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경남도민일보 김주완·김훤주 기자가 공동운영하는 시사 팀블로그 ‘지역에서 본 세상’은 ‘검사와 스폰서, 묻어버린 진실’ 책에 나온 대목을 블로그에 올렸다 차단당했다. 책은 박기준 전 지검장의 검사 시절 섹스 스폰서 의혹을 다루는 내용이다.

박선희 동아일보 기자는 인터넷에 상품 후기를 썼는데 글이 사라졌다. 그는 2018년 11월 칼럼을 통해 “얼마 전 한 게시물을 포털사이트가 강제로 내려버렸다. 제법 규모 있는 유아용품업체 서비스에 실망한 경험을 썼더니 해당 회사가 문제를 삼아서였다”고 밝혔다. 

인터넷에서 의혹제기는 물론 사실을 말해도 게시글이 사라지고 있다. 김보라미 공동법률사무소 디케 변호사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가 공동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각국의 허위정보 관련 규제보다 한국의 임시조치 제도가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임시조치 제도는 피해자 권리보호라는 취지와는 달리 기업, 정치인 등에 대한 비판적 게시글을 차단하는 도구로 악용됐다. ⓒiStock
임시조치 제도는 피해자 권리보호라는 취지와는 달리 기업, 정치인 등에 대한 비판적 게시글을 차단하는 도구로 악용됐다. ⓒiStock

 

일부 언론과 정치권은 독일, 프랑스 등 해외 허위정보 규제를 강조하며 국내에도 이 같은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법적 판단에 따라 조치하는 프랑스, 독일과 달리 한국은 허위 여부와 무관하게 게시글을 차단하고 삭제하는 더욱 강력한 임시조치 제도가 있다. 

임시조치는 게시글에 언급된 당사자의 문제 제기만 있으면 ‘권리침해’로 간주해 인터넷 게시글을 최소 30일 차단하고 차단 당한 이의 문제제기가 없으면 삭제하는 제도다. 무분별한 인터넷상의 권리침해를 막기 위해 도입됐으나 실제로는 정치인, 기업에 대한 부정적 게시글까지 차단해왔다.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 6월까지 포털 임시조치 건수는 네이버 164만3528건, 카카오 44만2330건에 달했다.

김보라미 변호사는 “한국의 임시조치 제도는 (해외와 달리) 혐오표현에 대한 대응책이 아니라 인터넷서비스사업자의 책임을 정하기 위해 규정됐다”며 “표현의 자유만 침해하고 혐오표현에는 대항하지도 못한다”고 지적했다. 임시조치는 특정 대상이 있어야 요청할 수 있는데 혐오표현은 불특정 다수를 향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김보라미 변호사는 권리침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전방위적인 차단을 가능하게 하는 대신 “표현 대상을 특정한 경우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유향 국회 입법조사처 과학방송통신 팀장은 ”국회에 발의된 가짜뉴스 관련 법만 27건으로 세계적으로 우리만큼 관련 법안이 많이 발의된 나라가 없다”며 “가짜뉴스 이슈에 관심이 커지면서 임시조치 문제가 주목받지 못했다. 가짜뉴스 규제 법안 가운데는 임시조치 기간을 늘리는 등 강화하는 내용도 있다”고 지적했다. 허위정보에 대한 논쟁이 제도 개선을 가로막고 있다는 이야기다.

▲ 4일 국회에서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가 공동주최한 임시조치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김보라미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4일 국회에서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가 공동주최한 임시조치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김보라미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가장 큰 문제는 사업자가 임의로 문제 여부를 판단한다는 사실이다. 김보라미 변호사는 독일, 프랑스 등 허위정보 규제의 경우 심의, 법적 판단이 이뤄진다며 ”한국처럼 사업자에게 전권을 주는 임시조치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게시글 대부분이 차단된 한 인터넷 커뮤니티 화면 캡쳐를 보여주며 제대로 된 토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사회를 맡은 오길영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운영위원장은 ”임시조치가 아니라 임의조치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양홍석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변호사)은 ”일종의 사적검열이다. 이를 사업자에게 맡기는 게 옳은 것인지 근본적인 의문이 있다“고 했다. 김유향 국회 입법조사처 팀장은 ”지금은 임시조치를 마구잡이로 하는 게 사업자 면책에 유리하다.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해야 인터넷 공론장을 건강하게 발전시킬 수 있다”고 했다. 

사업자들도 난감하다. 네이버 등 인터넷 기업을 회원사로 둔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의 나현수 정책팀장은 “제3자 입장에서 사실인지 아닌지 판단을 할 수가 없다.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은 비방 등을 판단해야 한다. 법원에서도 매번 결론이 달라지는데 사업자로서는 판단하기 매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내용이 거짓이라는 걸 판단할 필요도 없이 처리가 가능하다. 이 특성이 빠른 피해 구제 측면에서는 장점이지만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임시조치에 이의제기권을 신설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날 토론 참석자들은 △사업자 측면에서 처벌을 피하기 위해 적극적인 차단·삭제가 이뤄지는 문제 개선을 위한 자율규제 전환 △게시글 조치 관련 사업자의 자세하고 투명한 정보공개 △부적절하게 임시조치를 남용하는 경우 처벌하거나 이미 법적 판단이 이뤄진 내용에 대한 임시조치 금지 등 여러 대책을 제시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