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작가 주영욱씨가 지난 16일 필리핀 현지에서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 지난 21일 첫 보도가 시작됐다. 360건이 넘는 수많은 기사가 쏟아졌다. 필리핀에서 한국인 대상으로 살인 사건이 일어난 만큼 중요하게 보도할 만한 사안이었다.

관심이 집중되자 언론은 제목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목에 자극적 단어를 붙였다. 주씨가 어떻게 죽었는지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고인과 유가족을 기사에 끌어들였다.

▲ 아시아경제 소속 A기자가 지난 21일 유가족 동의를 얻지 않고 유족 입장을 기사화했다. 사진=아시아경제 보도화면 페이지
▲ 아시아경제 소속 A기자가 지난 21일 유가족 동의를 얻지 않고 유족 입장을 기사화했다. 사진=아시아경제 보도화면 페이지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을 보면 공인이 아닌 개인의 얼굴, 성명 등 신상 정보와 병명, 가족관계 같은 사생활에 속하는 사항을 공개하려면 원칙적으로 당사자 동의를 받아야 한다. 또 사망자와 유가족 인격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단독]. 독자적 내용을 보도할 때 제목에 붙이는 문구다. 아시아경제는 주씨 유가족 요청까지 이용해 단독 장사에 나섰다. 아시아경제 A기자는 지난 21일 오전 “‘손 뒤로 묶인 채 머리에 총상’ 한국인 여행 작가 주영욱, 필리핀서 숨진 채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같은 날 한국경제TV, 세계일보, 스포츠경향, 매일경제, 헤럴드경제, 서울신문, 서울경제, YTN, 스포츠투데이, 충청매일, 데일리한국, 공감신문, 기호일보, 마이데일리, 메디컬리포트, 당진신문, 한국정경신문, 이코노뉴스, 한강타임즈, 브릿지경제, 국제신문 등도 비슷한 제목을 달았다.

유가족은 고인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제목을 수정해달라고 아시아경제에 요청했다. 문제가 된 기사 제목은 “한국인 여행 작가 주영욱, 필리핀서 숨진 채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수정됐지만 유가족들은 이후 예기치 못한 기사를 마주했다.

아시아경제 A기자는 지난 21일 오후 “[단독] ‘필리핀 피살’ 주영욱 유족 ‘자세한 보도 큰 상처, 더 이상 원하지 않아’”라는 제목으로 유가족들 항의까지 기사화했다. 아시아경제는 보도 과정에서 유가족 동의를 받지 않았다.

정영일 아시아경제 디지털뉴스부장은 25일 미디어오늘에 “첫 기사는 유가족 측에서 제목 수정을 요청한 뒤 수정했다”고 밝혔다.

정 부장은 단독까지 붙여 유가족 입장을 후속 보도한 것에 “유족이 기사화를 원치 않는다고 말한 부분을 기사화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이런 보도를 하지 않으면 다른 언론사가 유사한 보도를 낼 것이다. 그것을 막는 차원에서 (후속) 기사를 썼다. 아시아경제 보도가 나간 후 실제로 기사가 줄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보도된 기사 수는 150건을 넘었다.

A기자는 유가족에게 가족 사진까지 요청했다. 사진 요청 이유에 정 부장은 “요청은 다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 건 기본적으로 다 한다. 일반 사회부 기자들은 이렇게 취재한다. 이 정도 요청은 일반적이지 않느냐”고 했다.

우리가 몰라도 될 정보도 쏟아졌다. 한국경제는 지난 21일 “필리핀서 숨진 채 발견, 주영욱 누구? 멘사 회장 출신·여행 칼럼니스트”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서울경제도 “주영욱은 누구? 여행 작가, 전 멘사코리아 대표… 필리핀서 숨진 채 발견” 제목을 달았다.

이밖에도 동아일보, 뉴스핌, 아시아경제, 이투데이, 세계일보, 티브이데일리, MBN, 비즈엔터, 데일리한국, 뉴스투데이, 메디컬리포트, 스포츠투데이, 위키리크스한국, 뉴스인사이드, 문화뉴스, 메트로신문 등에서도 유사하게 보도했다.

충청리뷰는 지난 22일 “주영욱, 청부살인 가능성도? ‘男 106만원·女 53만원’”이라는 제목으로 청부 살인 의혹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확인되지 않는 추측성 보도다.

“여행작가 주영욱, 일파만파 참담함에 전율을, 반드시 색출해서 응징을” 충청매일과 당진신문, 기호일보 등 3곳은 내용을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자극적인 키워드를 넣어 난해한 제목을 똑같이 달았다. 죽음 앞에 언론은 검색어를 나열했다. 노골적으로 클릭 장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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