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수 언론의 핵발전 관련 보도를 보고 있으면, 어떤 단어를 붙여야 할지 모르겠다. 모든 문제를 ‘탈원전 정책 탓’으로 돌리는 ‘기-승-전-탈원전 반대’ 기사가 쏟아져 나온 지 벌써 2년이 되었지만, 갈수록 강도가 강해진다. 특히 최근 UAE 핵발전소 기술 유출 논란이나 영광 한빛 1호기 사고를 둘러싼 기사를 보고 있으면 할 말을 잃는다. 이들 사건에 대해 모두 ‘탈원전 정책 탓’을 하고 있으나, 정작 탈원전과 상관없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묵묵히 핵발전소 운영 현장을 지키는 노동자들을 모독하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 관련 기사 : 조선비즈) 인재로 밝혀진 한빛 1호기 사고… “탈원전 지속되면 실수 반복될 것” / 조선비즈) “탈원전 후 원전기술 해외유출은 예견된 결과”… 공기업 3사에서 작년 144명 퇴사]

UAE 핵발전소 운영사인 나와(Nawah)로 이직한 이들이 핵발전소 핵심 기술을 유출했다는 사건을 먼저 보자. 아직 수사가 끝나지 않아 정확한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보수 언론은 ‘탈원전 후 원전기술 유출은 예견된 결과’라며 ‘탈원전 정책 이후 원전 핵심 인력 이탈이 현실화되면서 기술 유출 우려가 제기되었다’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용의자들은 2015년에 이직한 이들이다. 보수 언론 자신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기사 한쪽 편에 한수원에서 해명한 이 내용을 그대로 옮겨 싣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이직한 이들이 벌인 사건을 ‘탈원전 탓’이라고 싸잡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이 사건이 예견된 것이라며, 핵심 인력 이탈이 이번 사건의 원인인 것처럼 보도하는 것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기술인력 이직으로 인한 문제가 아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전략물자인 핵발전소 진단 소프트웨어를 수출하면서 ‘교육목적’으로 허위보고했다는 것이다. 전략물자는 대량살상무기 등의 제조, 개발 등에 전용될 가능성이 있어 수출입이 엄격히 제한된다. 이를 허위보고하고 무단 수출했다면 이는 엄연한 범죄 행위이다. 즉 단순한 인력 유출이 아니라, 스파이 행위에 준하는 범죄 행위가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탈원전 정책으로 기술 유출이 벌어졌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술을 먹었으니 폭행은 늘어났다고 말하는 것만큼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이다.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직장을 옮기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때문에 범죄 행위가 늘어났다는 말은 범죄를 두둔하거나 이직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는 매우 위험한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를 매번 인터뷰에 응하는 몇몇 원자력공학과 교수를 앞장세워 ‘탈원전 반대’의 근거로 삼고 있다. 

▲ 원자력안전위원회가 6월24일 전남 영광방사능방재센터에서 ‘한빛 1호기 수동 정지’ 사건과 관련 중간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원자력안전위원회가 6월24일 전남 영광방사능방재센터에서 ‘한빛 1호기 수동 정지’ 사건과 관련 중간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얼마 전 원안위가 ‘인재’로 규정 내린 영광 한빛 1호기 사건에 대한 보도는 더욱 황당하다. 원안위는 특별사법경찰을 투입해서 한빛 1호기 사건을 조사했다. 그 결과 원안위는 무자격자의 원자로 조종, 운영기술기침서 미준수 등 원자력안전법 위반 사항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보수 언론은 “(탈원전 정책으로) 우수 인재가 발전소에서 이탈하고, 근무 몰입도가 떨어져 한빛 1호기와 같은 인적 실수가 반복될 수 있다”라는 전문가 의견을 기사에 달고 있다. 또한 “탈원전 지속되면 실수 반복될 것”이라며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제목으로 사용했다. 이번 사건이 우수하지 못한 이들의 실수로 규정 내린 것이다. 또한 현재 한수원 인력에 문제가 있어 이런 사건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이번 사건을 ‘탈원전 반대’의 근거로 사용하다 보니 한수원 전체가 우수하지 않은 이들만 남아있는 곳으로 폄하되고 있다. 

탈핵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나는 그동안 한수원과 핵산업계 전반을 비판해왔다. 하지만 핵발전소 운영 현장에서 성실하고 묵묵히 일하는 다수 노동자들의 노고를 무시하거나 폄하한 적은 없다. 이들이 없다면, 핵발전소 안전은 지켜질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한수원 납품 비리 등을 거치면서 다수 노동자들이 겪었던 혼란과 고통을 알기에 이들을 도매금으로 비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핵발전 정책에 관한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서로 지킬 것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말로는 ‘우리나라 원전 생태계’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해온 보수 언론이 정작 누구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는지 다시 한번 꼼꼼히 기사를 읽어보기 바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