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숨 가쁘게 바뀌었다. 더불어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빠르게 달라졌다. 그러나 이를 기록하는 공간은 찾기 어렵다. 한국의 신문박물관은 과거에 멈춰있고, 방송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은 찾을 수 없다. 군사 독재 시절 보도지침과 언론계 촌지 문화·오보의 역사 등 ‘언론의 그늘’을 기록해놓은 곳도 없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디지털 미디어로의 변화가 언론계에 끼친 영향을 타임라인과 함께 맥락적으로 설명해주는 공간도 없다. 초 단위의 미디어 소비 속에, 정작 미디어가 궁금한 시민은 갈 곳이 없다. 

해외에는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박물관이 존재한다. 이들 박물관의 공통점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와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전망케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박물관이 있는 국가들은 언론 신뢰도 및 언론 자유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 사회도 시민과 소통하는 미디어박물관 건립에 대해 논의해야 하는 시점이다. 미디어오늘은 미디어박물관의 공공성·효용성, 그리고 박물관이 등장할 경우 기대되는 사회문화적 가치를 취재하고자 해외에 있는 다양한 미디어박물관을 찾아 나섰다. 이번 기획기사는 지면에 10회 연재될 계획이다. (편집자 주) 

▲독일 동베를린에 시내에 위치한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 ⓒ정철운 기자
▲독일 동베를린에 시내에 위치한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 ⓒ정철운 기자

6월12일, 동베를린에 위치한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 1층에선 만평에 대한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물 중 난민촌 상황을 실감 나게 묘사한 만평이 인상적이었다. 만평가가 직접 국경없는기자회와 함께 난민촌 현장을 찾아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 특별전시 주제는 ‘그림으로 표현되는 저널리즘’이다. 박물관 곳곳에선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체험 수업이었다. 손으로 사각형 종이박스를 만든 뒤 “손으로 하는 일은 미래에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놀이였다. 아날로그 작업 속에서 디지털의 미래를 전망하는 셈. 박스에는 대충 적은 답, 엉터리 답, 고민한 답이 가득했다. 

이곳의 ‘메인’은 우표다. 우표의 모든 것이 있다. 이곳은 1872년 세계최초 우체국 박물관으로 설립됐다. 우표수집가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 하지만 이곳은 우표박물관에 머물지 않았다. 1930년대 등장했던 헤드폰과 깡통 전화기부터 독일 나치의 국민 수신기 ‘VE301’까지 전시되어 있다. 나치가 값싸게 배포했던 이 라디오 아래 적힌 글귀는 이러했다. “모든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나치를 전달하는 데 사용됐다. 저렴한 국민 수신기는 전체주의를 위해 사용됐다.” 박물관은 과거 부끄러운 독재 권력의 언론장악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독일 나치의 국민수신기 'VE301'이 전시된 모습. ⓒ정철운 기자
▲독일 나치의 국민수신기 'VE301'이 전시된 모습. ⓒ정철운 기자

이곳에선 외국방송 청취 금지 등을 담은 1939년 9월1일자 나치 특별방송대책지침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일종의 보도지침이다. “모든 시민은 히틀러의 말을 들을 의무가 있다”, “전 독일은 지도자를 듣는다”와 같은 당시 나치의 선전구호부터 “방송은 선전의 관점에서 긍정적 보도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제국선전부장관 요제프 괴벨스의 연설도 소개되어 있었다. 심지어 이곳에선 괴벨스와 히틀러의 육성 연설을 직접 들을 수 있게끔 오디오 파일 서비스도 제공되고 있었다. 

150년 전 우표부터 전화, 그리고 괴벨스의 라디오까지 이 모든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란 키워드 아래 모여있다. 선사시대 벽화부터 오늘날 ‘트위터 세계지도’까지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한 모든 것이 전시되어 있다. 트위터 세계지도에선 리얼타임 트윗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대륙별 전 세계 트윗 숫자가 집계되고 있었다. 트윗이 올라오는 지역은 빛으로 가득했다. 쉽게 등장했다 쉽게 사라지는 현대적 커뮤니케이션을 보여주는 상징적 전자 장치였다. 

