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 쯤이면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전년도 상담과 권리구제 사례를 정리하고 분석하는 노동상담 사례집 발간 작업이 한창이다. 한 해 마무리하고 바로 발간하면 좋지만, 서울시 민간위탁기관의 성격상 예산 승인도 받아야 하고, 업무가 밀리기도 하다보니 이즈음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올해도 2018년도 상담과 권리구제 결과를 정리하는데, 눈에 띄게 권리구제 승인율이 낮아졌다. 노동위원회는 주로 노동자들이 정당한 이유없이 해고됐을 때 구제신청을 하러 찾아가는 곳이다. 부당해고만이 아니라 부당한 징계나 인사처분도 구제신청 할 수 있다. 

승인율이 낮아진 이유가 뭔지 찾다 보니 지원한 노동위원회 사건 유형이 많이 달라졌더라. 2017년에는 35건의 노동위원회 사건 중 24건이 직접 부당해고 당한 건이었는데, 지난해엔 46건 중 해고 당한 건은 14건 밖에 되지 않고, 26건이 기간만료 통보를 받은 건이었다. 기간만료통보 사건은 센터에서 권리구제를 시작한 2016년 이래 총 6건 밖에 승인 받지 못할 정도로 이기기 어렵다. 결국 승인율 하락은 승인율이 낮은 사건을 신청해서다. 

▲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기간만료 사건을 이기기 어려운 이유는 분명하다. 계약기간에 대한 근로기준법상의 제한이 없으니 계약기간을 정하는 것은 자유이고, 계약기간이 끝나서 근로관계를 종료해도 근로기준법상 해고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는 조금 더 복잡하다. 채용당시에 근로계약서에 계약기간이 있었지만, 원래 그런 것이라고 했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실제로도 계속 일했다. 3개월, 6개월, 1년 계약이 반복되다 보니 근로계약서의 내용도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고 당연히 계속 일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내부 갈등이 생기거나, 실수 하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계약기간 만료 통보해 버린다. 즉 계약기간 만료 통보의 실제 이유는 기간 자체가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다. 이유는 기간만료라는 형식에 묻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 입장에서 느끼는 상실감도 해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때 계약기간은 실제 근로관계에 필요한 기간이 아니라 해고 제한을 회피하려는 기간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상시지속으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근로자를 3개월, 6개월 단위로 쪼개 반복 채용할 이유가 없다. 또 그 기간이 총 2년을 넘으면 기간제법에 의해 무기계약으로 전환이 된다는 것 외에 2년의 기간을 넘으면 안되는 다른 이유가 있을까?

그러나 기간제법도 5인 미만 사업장, 55세 이상의 고령자, 학업과 병행하는 경우 등 많은 예외가 있고, 이들에게는 판례로 인정되는 갱신기대권 외에는 기댈 곳이 없다. 그러나 예외를 인정받아야 하는 만큼 구제 가능성이 낮고, 불안정한 지위만큼 임금수준도 낮아, 전문가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지난해 센터를 찾아와 지원 요청한 많은 노동자들은 바로 이런 분들이었다. 해고와 유사한 신뢰의 침해를 당했지만, 사용자의 우월적 지위를 바탕으로 만든 계약기간이라는 형식 때문에 구제가 어려운 이들을 지원하지 않으면, 이 문제는 쉽게 은폐돼 버린다. 실제로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정당하게 다투어 볼 기회조차 박탈돼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근무중 뿐 아니라 근로관계 종료 이후까지도 우월적 지위에 있는 상대방의 판단에 종속돼 버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낮은 승률에도 불구하고 기간만료 노동자를 지원하는 이유는 이처럼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사라져 버릴 문제들을 붙잡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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