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울신문이 할 일은
지금 서울신문이 할 일은
[미디어오늘 1207호 사설]

“정부가 서울신문을 민영화하겠다는 의지가 있나 봐. 주는 건 없지만 그래도 정부 최대주주라 여러 이점이 있었는데. 안에선 벌써 불안하다고 난리다.” 호반건설이 포스코가 가진 서울신문 주식 19.4%를 인수해 3대 주주가 됐다는 소식에 서울신문 중견간부 한 명과 주고받은 SNS 대화다. 그의 걱정대로 민영화 수순일 수도 있다.

우리 정부는 KBS와 MBC, 연합뉴스, 서울신문 등 전통 미디어 몇몇을 소유하고 있다. 프랑스는 ‘68혁명’ 이후 70년대 초부터 10년간 긴 논의끝에 80년대 초 미테랑 정권때 지상파 1TV를 민영화했다.

68년 혁명 내내 프랑스 1TV는 시위 소식을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이승만의 개인방송에 불과했던 당시 KBS는 4·19 혁명을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부산MBC가 시위현장을 라디오로 생중계한 것과 너무도 달랐다.

프랑스 국민들은 이런 전국민적 관심사에 눈 감은 1TV를 용서하지 않았다. 이런 국민적 반감에 기초해 프랑스는 1TV를 민영화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권력도 정부 소유 언론을 민영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서울신문 주식 20% 가까이가 민간, 그것도 건설사에 넘어갔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다.

“안에서 잘 싸워라”는 덕담으로 그와 SNS를 끝냈다. 여기엔 여러 의미를 담았다.

서울신문은 러일전쟁을 취재하러 온 영국인 기자 베델이 양기탁 등의 도움으로 1904년 7월18일 대한매일신보로 창간했다. 발행인이 외국인이라 일제 통감부 검열을 받지 않았고, 덕분에 훌륭한 항일 기사를 썼다.

▲ 대한매일신보 창간호
▲ 대한매일신보 창간호

 

대한매일신보는 계몽정론지로 우리 언론사에 좋은 역할도 했지만 영미주의라면 뭐든 좋다는 시각을 심은 것도 사실이다. 대한매일신보는 당시 조선을 미개한 나라라고 낮춰 봤다. 특히 서울의 도시 위생을 강조하면서 대대적으로 ‘똥’을 공격했다. 똥만 치우면 금세 강대국이 될 것처럼 묘사했다.

대한매일신보는 1909년 4월16일자에 “똥통과 부엌이 한데 붙어 음식 기운에 똥냄새가 바람결에 혼합하니 구역질 나서 못살겠네”라고 서울의 비위생을 질타했다. 당시 계몽신문은 똥으로 문명과 야만을 갈랐다.

불과 한 세기 전 연암 박지원이 “문명은 기왓조각과 똥거름에 있다”고 설파한 것과 너무도 상반된다. 당시 연암은 세계 최강국 청나라 문명의 정수를 ‘똥’에서 찾았다. 이 명제만큼 연암의 사유가 농축된 문장도 드물다.

문명의 토대를 똥에서 찾은 연암과 똥이야말로 개화자강의 걸림돌이라고 본 대한매일신보의 담론 차이를 이해하면 우리는 분명 새 역사를 쓸 수 있다.

병자호란 때 삼전도 치욕 뒤 인조는 북벌론을 통치이념으로 세웠다. 이는 청을 오랑캐로 보고 자신을 소중화주의로 무장한 조선후기 지배권력의 자뻑이다. 청 문명의 역동적 기류에 눈뜬 소현세자가 조선에 돌아와 의문사한 이유도 여기 있다. 북벌은 점점 가능성이 희박해질수록 더 더욱 ‘신성불가침’의 이념으로 떠받들어졌다.

18세기 연암 때로 오면 아무 내용도 없이 그저 껍데기 뿐인채 주로 반대파를 공격할 때만 유효하게 사용되는 도그마에 불과했다. 연암은 ‘허생전’에서 북벌론의 허구를 실랄하게 혁파한다. 연암은 낡은 권력을 향해 “북벌이 소원이면 한번 실행해 보라”고 일갈한다.

근대화의 담론을 서구에서만 찾았던 대한매일신보의 한계는 분명했다. 더하여 서울신문은 한국 현대사에 수많은 죄를 졌다. 베델의 대한매일신보는 일제강점기엔 매일신보란 이름으로 조선총독부 기관지가 됐다. 1940년 조선, 동아일보마저 폐간되자 매일신보는 유일한 한글신문이 됐다.

춘원 이광수는 1943년 11월4일자 매일신보에 쓴 ‘조선의 학도여’란 시에서 “이 성전의 용사로 / 부름받은 그대 조선의 학도여 / 지원하였는가, 하였는가 / 특별지원병을~”이라고 외쳤다. 김동인은 매일신보 1944년 1월17일자에 쓴 ‘반도민중의 황민화’란 논설에서 “내 몸은 이제부터는 내 것이 아니요, 또는 가족의 것도 아니요, 황공합게도 폐하의 것”라고 썼다.

시인 서정주가 1944년 12월9일 그 유명한 ‘마쓰이 오장 송가’를 쓴 곳도 매일신보다. 시인 노천명이 1943년 8월5일자에 쓴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란 시를 쓴 곳도 매일신보다. 자유당 독재에 항거한 언론인 팔봉 김기진도 매일신보 1943년 8월1일자에 “반도의 아우야, 아들아 나오라! / 님께서 부르신다, 동아 백만의 천배의 / 용감한 전위의 한 무대로 너를 부르신다”고 노래했다.

▲ 서울신문 홈페이지
▲ 서울신문 홈페이지

 

장준하 선생은 ‘사상계 수난사’에서 서울신문을 향해 “(총독부 기관지였던) 서울신문은 8·15 해방과 동시에 건준이란 미명으로 여운형이 조직한 단체한테 접수돼 우리 동포에게 끼친 악영향은 결코 소홀히 볼 수 없다”고 했다. 해방 직후 서울신문이 한때 좌익의 소굴이 된 걸 비판한 글이다. 장준하 선생은 “이후 서울신문은 자유당 정권의 앞잡이로 국민을 기만했다. 5·16 후에도 서울신문의 범죄는 여전히 많다. 군사정부의 시책에 너무 무비판적으로 찬사만 보냈다”고 평가했다.

지금 불안해 하는 서울신문 식구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떤 권력도 아닌 시민의 편에 서는 것이다. 지금 내가 쓰는 기사가 시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살피고 또 살피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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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07-06 19:50:00
민주정부에서 신문 민영화라고? 그건 너무 갔다. 민영화는 과거부터 보수가 꾸준하게 주장했던 일 아닌가. 민영화해서 국민에게 이익을 준 기업이 몇이나 있을까? 포스코? Kt? 한전(부분민영화)? 내가 볼 때는 민영화된 기업 대부분은 재벌들이 가져가서 사익으로 가져갔다. 이번 서울신문 사건도 포스코 지분 아닌가. 서울신문 직원들이 단합해서, 헤럴드경제(중흥그룹)처럼 기업신문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