▲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 내에 자리잡은 트위터 세계지도. ⓒ정철운 기자
▲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 내에 자리잡은 트위터 세계지도. ⓒ정철운 기자

박물관 설립자 하인리히 폰 슈테판은 150년 전 당시 산업화의 시작과 국제우편협회 설립 등 통신수단의 발전과정을 보존하고, 정보전달 변화를 기록해야 한다는 역사적 인식이 있었다. 무엇보다 독일의 우체국 고위관료였던 그는 우체국뿐만 아니라 독일제국의 영광을 박물관으로 드러내고 싶어 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우표를 비롯한 많은 통신수단을 수집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박물관이 어떻게 150년간 유지될 수 있었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장 안야 샬루시케(Anja Schaluschke)를 만나 궁금증이 해결됐다. “우체국은 1995년까지 국가기관이었고 박물관도 국가 소속이었다.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았다. 분단 시절에는 서독에도 우체국 박물관이 있었고, 여기 동독에도 우체국 박물관이 있었다. 그러다 1995년 우체국이 민영화되면서 이 문화재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논의가 시작됐다.” 독일연방은 논의 끝에 독일연방이 주주인 우체국(도이체포스트)과 통신사(도이체텔레콤) 중심의 연방 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 우체국과 통신사가 재단의 재정을 담당하게 됐다. 

같은 해인 1995년 ‘우편 및 통신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재단 설립에 관한 법률’이 통과됐다. 정보전달 기술의 역사를 보존하고 기록하며 전달하고 전시하는 것이 재단의 목적으로 명시됐다. 샬루시케 박물관장 역시 “재단의 목적은 우표·통신을 비롯한 커뮤니케이션 전체의 발전과정을 모으고 보존하며 연구하고 전달하고 전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물관은 오랜 기간 제국우편부 소속이었으나 현재 재정부 소속이다. 박물관은 매년 재단에 다양한 사업을 설명하며 예산을 요청하고 있다.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에서는 과거 우편을 캡슐에 넣어 공기압력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이곳은 과거 우체국 박물관이었다.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에서는 과거 우편을 캡슐에 넣어 공기압력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이곳은 과거 우체국 박물관이었다. ⓒ정철운 기자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은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변화를 겪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전신·전화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기술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여주고 우표를 모았지만 지금은 커뮤니케이션 문화역사박물관의 특징이 강하다. 특정한 기술 발전이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기술이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에 응용되었는지에 집중한다. 그래서 박물관은 신호·언어·동굴벽화 등 세계 커뮤니케이션 혁명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박물관장의 설명이다. 그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특정 물체로 표현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현대를 묘사하고 전시하는 건 어렵다”고 덧붙였다. 

현재 재단에는 110여명 가량이 일하고 있으며, 그중 베를린 근무자가 40명이다. 재단은 박물관 3곳, 우표 아카이브 1곳, 그 외 소장품 저장창고 2곳을 운영·관리하고 있다.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에는 전시된 물품만 2000점 이상이며, 연간 13만 명 정도가 방문하고 있다. 특히 베를린 학생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 박물관은 베를린 ‘뮤지엄포털(www.museumsportal-berlin.de)’을 통해 프로그램 정보를 알린다. 그는 “실제 프로그램 기획·운영에서 시와 협력하는 건 도시 축제 정도다. 우리 내부 프로그램은 우리가 스스로 기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커뮤니케이션기술이 민주주의를 위해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 
우리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장 안야 샬루시케. ⓒ정철운 기자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장 안야 샬루시케. ⓒ정철운 기자

박물관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박물관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박물관의 핵심은 오리지널 소장품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점차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산다. 이런 디지털 세상에서 오리지널 소장품은 어떤 의미가 있나. 이 오리지널 소장품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나. 그리고 그 이야기가 지금 우리 인간에게 왜 중요한가.” 이 대목을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예컨대 이곳에는 국민수신기라는 오리지널이 있다. 괴벨스와 히틀러의 선동도 청취할 수 있다. 전시의 의미는 명확하다. “나치 시절과 관련해 독일은 정말 많은 토론을 했고 역사 청산작업을 지속해왔다. 이 테마를 완전히 다 전시할 수 있고, 그 맥락을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치와 동독 시절 미디어, 특히 라디오가 선전을 위해서 어떻게 오용되었는지는 중요한 주제다.” 현재 독일에서 극우 정치세력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불편한 역사를 반복해서 알리는 것은 박물관의 의무이기도 하다.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에 서는 괴벨스와 히틀러의 대중선동 연설을 직접 들을 수 있다.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에서는 괴벨스와 히틀러의 대중선동 연설을 직접 들을 수 있다.

