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부터 2017년까지 사망한 집배노동자는 166명, 올해만 9명의 집배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2년 전 자신이 일하던 안양우체국 앞에서 분신한 고(故) 원영호 집배원 사망 후 노·사·전문가들이 사회적 합의기구인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을 출범해 지난해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7대 권고안도 발표했지만, 현장에 적용되긴커녕 ‘죽음의 행렬’이 이어졌다. 올해만 9명의 동료를 떠나보낸 집배노동자들이 135년 우정사상 최초 파업을 결의한 가운데,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7대 권고안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날 토론회는 올해 사망한 집배원을 비롯해 산업재해로 사망한 모든 이들을 기리는 묵념과 묵상으로 시작됐다. 2017년 제주지역 생수공장에서 현장실습 중 1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고 이민호씨 부모님과 지난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야간 작업 중 안전사고로 사망한 고 김용균씨(당시 24세) 어머니가 ‘집배노동자들 죽음의 사슬을 끊자는 심정’으로 함께 토론회에 임했다. 토론회장을 가득 채운 집배노동자들, 집배노동자 과로사자살방지 시민사회 대책위원회 관계자들, 토론회 참석자들은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집배원을 살려내자”는 구호를 외쳤다.

최승묵 집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 집행위원장(전국집배노조 위원장)은 “저 또한 현장에서 20년 동안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 곳곳 누비면서 일해왔는데, 같이 일하는 형제(동료)들이 죽는 이유를 몰랐다”며 “지난 2018년 10월에 권고사항이 나온 이후 세상이 많이 달라지겠거니 기대를 많이 했지만 과로사 방지 관련한 대책위가 다시금 가동될 수밖에 없는 이 현실, 노동조합에서 더 이상 형제들을 잃지 말겠다고 하는 결의, 이런 일들이 국가기관에서 버젓이 일어난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며 “고치겠다. 함께하겠다. 현실을 바꾸기 위해 과감한 실천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 7대 권고이행 점검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으며 "집배원을 살려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 7대 권고이행 점검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으며 "집배원을 살려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지난해 기획추진단 권고 사항은 △2000명 정규직 집배원 증원 △사회적 합의 통한 토요근무 폐지 △안전보건관리시스템 구축 △집배부하량산출시스템 개선 △조직문화 혁신 △집배원 업무 완화 위한 제도 개편 △우편 공공성 유지와 서비스 질 향상 위한 재정 확보 등이다. 기획추진단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2개 노조, 우정사업본부가 만나 권고안 추진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사가 같이 합의한 내용으로 권고안을 내는 데 합의를 도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오현암 전국집배노동조합 집배국장은 권고안 이행이 제대로 되지 않은 데다 노동조건이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정본부는 인력증원 예산이 통과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력 증원을 방기할뿐 아니라 인력은 충분하며 ‘재배치’하면 된다는 입장으로 전환했다. 뿐만 아니라 기획추진단이 권고한 정규인력이 아닌 위탁중심의 인력고용계획을 유지 및 확대했다”는 것이다.

토요택배 폐지의 경우 “정부기관으로서 대안적 배달문화를 위한 노력 일환으로 사회적합의를 주도해야 함에도 이행하지 않았다. 토요택배페지 계획이 없는 이원화 근무로 현장의 갈등이 증폭됐다”고 전했다. 또한 “집배업무를 표준화하기 부적절한 집배부하량을 근거로 지속적으로 개인평가 및 인력, 초과근무시간 산정으로 활용했다. 조직문화개선 권고와 맞물려 여전히 부하량 게시 등으로 내부경쟁 문화가 유지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류일광 우정사업본부 우편물류과장은 “정규직 2000명 증원을 한다고 말씀드린 적은 없다. 노사 합의사항이기 때문에 합의를 이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토요택배 폐지는 인력충원 전제로 이원화하는 게 맞다. 그러나 토요근무는 가능하면 우정본부 집배노조에서도 폐지해달란 얘기가 많아서 가능한 한 아웃소싱을 하려고 준비 중이다. 올 연말 가시적 효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답했다.

