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무용 전공자 K씨(53)는 성폭력 피해 후 14년 만에 입을 열었다. 지난해 3월 ‘미투 사이트(현재 폐쇄)’에 실명 고발글을 올렸다. K씨는 2004년 남한산성 인근에서 모교 한 체육학부 명예교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무용과 재학 시절 학부장이었던 교수였다. 아무 저항을 못했던 K씨는 자책감에 시달렸고 지금까지 자살충동을 느껴 매일 우울증약을 먹는다.

#. 박희정씨(가명·49)도 과거 성추행 피해를 말하는 데 9년이 걸렸다. 박씨는 무형문화재 승무(27호)·살풀이춤(97호) 보유자 고 이매방 선생으로부터 춤을 배운 이수자다. 박씨는 지난 1월, 2010년 6월 한 술자리에서 10여년 무용 선배인 김아무개씨가 자신의 다리를 만지며 성희롱했고 술자리 후엔 ‘모텔에 가자’며 자신의 어깨를 밀었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지난해 12월 김씨가 이매방춤보존회 회장이 된 것을 보고 “그는 회장 자질이 없다”며 글을 썼다.

무용계에선 사제 간 위계질서가 강력한 전통무용계에서 성폭력 사건이 은폐되기 쉽다고 입을 모은다. 현대무용에 비해 공론화된 사례가 실제 드물뿐더러 스승을 중심으로 ‘족보 체제’가 형성돼있어 문화가 더 폐쇄적이라는 이유에서다.

▲2018년 3월17일 K씨가 국가인권위에 2004년 있었던 성폭행 피해 사건을 진정했다. 인권위는 1년 기간 안 사건만 처리한다고 답해 진정은 처리되지 않았다.
▲2018년 3월17일 K씨가 국가인권위에 2004년 있었던 성폭행 피해 사건을 진정했다. 인권위는 1년 기간 안 사건만 처리한다고 답해 진정은 처리되지 않았다.

피해자 K씨와 박씨 모두 당시 무용계에 사건을 밝히지 못했다. K씨는 사건 직후 친했던 여자 선배 무용수 2명에게 털어놨지만 ‘니가 들고 일어나면 너만 피해본다’ ‘어떡하느냐. 우리는 힘이 없다’ 등의 답을 듣고 좌절했다.

박씨는 전통무용계 특성상 사건을 알리면 무용을 할 수 없게 된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전통무용 피해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한 50대 전통무용인 A씨는 무대에 올려준다는 조건으로 원로 무용인으로부터 잠자리를 요구받은 피해 사건과 선생을 조수석에 태우고 가다 팔과 허벅지 추행을 당한 피해자를 안다. 모두 ‘전통무용계는 너무 좁아 결국 내가 무용계를 떠나게 될 것’이란 우려로 침묵했다.

침묵이 길면 불이익은 피해자에게 전가된다. 법적으로 다툰다 해도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증거자료를 찾기 힘들어 가해자로부터 허위주장이라 반박당하기 쉽다. K씨 경우 2018년 초 국가인권위원회, 여성인권진흥원 등을 찾아갔으나 공소시효와 증거부족 문제로 대응이 어렵다는 답만 들었다.

▲2019년 4월19일 광주MBC '한국의 명인-우봉 이매방' 편 갈무리
▲2019년 4월19일 광주MBC '한국의 명인-우봉 이매방' 편 갈무리

박씨는 허위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당시 박씨는 김씨 손을 뿌리치고 울면서 인근 편의점으로 뛰어갔고 점원의 도움으로 택시를 잡았다. 사건이 오래 지나지 않았다면 증인이 될 수 있지만 9년 전 일이다. 박씨는 택시 안에서 통화를 했던 친구와 가족의 진술서, 사건 후 우울증이 심해져 정신과 치료를 받은 기록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A씨는 전통무용계가 특히 폐쇄적인 이유로 족보구조를 들었다. 전통무용은 스승을 그대로 따라하며 춤을 전수받는 구조다. ‘무형문화재 보유자→전수조교→전수자→이수자’ 등의 순으로 수직적 사제관계로 이뤄져있다. 예로 이매방의 춤을 배우려면 다른 학교를 찾기 보다 이매방 선생 밑으로 들어가야 배울 수 있다. 전수집단 내에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기 어렵고 선생에 대한 비판은 거의 불가능하다. A씨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을 진지하게 하는 곳이 전통무용계”라 말했다.

