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촬영이 끝난 후에야 밤을 새우는 스태프가 있다. 촬영·조명팀들이 촬영장에서 밤을 새운다면 촬영장 밖에선 ‘후반작업자’들이 밤샘 작업한다. 편집, VFX(비주얼이펙트), DI(색보정) 작업자들이다.

생소한 단어지만 익숙한 기술이다. 드라마 색감이 영화 같단 생각이 들면 DI 노동이 집약된 결과물을 본 것이다. 흔히 ‘CG작업’이라 부르는 VFX는 화려한 3D 시각물부터 상품 브랜드명 삭제까지 화면 구석구석에 녹아 있다. 그러나 노동자 대부분이 촬영 현장에 나가지 않아 현장 스태프조차 이들 존재를 모른다. 

‘보이지 않는 드라마 노동자’ 후반작업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VFX 작업자 A씨와 DI 작업자 B씨는 26일 저녁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준비한 ‘드라마 제작 노동자 오픈테이블’에 참석했다. “드라마 뒤에 우리가 있다”는 이름으로 꾸려진 최초 드라마 후반작업자 간담회다. 

▲6월26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서울 상암동 '휴(休)서울미디어노동자쉼터'에서 후반작업자들이 참가한 '드라마 제작 노동자 오픈테이블'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6월26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서울 상암동 '휴(休)서울미디어노동자쉼터'에서 후반작업자들이 참가한 '드라마 제작 노동자 오픈테이블'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VFX·DI 현장엔 방송사가 후반작업 이해 없이 물량을 그대로 떠민다는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최소 1주일 전에 맡겨야 할 일을 3일 전에 맡긴다거나 드라마 방영 직전 급히 추가 물량(컷)을 밀어넣는 경우가 허다하다. “환영회 같은 데서 사발식하면 마지막 사람이 남은 술을 다 마시잖아요? 그게 후반작업이에요.” 후반작업은 한 마디로 ‘사발식 마지막 순서’라며 VFX 작업자 A씨가 한 말이다. 

B씨는 몇 달 전 100시간 넘게 잠을 자지 못했다. 마지막 제작 단계인 DI팀은 CG 처리가 된 편집본을 받아 색보정을 한다. 교통체증처럼 편집이 밀리면 CG 작업이 밀리고 DI 작업 속도는 더 미뤄진다. 방영일 3일 전에야 한 컷씩 편집본이 전달됐다. 편집본이 통째 전달되지 않으니 한 컷씩 전송되는 즉시 처리하는 24시간 대기조로 4일을 일했다. A씨는 이를 “지옥을 마주한 느낌”이라 했다. 

참기 힘든 건 차별 대우다. 이들을 동등한 창작자로 보지 않고 아랫사람 부리듯 하는 방송사 정직원들이 적지 않다. 편집기사 등 스태프를 두루 거쳐본 B씨는 DI를 맡으면서 PD들의 하대를 처음 겪고 충격을 받았다. 대부분 1~3년차로 조연출을 맡은 드라마 PD들이었다. 이들은 편집기사에겐 ‘식사 못하셔서 어떡하느냐’며 ‘뭘 사다드릴까요’라 물었지만 바로 옆에 있던 DI팀에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B씨는 ‘의견제시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질책도 들었다. 

▲VFX, DI 작업 등 후반작업자들은 촉박한 시간 내 많은 물량을 처리해야 해 야근이 잦다. 사진은 한 DI작업자가 근무 중 찍은 에너지드링크 캔 사진.
▲VFX, DI 작업 등 후반작업자들은 촉박한 시간 내 많은 물량을 처리해야 해 야근이 잦다. 사진은 한 DI작업자가 근무 중 찍은 에너지드링크 캔 사진.

 

간담회에선 처우 개선부터 방송사 관리직들의 인식 전환까지 다양한 요구가 나왔다. 열악한 제작 환경은 같지만, 현장 스태프 임금 수준이 관습법처럼 정해져 있다면 후반작업엔 기준이 아직 없다. A씨는 “임금은 낮은데 야근은 잦다”며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요구가 가장 높다고 밝혔다. B씨는 “턴키 계약을 근절하고, 후반작업자를 창작자로 존중하는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조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서로 얼굴을 봐야 노조도 만드는데 후반작업은 서로 만나기조차 힘들다’는 자조도 있었다. 이날 간담회에 오기로 한 참석자도 원래 4명이었으나 2명은 갑자기 야근이 잡혀 참석하지 못했다. 실제 VFX 작업자 모임 설립을 시도한 적이 있는 10년차 C씨는 “이 점이 가장 큰 벽이다. 무력감에 젖은 분위기도 어려운 문제”라 말했다. 

한빛센터는 이를 감안해 이번 하반기 후반작업자 모임 추진에 매진할 계획이다. 한빛센터는 2주 뒤인 7월10일 신입 스태프 모임을, 7월24일엔 미술·소품·의상·분장팀 스태프 모임을 연다. 후반작업자들의 2차 간담회는 8월14일 서울 상암동 한빛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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