▲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 7대 권고이행 점검 토론회'에 참석한 집배노동자들이 토론회 관련 자료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 7대 권고이행 점검 토론회'에 참석한 집배노동자들이 토론회 관련 자료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류 과장은 ‘추진단 권고안이 비현실적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고, ‘우정사업본부 공식 입장이 기획추진단 권고안은 비현실적인 안이므로 반영하기 어렵다는 것이느냐’는 질문이 거듭되자 “그렇다”고 답했다. 이를 들은 과로사대책위 소속 김동근 연구원은 “정말 뻔뻔하다. 권고안에 대한 노사 조율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비현실적 방안을 내놨다고 말하면 여기서 뭘 할 수 있겠나. 토론할 마음 없이 온 것”이라며 격분했다.

이정희 연구원은 “인력 증원 권고 내용을 보면 ‘정규인력 증원’이라는 표현이 있고, 더 말씀드릴 것은 노동조건 개선이 타자 노동조건 악화를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토요근무 폐지를 전제로 하되 현실적 조건 감안하면 일정기간 이원근무를 통해서 토요근무를 전체 배달 노동자들이 같이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토론회를 지켜보던 강원지역 집배원은 “저 역시도 나이 50이 넘고 일한 지 20년 넘어가니까 몸 성한 데가 없다. 다리도 6번 수술해서 절뚝거리며 계단을 오르내리면서도 가족 먹여살려야 하기 때문에 아침에 눈떠서 나간다”며 “시간외수당 못 달게 하지, 사람 안 주지, 거기에 업무해라, 보험상품 팔아라, 하다못해 쓰레기봉투 파는 것도 직원한테 할당을 다 준다. 바른소리 한 마디 하면 승진 누락시키겠다는둥 조직생활 못하게 한다. 목구멍 풀칠하려고 죽지 못해 나가는 직장이니 어느날 누우면 못일어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주지역 집배원은 “우정사업본부 자체에서 집배원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게 아닌가, 노동인권 개념이라는 게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우체국에서 쓰는 용어들이 그 사람의 조직의 수준들을 나타낸다. 집배원들이 배달 나가고 들어오는 걸 출국, 귀국이라고 표현하는데 건물이 중심이지 사람이 중심이 아니다. ‘집배인력’이라는 것도 집배원을 사람이 아니고 일하는 노동력으로만 보는 것”이라고 집배원에 대한 우정사업본부 인식을 지적했다. 이날 전국 각지에서 온 집배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손 들어 발언 기회를 요구해 4시간여 토론 시간이 부족했다.

▲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 7대 권고이행 점검 토론회' . 사진=노지민 기자
▲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 7대 권고이행 점검 토론회' . 사진=노지민 기자

편도인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기획과장은 “그전에는 우편업이 근로시간특례업종이었는데 7월1일부터는 제외된다”며 “출퇴근 시간 관리시스템에 평균적으로 누락되는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 분명 미지급수당을 반드시 지급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고 안 하면 임금체불의 문제가 생긴다”고 밝혔다.

토론회에 참석한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20대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가장 많이 찾은 현장이 장례식장이다. 촛불정부가 들어선 뒤 정의당 국회의원들은 이제 노동자 밥그릇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도 국민 목숨을 지켜야 하는 기가 막힌 현실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면 인사말에서 “우정사업본부가 당면하고 있는 재정상 문제가 집배원 때문이 아님에도 계속해서 집배원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다. 과로사를 막기 위해 TF를 만들고도 이행하지 않는 것은 우정사업본부의 직무유기라고 밖에 볼 수 없다”며 “이번 추경에서 집배인력 증원을 위한 예산안을 처리하고, 나아가 기획추진단에서 합의한 정규직 집배인력 2000명 증원 이행을 위한 정부부처간 논의도 조속히 마무리지어 더 이상의 과로사를 막아야 한다”고 국회 역할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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