한편 김씨는 박씨의 피해고발과 관련 “모두 허위 주장이고 사실이라면 모든 직을 내놓을 정도로 결백하다”며 “이매방춤보존회 내 갈등이 지속되던 차에 내가 회장이 됐고, 직후 고발이 올라왔다. 보존회 내 세력다툼과 관련된 의도성 짙은 고발이라 본다”고 밝혔다.

 


 

우봉이매방춤보존회 회장, 성추행 혐의로 피소

승무·살풀이춤 인간문화재 고(故) 이매방 선생의 춤보존회 회장이 성추행 혐의로 피소됐다. 

한국무용 전공자 박희정씨(가명·49)는 지난 5월 김아무개 우봉이매방춤보존회장을 강제추행 및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박씨는 지난 1월 자신의 SNS에 9년 전 김씨의 성추행을 폭로했다. 이에 김씨가 허위사실이라며 박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자 박씨도 쌍방 고소에 나선 것이다. 

사건 전 박씨와 김씨는 과거 일본 토쿠시마지역에서 열린 축제를 함께 참가한 안면만 있던 사이였다. 박씨는 선배 김씨를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러다 2010년 6월26일 박씨는 경기도무용단의 한 전통무용가 안아무개씨 부탁으로 찬조 출연한 한 공연장에서 김씨를 다시 만났다. 

사건은 공연 2차 뒷풀이 장소인 수원 나혜석 거리 인근 술집에서 벌어졌다. 술에 취한 안씨가 걱정된 박씨는 안씨가 김씨와 단둘이 2차 술자리를 가지는게 걱정돼 동석했다. 박씨는 안씨가 테이블에 고개를 묻은 후 성희롱·성추행이 이어졌다고 고발했다. 박씨는 고소장에 "김씨가 허벅지, 어깨 등을 계속 만졌고 불쾌감을 표시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며 "'춤출 때 요염하다'거나 '함께 자자'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을 안다' 등의 성희롱을 했다 밝혔다. 

박씨는 두려움에 화장실로 자리를 옮겨 남편에게 와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고소장엔 술자리가 파한 직후 김씨가 박씨를 쫓아가 어깨를 붙잡으며 '모텔에 가자'고 한 일도 적혀 있다. 

당시 우울증을 겪고 있던 박씨는 이 사건 직후 불안증세가 심해져 사흘 정도 신경정신과 입원 치료를 받았다. 이 사건은 남편과 신뢰 관계가 깨져 별거를 결심하는데 큰 계기가 되기도 했다. 

김씨는 이와 관련 "박씨 주장은 허위사실이며 인천연수경찰서에서 명예훼손 기소의견으로 박씨를 검찰에 이미 넘겼다"며 "춤보존회 내 세력다툼 상황 속에서 불순한 의도로 이뤄진 폭로"라 반박했다.

 


 

「‘미투’까지 14년, 피해자가 숨는 전통무용계」 기사 관련 반론보도

본지는 지난 6월26일 「‘미투’까지 14년, 피해자가 숨는 전통무용계」 등 제목으로 우봉이매방춤보존회 회장인 김 모 씨의 성추행 혐의 피소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 모 회장은 보도상 박희정 씨(가명)가 피해를 주장하는 성추행 당일, 회식에 앞서 공연장에서 박희정 씨와 만난 적이 없으며 해당 회식자리도 대형 호프집이었고 단 둘이 아닌 출연한 사람들 다수가 함께 한 자리였으므로 추행 등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음을 알려왔습니다.

또한 해당 사건으로 인해 박희정 씨가 남편과의 신뢰관계가 깨져 별거에 이르게 됐다는 내용은 동의할 수 없음을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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