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지난해 ‘미투 운동’까지 젠더 이슈 보도 비중이 커졌다. 

사회부 기자는 사건 기사로, 정치부 기자는 국회 내 성폭력 사건이나 의원·공무원들의 성희롱 발언 등을 기사로 다루는 경우가 늘었다. 

산업부도 예외는 아니다. 기업에서 젠더 감수성이 떨어지는 광고를 내거나 공식 SNS에서 왜곡된 인식을 드러내면 곧 기업 리스크로 이어진다. 모든 출입처 기자들이 젠더 관련 기사를 한 번쯤은 쓰는 상황이다.  

언론사에서 젠더 이슈에 다른 의견을 가진 기자들끼리 충돌하는 일도 잦다. 아이템 선정부터 아이템 방향, 기사에 들어가는 단어 하나하나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갈등을 제대로 풀고 토론하고, 기사에 반영하는 문화는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일간지 정치부 기자 A씨는 지난해 미투 사건 당시 아이템 회의 때 일을 꺼냈다. A씨는 “부서 회의할 때 난감한 적이 많다. 지난해 안희정 전 충청도지사와 관련된 미투 사건에 대한 회의를 할때, 의견이 다른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는 피해자가 가해자로 지목된 이를 좋아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펼쳤다. 이야기를 듣다가 ‘가해자를 좋아하면 성폭력을 당해도 괜찮은 것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연차가 20년 가까이 차이 나다 보니 지적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솔직히 다른 회의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A씨는 “낙태 관련 이슈도 그랬다. 기자들 사이에서 ‘인공임신중단’이라는 단어를 쓰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데스크들은 임신중절과 낙태, 임신중단의 차이를 모르겠다고 했다”며 “단어에 차이가 있는데 이건 사전적 의미의 설명이 문제가 아니라 감수성 차이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어차피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고 전했다. 

이런 고민에 공감을 하는 기자라도 개인이 언론사 관행을 깨기는 쉽지 않다. ‘낙태’라는 단어를 어떻게 쓸지 한 통신사 기자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그래픽=이우림 기자.
▲그래픽=이우림 기자.

2년차 통신사 기자 B씨는 “낙태라는 용어보다 임신중단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는 지적을 들었다. 맞는 지적이다. 그러나 대중에게 이미 낙태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어서 실제 기사를 쓸 때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B씨는 “특히 제목을 잡을 때 짧고 대중적 단어를 사용하는 게 미덕인 언론사, 특히 통신사에서 설명을 길게 부연해야 하는 용어를 사용하기 어렵다”며 “문제 제기가 있고 그게 옳다면 바뀌는 게 맞는데, 언론의 관습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였다”고 토로했다. 

이런 문제에서 기자들은 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이나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 여성가족부에서 내놓은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 등을 참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젠더 이슈에 가이드라인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어렵고 각 사례에 부합하는 내용인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있다.

‘여기자, 여교사, 여검사’ 같은 단어를 쓰지 말자는 흐름에 고민한 기자도 있다. 5년차 인터넷 언론 사회부 기자 C씨는 “기사에 나오는 등장 인물 성별을 알릴 필요가 있는 경우도 있다. ‘기자(여)’라고 쓰든 ‘여기자’라고 쓰든 사건에 등장하는 사람의 성별을 알릴 필요성이 있어서 표기하는 것”이라며 “나는 제목에 성별 표기를 하지 않지만 기사에서 인물이 처음 등장할 때는 성별 표기를 한다. 그런데 같은 회사 후배가 왜 여성만 성별을 표기하느냐고 지적했는데, 반대 의견이었다. ‘스타일북’(편집·표기 방법 등을 나열한 설명서)을 무시해야 하는지 고민스러웠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젠더 이슈에 자기 의견을 전할 때, 이런 문제 제기가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공격하는 모양새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후배가 선배 기사를 지적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반대 사례도 있었다.  

8년차 지역 일간지 사회부 기자 D씨는 “후배가 단독을 써왔는데 젠더 감수성이 떨어지는 아이템이었다. 이 때문에 후배에게 지적했는데 다른 선배가 ‘1보를 쓰는 게 중요하지 왜 잘하는 후배 기 죽이느냐’고 말했다”며 “이런 분위기에서 나 역시 제대로 된 지적을 하지 못하고 ‘어떤 단체에서 지적을 하는데 이들 반론도 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돌려 말했다. 제대로 지적하지 못한 것이 아직도 찝찝하다”고 말했다. 

D씨는 “내부에 문제 의식이 없는 건 아니다. 문제는 이런 감수성을 가진 이들이 의견을 전할 통로가 없다는 것”이라며 “데스크에게 이런 의견을 전할 때 괜히 미운털이 박히기도 해서 승진을 못한 다른 선배도 봤다. 이런 환경에서 누가 문제 제기를 하겠나. 이건 생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 성평등 상설기구(KBS 등)를 만들거나 성평등위원회(MBC 등), 젠더연구소(서울신문), 젠더데스크(한겨레) 등을 신설하고 있다. 그러나 보도에 있어 세세한 갈등을 해결하고 전담할 수 있는 곳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6년차 일간지 사회부 기자 E씨는 “매번 이건 아니다 싶을 때마다 따로 창구가 없으니 소동이 벌어진다. 부장한테 가보자는 말도 나오고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나와 친하면 직접 이야기하기도 한다. 사내 게시판에도 난리가 난다. 그러나 기사가 수정되는 경우는 드물다”며 “성인지 감수성이 있는 데스크가 있다면 쉽게 풀릴 이야기다. 그렇지 않으면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 환경 속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만 지쳐간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