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인이 무너진 자리, 아직도 그곳에 있는 이들
크레인이 무너진 자리, 아직도 그곳에 있는 이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붕괴사고 피해노동자 구술모음집 ‘나, 조선소노동자’

2017년 5월1일 노동절 낮 2시52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가장 안쪽에 있는 7안벽 조립장. 아파트 40층과 맞먹는 높이의 800톤 골리앗크레인과 32톤 지브크레인이 부딪혀 지브크레인이 무너졌다. 크레인은 잠시 일을 멈추고 쉬거나, 화장실 줄을 서거나, 다음 작업을 준비하던 노동자 100여명 위로 쓰러졌다.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다.

그로부터 2년 후 당시 현장에 있던 9명의 노동자들의 구술을 담은 책이 나왔다. ‘나, 조선소 노동자’(코난북스)는 이날 산업재해 피해 노동자들이 사고가 나기까지 일해온 환경, 사고 상황과 이후 겪은 일들을 입말 그대로 담았다.

“산재가 난 노동현장에서 왜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가장 잘 아는 이는 노동자다. 대책도 현장 이야길 들어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가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적은 없다. 반면 위험노동 현장에서 산재는 매일같이 벌어진다.” 책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7년 9월까지 조선업에서 업무상 사고로 324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한 달에 2명 꼴이다. 이 가운데 257명이 하청 노동자다. 이은주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활동가가 “죽음의 현장에 있던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다.

이들 노동자들이 말하는 현장은 ‘산재는 상황에 따라 생길 수밖에 없다’는 통념을 뒤집는다. 거제조선소에는 모듈 한 층에만 수백명이 일하는데 자그만 간이용 화장실 1개가 놓였다. 식수대는 공기(공사기간)이 빠듯할 때는 아예 철거됐다. “물도 먹지 말고 일해라 이거지.” 사고 직전에는 그나마 지키던 안전선도 무너졌다. 이들이 작업하던 마틴링게 해양플랜트 구조물 옆에 새로 작업할 배가 들어왔다. 안전감독관이 눈감은 사이 혼재 작업이 이뤄졌다.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골리앗크레인 모습. 사진=삼성중공업 블로그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골리앗크레인 모습. 사진=삼성중공업 블로그

사고 후 대응 과정도 마찬가지다. 사고는 언론에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붕괴’로 알려졌다. 노동자들은 삼성중공업에서 나온 돈을 받고 삼성중공업 조선소에서 일했다. 정작 사고가 나자 삼성은 피해 노동자들에게 “진짜 문자 한 통, 전화고 지랄이고 아무것도 없었”다. 삼성 측은 맨 마지막에 합의서에 서명하는 날에야 나타났다. 합의서에 서명한 뒤 언론과 인터뷰 할 수 없던 다른 유족들과 달리 그 자신도 부상자라 언론 인터뷰를 지속할 수 있었던 박철희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그날 사고로 동생 박성우씨를 잃었다.

“정말 대기업하고 합의한다는 과정이요, 얼마나 서글픈지 몰라요.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협상하는 과정에 삼성 측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아요. 하청업체끼리 꾸린 협의회가 있는데 그 사람들이 합의를 진행하죠.” 삼성은 개중 가장 ‘취약해 보이는 집’부터 합의에 들어갔다. 가족 간 결속력이 약한 집들이다. 박씨는 언론 인터뷰 때마다 삼성의 사과를 받고 싶다고 말했지만, 기사에서 해당 부분은 잘리기 일쑤였다.

피해 당사자들은 “지금도 크레인이 무너진 자리에 서 있다.” 사고가 난 뒤 옮겨진 병원 창문으로 공사 중인 크레인을 쳐다보지 못했던 이들은 지금까지도 공사 현장을 피해 도망 다닌다. 김오성씨와 같이 사고를 겪은 동료는 이력서를 넣은 회사에서 ‘내일부터 출근 가능하느냐’고 물어오면 ‘딴 데 들어가기로 했다’고 말한다. ‘일을 못하겠구나’하는 느낌이 들어서다. 이들은 날마다 관련 기사도 검색해본다. 삼성 측이 혹여 사과하지 않았는지, 삼성중공업 외 노동현장에서 사고는 안 났는지 확인한다.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이 기획해 펴낸 책 ‘나, 조선소 노동자’ 표지. ⓒ 마창거제산추련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이 기획해 펴낸 책 ‘나, 조선소 노동자’ 표지. ⓒ 마창거제산추련

박씨는 26일 미디어오늘에 “(책이 출판된 뒤) 솔직히 그날로 다시 돌아가는 것 같아 읽어보지 못했다. 이은주 산추련 활동가가 말미에 쓴 글만 봤다”고 했다. 그는 “책으로라도 우리가 하는 이야기가 그대로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산재 피해 노동자들을 보고 ‘일하다 그렇게 된 건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위험한 공간에서 일했고, 무리한 공사일정으로 사고가 났다는 점이 알려지길 바래요.”

박씨는 삼성의 사과를 첫째 요구사항으로 꼽았다. 정당한 보상은 그 다음이다. 생업 복귀와 트라우마 치료 지원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물리적으로 다친 이들은 원직 복귀하기도 하지만, 트라우마 치료를 받는 지금까지 정상적 삶으로 돌아가기 힘들어요. 우리는 지금까지 크레인만 마주쳐도 피해다닐 정도예요. 원직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생업 복귀나 직업 교육 지원도 이뤄져야 해요.”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과 금속노조, 정의당 여영국 의원실은 26일 저녁 7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2소회의실에서 ‘나, 조선소 노동자’ 북콘서트를 연다. 거제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피해 노동자들과 산재 피해자 가족모임 ‘다시는’이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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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06-26 20:31:38
힘들어도 연대해서 말해야 한다. 한국민 전체가 자본주의를 받아들였지 않은가. 그리고 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자본주의 강자는 기업과 재벌이다. 이들과 맨몸으로 싸우면 절대 이길 수 없다. 우리가 받아들인 민주/자본/시장경제 체제 아래서, 전략적으로 사례를 모아서 함께 대응해야 조금은 가능성이 있다. 급격한 산업화와 성장은 한국사회에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자신도 공부해야 하고 강력한 노동시스템과 매뉴얼이 필요하다. 무조건 시위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판례가 쌓여서 빈틈없는 법이 되듯이, 여러 사례가 모이고 시간이 지나야 한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말하고 정치에 참여해야 세상은 조금씩 변한다. 너무 느리다고 불평하지 말고, 우리 아이들과 후손을 먼저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