그는 “독일에서 지금 더욱 어렵고, 큰 논쟁이 이뤄지고 있는 부분은 독일제국의 식민지 역사다. 독일제국의 우체국 시스템은 당연히 식민지 체제를 안정화하고 가능케 하는데 기여했다. 어떻게 이 이야기를 전할 것인가. 어떻게 이 역사를 알릴 것인가를 두고 토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성역 없는’ 전시를 지향한다. 

그는 “우편에 있어서는 전쟁 시기 커뮤니케이션을 보여주는 군사우편이 많은데, 이처럼 역사를 알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대상이 역사와 관련되어 있는지, 맥락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역사적 의미가 없다면 수집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는 “앞으로 저널리즘 관련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싶다. 나는 이곳에서 일한 지 1년 반 정도 되었고,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박물관이 있는 지역이 과거 베를린의 신문 구역이었다”며 “지금 만화 저널리즘을 전시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했다. 

샬루시케 박물관장은 “커뮤니케이션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다. 우리 일상과 정치적 삶을 볼 때 항상 커뮤니케이션이 함께 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트위터로 세계 경제를 움직이고 있고 SNS에선 혐오 발언이 반복된다. 커뮤니케이션기술이 민주주의를 위해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 우리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엇보다 “오늘날 정보의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 내 정보를 보호하는 것들이 우리 입장에서 정말 중요한 테마”라고 했다. 

▲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장 안야 샬루시케. ⓒ정철운 기자
▲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장 안야 샬루시케. ⓒ정철운 기자

이 같은 문제인식에 따라 박물관은 단순히 과거의 소장품을 전시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현재의 이슈와 대화하며 시민들에게 다가간다. 예컨대 미디어리터러시 프로그램은 재단의 업무영역에 명시되지 않은 사업이지만, 베를린 박물관에서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워크샵 중 가짜뉴스 주제가 있는데, 이는 미디어리터러시에 관한 것으로 저널리즘과는 다른 영역으로 구분된다. 미디어리터러시는 미디어를 어떻게 소비하는가의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가 다른 박물관과 차별화되는 점은 박물관에 미디어 교육자가 있다는 점이다. 이 미디어 교육전문가가 미디어리터러시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한다”고 했다. 그는 “가짜뉴스가 무엇인지, 가짜뉴스는 어떻게 등장했는지부터 인터넷 사용에 있어서 내 정보를 제대로 보호하는 방법, 혐오 발언에 대처하는 방법 등 다양한 테마로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물관은 시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홍보부서를 따로 두고 있으며, 수많은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뉴스레터를 발송하기도 한다. 소장품은 온라인으로 찾아볼 수 있다. 모든 활동은 박물관이 ‘현재’에 존재하기 위함이다. 그는 “박물관을 세울 때, 미래의 변화에 맞춰 어떻게 구조를 점검하고 반영하고 적응하게 만들지 고려해야 한다. 사회는 너무 빨리 변한다. 박물관에 변화를 따라가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박물관의 중요성을 (대중에게) 설득시키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프랑크푸르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1984년 스티브 잡스의 애플 매킨토시. ⓒ정철운 기자
▲프랑크푸르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1984년 스티브 잡스의 애플 매킨토시. ⓒ정철운 기자

샬루시케 박물관장의 추천으로 같은 재단이 운영 중인 프랑크푸르트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을 찾았다. 스티브 잡스가 1984년 제작한 애플 매킨토시가 전시되어 있었고, 페이스북은 아예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은 베를린보다 좀 더 현대적 감각으로 구성되었는데 방문 당시에는 ‘모바일’을 주제로 한 특별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프로파간다의 역사는 이곳에서도 등장했다. “라디오는 가장 현대적이고, 대중에게 영향을 주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나치 제국선전부장관 요제프 괴벨스의 문장과 음성은 국민수신기와 함께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에선 ‘언론자유를 위한 머나먼 길’이란 이름의 언론자유 섹션도 따로 마련해 놓고 있었다. 두 박물관의 공통점은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비판적 독해’다. 

150년 전 베를린의 우체국 박물관은 트위터 세계지도를 펼치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으로 절묘하게 변모했다. 미디어박물관을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박물관이 만들어진 뒤 어떤 문제의식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변화하는 미래에 적응하느냐다. 그런 면에서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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