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4일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시행하면서 반도체·디스플레이 3대 핵심 소재 수출 통관이 중단됐다. 관련 업체들은 확보해 둔 재고에 한계가 있기에 사태가 장기화되면 최악의 경우 생산 중단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보이고 있다. 일본은 향후 첨단재료 수출 허가 신청 면제 대상인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방안도 고려 중으로 전해진다. 정부는 다음 주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한 초단기·중기 대책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만간 국내 30대그룹 총수와 공식 간담회를 검토 중으로 알려졌다. 6일 전국단위 주요 일간지들도 이 사안에 집중했다.

한국일보는 2면과 3면에서 미국의 중재 역할 필요성을 촉구했다. 2면 머리기사는 참여정부 첫 주일대사였던 라종일 전 주일한국대사 인터뷰. “당분간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말고 일본의 동태를 파악하며 미국의 중재가 가능한지를 타진하는 게 지금으로선 현명한 대응일 수 있다”는 조언을 전했다.

라 대사는 “참의원(상원) 선거(21일)를 앞두고 아베 총리가 경제 보복을 터뜨린 건 정치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현재 일본인 상당수의 대한 정서가 좋지 않다는 뜻”이라고 사태 원인을 진단하면서도 아베의 이 같은 기조는 ‘무리수’라 진단했다. “한국도 이제 힘이 없는 나라가 아니고 한미일 안보 협력 이완을 걱정하는 워싱턴과의 관계도 있다”는 것. 다만 라 전 대사는 “무리수인 줄 알면서도 일본이 이러는 건 한국과 이런 식으로 계속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인 것 같다. 일본이 볼 때 한국은 합의한 뒤에 자꾸 어긴다. 차라리 말을 바꾸지 않는 중국이 더 신뢰할 만하다는 게 일본 생각”이라며 “이런 식으로 양국 관계를 관리할 수 없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감정만으로 쉽게 한 결정은 아니다”라고 봤다.

▲ 7월5일자 한국일보 2면.
▲ 7월5일자 한국일보 2면.

한일 정상이 만나야 문제가 풀린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정상이 만나기 전에는 상당한 정도로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실무 차원에서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방안을 성숙시켰을 때 정상이 만나는 게 정상적인 일”이라며 “당분간 구체적인 안을 내지 않은 채 상대방 동태를 파악하고 워싱턴 중재가 가능한지 타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만나 결투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해석이다.

한국일보 3면 “최악 한일 갈등에도...美, 과거와 달리 침묵 일관” 기사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로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미국은 사실상 침묵을 지키고 있다. 북한의 핵 위협, 중국의 영향력 확대 등을 경제하려는 미국의 동북아시아 안보 전략에 있어 양대 핵심 파트너이자 동맹인 한국과 일본이 대립할 때마다 적극 ‘중재’에 나섰던 과거의 행보와는 딴판이라는 얘기”라고 전했다. “‘미국 우선주의’ 노선을 취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동맹 구조를 중시하지 않는 접근법을 취하고 있어 ‘동맹 간의 갈등 제어’에는 큰 노력을 쏟이 않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미국은 동북아의 두 주요 동맹들 간 긴장 고조가 미국의 안보 이익에도 위협이라는 걸 인지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책임져야 할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대니얼 스나이더 스탠퍼드대 교수(4일 블룸버그 통신 인터뷰) 비판을 전했다.

▲ 7월5일자 조선일보 3면.
▲ 7월5일자 조선일보 3면.

