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7일, 순천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선배 약혼녀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사건이었다. 피해자가 범행을 피하려다가 아파트 6층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지만, 살해범은 범의를 멈추지 않고 변장을 하고 내려가 도망가려던 여성을 다시 끌고 올라가 살해한 엽기적인 사건이었다.

한 이웃 주민은 범행 당일 여성의 비명이 들렸지만 정신질환이 있는 여성이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여자의 비명은 들렸지만 남자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피해 여성이 소리를 지르며 도망을 다니는 동안 침착하게 아무 목소리도 내지 않고 범행한 범인의 모습을 상상하니 더욱 소름이 끼쳤다.

이 사건은 며칠 동안 몇몇 매체에서 주목하긴 했지만 곧 제주 전 남편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잊히는 것 같았다. 고유정의 이름과 얼굴은 공개됐지만, 도망가려는 피해자를 다시 끌고 가 강간살해한 정아무개씨의 잔혹한 범죄의 주인공은 여전히 베일에 감춰져 있다. 그는 범행 후에 본인의 집에 있다가 체포됐는데 이 과정을 목격한 집주인조차 그가 왜 경찰에 연행됐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사건이 비현실적으로 잔인하기도 했지만,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하게 된 것은 그가 전자발찌를 찬 성범죄자였기 때문이다. 최근 ‘실화탐사대’에서는 고위험군 성범죄자들의 출소 후 관리 실태에 대해 연달아 점검했는데, 이 사건은 역대급으로 참담했다. 전자발찌를 착용했지만 술 마시고 새벽 5시까지 돌아다니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니. 물론 보호관찰관의 해명이 이해가 안 되는 바도 아니었다. 술을 마신 장소가 본인 집 근처였고, 새벽에 출근하는 사람이었기에 그 시간에 돌아다니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말 대로라면 이동 경로와 시간대가 평소와 비슷하면 전자발찌로는 범죄 예방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의 음주 습벽은 심각했다. “주량이 얼마나 되요?”라는 말을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술을 밤새워 마시는 게 습관이 됐던 사람이지만 그에게 음주 제한은 없었던 모양이다. 이 사람의 이전 전력이 다 ‘알코올 의존증’ 더하기 성폭력이었기 때문에 전자발찌를 차고도 음주 습벽이 점점 심해진다면 추가적인 준수 사항을 지정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것들은 집행되지 않았다.

▲ 지난 6월19일 ‘실화탐사대-선배 약혼녀 살인사건, 그는 왜 추락한 여인을 끌고 올라갔나?’ 방송 갈무리
▲ 지난 6월19일 ‘실화탐사대-선배 약혼녀 살인사건, 그는 왜 추락한 여인을 끌고 올라갔나?’ 방송 갈무리
▲ 지난 6월19일 ‘실화탐사대-선배 약혼녀 살인사건, 그는 왜 추락한 여인을 끌고 올라갔나?’ 방송 갈무리
▲ 지난 6월19일 ‘실화탐사대-선배 약혼녀 살인사건, 그는 왜 추락한 여인을 끌고 올라갔나?’ 방송 갈무리

 

안타까운 순간은 또 있었다. 2013년 범행 당시 검찰이 화학적 거세라고 할 수 있는 약물치료 명령을 이례적으로 청구했으나 기각됐다는 점이다. 경남지역에서는 최초의 약물치료청구이며, 전국적으로도 5번째에 해당하는 사례였다고 한다.

그가 화학적 거세를 피한 과정을 따져보니 더욱 기가 막혔다. 우리나라는 현재 정씨처럼 가학적이라고 해서 화학적 거세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성도착증’ 이 있어야만 화학적 거세를 할 수 있는데, 정씨가 시종일관 ‘방어적인 태도’를 보여 성도착증이 있는지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신감정의는 시종일관 고충을 토로했다.

“변태 성욕 진단과 관련이 있는 성적 행위의 75개 묘사가 포함된 질문지에 대하여도 전혀 흥미 없다고 답변했고 (중략) 이는 극단적인 반응 양상으로 볼 때 방어적인 태도로 시사됨. 피치료 명령청구자가 방어적 태도를 보여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2013년 정씨 정신감정서 중)

성도착증이 있어야만 치료대상이 될 수 있는데, 성도착증이 있는지 검사가 본인의 협조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성도착증을 판별하는 표준화된 검사 도구가 국내에 없기 때문이다. 자극을 주었을 때 음경이 얼마나 커지는지를 조사하는 기구가 있기는 하지만 외국인 체형에 맞는 기구라 한국인에게 맞지 않고, 시각주시검사 역시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는 사진들로 구성돼 있어 객관적인 검사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성도착증을 진단할 수 있는 의료 기구를 한국인에게 맞게 개발 또는 개조해야 하는데, 이 또한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현재 성도착증 검사는 본인의 ‘설문조사’ 결과와 의사 면담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성도착증 검사에서 시종일관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정씨. 그래서 그는 성도착증 환자 진단을 면했고 화학적 거세를 면할 수 있었다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 조윤미 MBC ‘실화탐사대’ PD
▲ 조윤미 MBC ‘실화탐사대’ PD

피해자는 소문난 효녀였다. 파킨슨병을 앓았던 어머니를 오랫동안 돌봤고, 팔순이 넘는 아버지에게도 지극 정성이었다. 학원 강사를 하며 번 돈으로 부모님을 보살피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부모님 식사를 살뜰하게 챙겨왔다고 한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가, 몸이 아프다면서 인터뷰를 다른 날 하자고 했다. ‘죽지 못해 살고 있다’며 힘겹게 입을 뗀 피해자의 아버지는 몸이 조금 회복되면 다시 연락 주겠다고 했지만 방송 전날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스무 살 이후로 반복해서 성범죄를 저질러 왔던 정씨. 사람으로 태어나 어떻게 자기 성욕 한번 채우자고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짓을 할 수가 있을까? 어떻게 죽어가는 사람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그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차마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그에게 이번에는 제발 정당한 법의 심판이 내려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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