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정부가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사전 협의 없이 배상판결 해법을 성급하게 내놨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일본이 배상판결 보복에 나서면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걸로 보인다’는 강경화 외교부장관 발언을 두고 일부 야당 의원들이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다. 

한국 대법원은 지난해 일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에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 청구권이 있다고 인정했다. 정부는 지난 19일 “소송 당사자인 일본 기업을 포함한 한일 양국 기업이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하여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위자료 해당액을 지급함으로써 당사자들 간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제기된 바 있다”며 일본 정부에 이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피해 당사자들의 의견 수렴 절차도 없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강 장관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의견을 들었느냐는 이정현 무소속 의원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며 “피해자들 의견은 재판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충분히 표현됐다고 본다”고 밝혔다.

▲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현안보고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현안보고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이 의원은 강 장관에게 “피해자들이 동의도 안 했고 의견도 안 들었다. 일본군 ‘위안부’ 협상에 대해 (박근혜 정부 시절) 외교부가 피해자들 의견도 동의도 듣지 않고 국민 정서를 무시해왔다고 하는데 똑같은 경우”라고 지적했다. 이에 강 장관은 “사법부 절차 마지막 판에는 소송당사자들에 대한 피해 보상이 핵심이다. 이 사안과 위안부 합의는 전혀 다른 사안이다. 강제징용 문제는 최고사법부의 확정판결 내린 결과를 정부가 존중하면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정부 ‘위안부’ 문제가 근본적으로 틀어지게 된 요인이 뭔가. 피해 당사자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 결국 강제징용 문제나 위안부 문제나 피해 당사자가 동의할 때 이 문제는 해결되는 거라고 본다”며 “일본 정부가 사과하더라도 당사자가 그만하면 됐다고 얘기할 때 (해결이)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대가 있으면 상대와 충분한 교감을 가진 다음에 발표해야 하는 거 아닌가.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게 외교인가”라는 지적도 했다. 

이날 강 장관 관련 보도에서 상당수를 차지한 강 장관의 발언은 “가만 있을 수 없다”는 대목이었다. 유기준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 때문에 포항제철 주식에 대한 배당금 강제집행이 곧 실시될 거다. 일본 입장에서는 너무 큰 일이 발생했고 다시는 한국과 대화는 물론 일체접촉하지 않겠다, 보복을 생각할 거라는 말도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은 뒤 나온 답변이었다.

강 장관은 “그런 보복성 대응조치가 나온다면 우리도 그에 대응할 수밖에 없고 상황이 악화될 걸로 보인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면밀히 준비와 협의를 하고 있다. 보복조치가 있을 경우에는 가만 있을 수 없을 걸로 보인다”고 답했다.

▲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현안보고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현안보고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그러자 정진석 한국당 의원은 “‘일본 보복 조치 있을 경우 가만 있을 수 없다’, 장관이 이렇게 답변해도 되나. 내일 신문 1면 톱기사 제목거리다”라고 비판했다. 정 의원은 “피해는 일본과 한국 중 누가 더 보나. 어떻게 이렇게 함부로 얘기할 수 있느냐”고 큰 목소리로 질의를 반복한 뒤 “장관의 인식과 자세가 아주 유감스럽고 걱정스럽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일본 보복조치 있을 경우 가만있지 않겠다는 말이 유효한가”라고 물었다.

강 장관은 “(보복조치가 있으면) 가만 있을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며 ”그만큼 상황 악화가 되는 걸 방지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말씀을 드린 것”이라고 재차 설명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일관계를 일본 정치집단이 잘 이용하고 있는데 한국을 때리는 것이 일본에 득이 되는 것처럼 대중을 선동하고 있다. 선거 분위기 때문에 한일 정상회담도 뜨뜻미지근 한 게 아닌가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며 “강제징용 피해자,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고통과 피해, 그것이 포함하고 있는 전쟁범죄와 인권잔혹사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채로 마치 우리에게 질책할 게 있는 것처럼 하면서 반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야당이야말로 국익에 커다란 손해를 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추 의원은 “한일 관계를 잘 관리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정부안이 성급한 거 아니냐는 질타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힌뒤 “일본측의 사죄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식으로 선후관계가 잘못되지는 않길 바란다”며 강 장관에게 신중한 대응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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