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비평계에서도 한 원로 교수가 성폭력 사건이 지속 접수돼 소속 비평협회에서 제명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한 사립대 무용과 종신명예교수이자 무용비평가인 L씨는 지난해 11월 자신이 공동창립한 한국춤비평가협회에 성폭력 사건이 다수 고발되면서 협회에서 제명됐다.

무용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협회가 접수한 사건은 3건으로, L씨가 △초등교사 시절 무용을 배우는 초등학생을 성추행한 건 △교수 재직 당시 학생들을 학교 앞 모텔로 불러 논문 지도한 건 △차량 이동 중 동석한 조교를 성추행한 건 등이다. 다만 협회는 L씨에 의한 피해를 알릴 당사자를 찾지 못했고 내부에 누적된 사건을 바탕으로 당사자 소명을 거쳐 회원 자격을 박탈했다.

한국춤비평가협회는 무용계 내 손꼽히는 비평협회로, 지난해 3월 미투운동 국면에서 내부 자정의 일환으로 미투소위원회를 꾸렸다. 협회는 홈페이지 연혁에 지난해 3월 미투소위를 결성했고 11월 L씨 회원 자격을 회수했다고 밝혔다. L씨는 “학생을 모텔로 부른 건 맞지만 달리 논문 지도할 장소가 없었고, 신체 접촉은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L씨는 탈춤 무용수이자 협회 창립인 중 한 명으로 협회 공동대표를 지냈다. 한 사립대 무용과를 정년퇴임한 뒤 현재는 종신명예교수이다. 한국무용사학회 등 다수 무용계 학회 회장도 역임했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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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무용계 관계자는 L씨를 두고 “이들 사례가 워낙 무용계에 파다하게 퍼진 터였다”며 “성 비위 관련 풍문으로 유명한 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무용계 인사는 “지난해 문학‧연극 등 문화예술계 미투운동이 일었을 때 업계에 그의 풍문이 다시 돌았다. 그러나 폭로는 나오지 않았고 협회 차원에서 미투소위를 꾸렸다”고 했다. 그는 “L씨 입장에선 협회를 나가는 선에서 끝난 게 일이 더 커지지 않고 마무리된 것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투소위 내 사건 처리 과정은 녹록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 사정을 접한 한 무용인은 2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소위) 구성원부터 성폭력을 어쩔 수 없는 무용계 관행이나 ‘어른의 손버릇’ 정도로 받아들이는 문제가 있어 처리가 어려웠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협회는 추가 조사나 사례 접수는 하지 않기로 하고 활동을 마무리했다.

L씨는 24일 미디어오늘에 “나는 떳떳하다. (성폭력 주장은) 옛날 뜬소문일 뿐”이라고 말했다. L씨는 “시대가 (미투) 이렇게 해버리니 다들 물러나는 시대가 돼버렸다. 만약 그런 사람(피해자)이 있다면 직접 고발하라고 했는데 하지 않았다”며 “협회 제명이 아닌 ‘자의 탈퇴’다. 나도 나이가 있고 몇 년 전부터 사퇴를 고민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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