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활 5년차 봄은 ‘청룡봉사상’과 ‘권언유착’이라는 화두에 끈질기게 매달린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CBS 사건팀은 4월15일 첫 보도 이후 한 달하고도 보름 동안 무려 20개가 넘는 기사로 청룡봉사상을 다뤘다. 결국 5월 끝자락에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은 청룡봉사상뿐 아니라 민간과 연계한 모든 상의 인사상 특전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처음 취재할 때는 시민은 물론 경찰들도 청룡봉사상이 정확히 뭔지 몰랐다. 사람들은 경찰청과 조선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이 상을 받으면 경찰이 1계급 특진한다는 사실을 듣고, 요즘 세상에 그런 일이 가능하냐며 의아해했다. 1967년에 만들어져 역사가 50년이 넘는다는 말을 듣고는 더욱 놀라워했다.

스스로 변할 의지가 없던 경찰과 장자연 사건을 취재하면서 점점 오기가 생겼던 것 같다. 마침 장자연 사건 재조사가 10년 만에 활발히 진행 중이던 터라, 취재도 자연스레 이 부분에 맞춰 이뤄졌다.

▲ 조선일보 청룡봉사상 홈페이지.
▲ 조선일보 청룡봉사상 홈페이지.

 

장자연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이 그해 청룡봉사상을 받아 특진했다는 소문은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핵심이었다. 10년 전 수사팀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들을 직접 찾아가 만나고 설득했다. 부인과 취재거부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질문은 이어졌다.

결국 구체적 증언을 확보했고 단독보도가 나갔다. 경찰도 몇 주 뒤 이런 사실을 자인하면서 CBS 보도에 확인 도장을 찍었다. 대검찰청 진상조사단도 장자연 사건 수사결과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청룡봉사상 특진 혜택 폐지를 건의했다.

장자연 사건 당시 수사 무마를 위해 경찰을 협박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조선일보 간부가 청룡봉사상 심사위원을 맡았다는 사실이 보도됐고, 국민적 공분은 커졌다. 10여개 시민단체가 경찰청 앞에서 긴급 회견을 열고 성명서까지 전달한 것도 이 무렵이다. 특정 언론사가 수사기관에 특진 혜택을 주는 비상식에 이제는 여론이 본격 문제제기했다.

경찰 내부 반발도 일파만파로 커졌다. 경찰의 사생활까지 담긴 감찰·세평 자료를 경찰청이 조선일보 쪽에 넘겼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청룡봉사상 특진 폐지를 주장하는 청와대 청원 동의가 수만명을 넘어섰다. 현직 경찰 간부가 내부 전산망에 ‘자존심이 구겨졌다’는 글을 올려 수뇌부의 각성을 촉구했는데 사흘 만에 달린 댓글만 수십개가 넘었다.

▲ 지난 5월2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18개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조선일보, 경찰청 청룡봉사상 공동주관 및 수상자 1계급 특진 폐지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 지난 5월2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18개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조선일보, 경찰청 청룡봉사상 공동주관 및 수상자 1계급 특진 폐지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정치권도 여야 할 것 없이 제도개선 목소리를 냈다. 당 차원에서 성명서를 내거나 비공식 당정청 회의에서 꾸준히 질의를 통해 문제제기했다.

5월31일 오전 행정안전부에 예정에 없던 긴급 브리핑이 공지됐다. 모든 언론의 이목이 쏠린 이 자리에서 진영 행안부 장관과 민갑룡 경찰청장은 청룡봉사상을 비롯해 언론사 등 민간기관 주관 포상과 연결된 공무원 인사 특전을 전부 폐지한다고 밝혔다. 1967년 이후 53년 만에 언론사 주관 상의 인사상 특전이 사상 처음 전면 폐지된 순간이다.

유력 언론사와 연관됐기에 결코 쉽지 않은 취재였지만 국민 상식에서 접근했기에 종국에는 제도 변화를 끌어냈다. 취재 과정에서 마주한 언론과 권력기관의 ‘수상한 유착’은 대수술이 시급했다. 이번 보도로 언론사와 정부 부처의 구시대적 '권언유착'에 경종을 울리고 영구적이고 포괄적인 제도개선을 이뤄낸 게 가장 뿌듯하다.

▲ 김태헌 CBS 기자
▲ 김태헌 CBS 기자

 

이번 취재에서 얻은 교훈 하나. 자꾸 취재가 막히고 사실 확인이 번번이 거절당한다면, 그 취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지쳐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격려와 충고, 술잔으로 힘을 준 사건팀장(캡)과 바이스, 팀 동료, 경찰 취재원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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