다. 그동안 발견된 구멍 중 가장 큰 것은 한빛 4호기에서 발견된 것으로 크기가 90cm 정도이다. 해당 부위의 벽체 두께가 약 165cm이니 벽체의 절반이 구멍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보수 언론은 거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발표한 언론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핵발전소 관련 기사 중 ‘철판 부식’, ‘공극’이 포함된 기사는 조선, 중앙, 동아가 각각 1~3건에 불과했고, 한국경제와 서울경제 등 경제지가 각각 3건과 5건이었다. 반면 경향과 한겨레 신문은 같은 기간 동안 20건과 28건의 기사를 실었다. 최근 한빛 4호기에서 90cm짜리 구멍이 발견된 사실에 대해서도 보수 언론은 간단히 단신 처리하거나 연합뉴스 기사를 그대로 게재했을 뿐이다. 

이들 언론은 그동안 안전 점검을 위해 핵발전소가 멈추자, 핵발전소 이용률이 떨어져 한전이 적자를 보고 있다며, 화제를 돌렸다. 격납건물 철판과 콘크리트가 핵발전소 안전에 얼마나 중요한 시설이며, 안전 규제를 위해서는 비용이 들어간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도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핵발전소가 멈춰 핵발전소 이용률이 떨어졌고, 이 때문에 한전이 적자를 보고 있다는 사실만 적시하며, ‘기-승-전-탈원전 반대’ 주장을 이어갔다. 

▲ 원전 격납건물 공극 개요도. ⓒ 연합뉴스
▲ 원전 격납건물 공극 개요도. ⓒ 연합뉴스

이번에 발견된 격납건물의 구멍들은 정상적으로 핵발전소가 가동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건물 구조만 놓고 본다면 건물이 붕괴할 정도의 부실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사고로 내부 폭발이 일어난다면, 문제는 전혀 달라진다. 충분한 두께의 철판과 콘크리트가 압력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더라도 부실시공 앞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과거 급속한 경제 성장을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외견상 문제만 신경 쓰고 보이지 않는 곳은 대충 마무리하는 일들이 많았다. 특히 건축·토목 분야에서 이런 일은 매우 흔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아파트와 다리, 백화점이 무너진 안타까운 역사를 갖고 있다. 1980년대 건설된 한빛 3, 4호기의 문제는 우리 시대, 특히 핵산업계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이다. 이런 어두운 면을 지금이라도 일벌백계하지 않는다면 우리 국민의 안전은 지킬 수 없다. 하지만 공사 이후 수십 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왜 부실시공이 발생했고, 당시 누가 건설과 감리 책임자였으며, 그들은 왜 이렇게 엉터리 시공을 했는지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정말 보수 언론이 국민 안전과 핵산업계 진흥을 바란다면, 그동안 숨겨진 핵산업계의 이런 ‘적폐’를 파헤쳐야 하지 않을까? 과거를 반성하고 뼈를 깎는 혁신이 없다면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산업계 논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보수 언론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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