조선일보 3면은 오구라 가즈오 전 주한일본 대사 인터뷰(“일본인들, 한국과 대화해봤자 변할 것 없다 생각...反韓감정 심각”)를 통해 일본 내부 ‘반한 감정’을 전했다. 오구라 전 대사는 이번 사태가 “일본인들에게 가끔은 한국에 강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차원”이라며 “일본은 식민 지배에 대한 한국 국민의 기분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하며, 한국인은 식민 지배에 대한 감정과 외교 문제는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태가 악화된 단기적 이유로는 ‘북한 문제’가 언급됐다. 오구라 전 대사는 “납치, 핵, 미사일 문제에 대한 국민 의식, 감정이 일한 간에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인터뷰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 내용은 한국 정부가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을 들며 한일 양국 기업이 위자료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에 대한 평가였다. 오구라 전 대사는 일본이 식민지배에 대한 한국 정서를 이해해야 한다면서도 “한국은 징용 문제를 외교 문제로 바꾸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양국 관계가 더욱 꼬일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배상문제는 한국에서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나’라는 질문엔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한국 국내에서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며, 일본 기업 역할로 “징용 문제와는 별도로 한일 미래 세대를 위해서 장학금을 만드는 방법”을 주문했다.

한겨레는 1면에 ‘역사를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울분을 전했다.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된 한국인의 수는 782만명(중복 동원 포함)으로 추산되며, 주로 탄광이나 제철소 등에서 전쟁 물자를 만드는 데 동원됐다. 한겨레는 “강제징용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한국과 일본 법원에 강제징용의 피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지난해 10월과 11월 일본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신일철주금 피해자들이 소송을 낸 지 13년, 미쓰비시중공업 피해자들은 18년 만이었다”며 “8개월 뒤인 지난 4일 일본은 한국에 반도체 소재 등 수출을 규제하는 경제 보복을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5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모인 피해자와 시민들은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은 이날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은 편협한 배외주의를 부추기는 아베 정권의 정치적 놀음에 절대 이용되지 않을 것”이라며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한-일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아베 정권에 강력하게 경고한다. 더는 역사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고 규탄했다.

▲ 7월5일자 한겨레 1면.
▲ 7월5일자 한겨레 1면.

한겨레는 “일본의 보복이 ‘한국 정부 책임’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신문사 사설로는 이례적으로 ‘조선일보’, ‘한국경제’, ‘문화일보’ 사설을 열거하며 비판했다. 한겨레는 “황당하기 짝이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일부 언론과 자유한국당이 아베 정부의 경제 보복을 한국 정부 탓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안이한 대처나 부실한 대응은 비판하고 각성을 촉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경제 보복을 자초했다는 주장은 사실관계도 맞지 않을뿐더러, ‘정치적 목적’에서 ‘경제 보복’을 하는 아베 정부를 도와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일본 언론들조차 아베 정부가 오는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보수층을 결집해 개헌 발의선인 3분의 2 이상 의석을 확보하려고 ‘한국 때리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며 “정부 대응에 잘못이 있었더라도, 그것이 사태 악화의 근원인 아베 정권의 정략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아무리 현 정부가 싫어도 이런 식으로 사태를 호도하는 건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했다.

이날 중앙일보 주말판 ‘중앙SUNDAY’는 “외교안보 라인 전면 쇄신할 때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정부 외교·안보 진용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정부가 여러 차례 “가만있지 않겠다”며 보복을 예고했고, “단순한 으름장이 아닌 것 같다”는 경고가 국내 언론과 전문가들에서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정세 판단을 그르치고 지난해 대법원 판결 이후 8개월 동안 손을 놓다시피 한 정부의 무능과 무대책의 결과가 이번에 현실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아래는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를 다룬 5일자 전국단위 주요일간지들의 1면 기사 제목이다. (여러 건이 실린 경우 지면편집 기준으로 우선순위 기사)

경향신문 : 문 대통령, 아베 ‘통상 공격’ 직접 맞선다
국민일보 : 위기의 반도체
동아일보 : 文대통령, 그룹총수들 만나 日 대응 나선다
세계일보 : “한·일 정상이 관계개선 담판 지어야”
조선일보 : “일본산 부품 수입, 퇴짜 맞았다”
한겨레 : “아베, 역사를 정치에 이용” 강제징용 피해자들 분노
한국일보 : 日 ‘3대 소재’ 통관 중단, 한국 업체 피해 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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