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던 지난해 11월21일 느닷없이 새벽 4시에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출발하는 6411번 시내버스를 타고 새벽 출근길 시민들을 만났다. 부총리 후보를 따라 나선 한 기자는 “새벽 출근길에 시내버스를 타고 시민들을 직접 만나는 등 민생 현장을 발로 뛰는 모습”이라며 호평했다. 이 기자는 6411번 버스를 “고 노회찬 의원이 2012년 진보정의당 출범 기념행사 당시 ‘강남 빌딩에 출근하지만 투명인간으로 사는 청소근로자가 타는 버스’라고 소개했다”고 보도했다.

덕분에 ‘6411번 버스’는 고유명사가 됐고 국민들은 ‘노회찬의 6411번 버스’라 부른다. 과연 그럴까. 노 의원이 6411번 버스를 첫 호명한 ‘2012년’ 이전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 6411번 버스가 고유명사가 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다.

지금은 공공운수노조로 이름이 바뀐 공공노조는 2007년 연말 고작 3만명으로 출발했다. 이미 300여개 공기업엔 대부분 노조가 있어, 더는 노조 확대가 어려웠다. 공공노조는 가장 공공적인 일을 하면서도 가장 소외된 ‘청소’노동에 주목했다.

한국 사회 임금노동자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직종이 ‘청소원’이다. 건물청소원, 환경미화원, 세차원을 통칭하는 ‘청소원’은 전체 임금노동자 중 3.2%로 그 인원은 2005년 기준으로도 43만2411명에 달했다. 청소노동자 중 74.3%가 여성이고, 비정규직 비율은 77.4%였다. 평균 연령은 57.2세다. 거리 청소를 빼면 청소노동자는 90%가 여성 고령노동자다.

2007년 겨울 공공노조가 만난 6411번 새벽 버스 속 청소노동자는 하나 같이 도시락 가방을 메고 있었다. 당시 구내식당은 용역노동자인 청소노동자에겐 ‘접근불가’였다. 최저임금 받는 청소노동자가 도심의 화려한 빌딩 옆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돈은 없다. 도시락을 싸올 수밖에 없다. 도시락마저도 편히 먹을 공간이 없었다. 나날이 빌딩 안에서 청소노동자 공간은 없었다. 화장실 변기 옆, 계단 밑, 지하창고, 배관실 등이 청소노동자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공간이었다. 거기서도 ‘음식냄새 난다’, ‘화재위험 있다’며 데워 먹을 수 없었다. 이렇게 청소노동자는 도심 속 유령처럼 화장실에서 찬밥 먹기를 강요당했다.

공공노조는 2008년부터 청소노동자에게 법에 보장된 휴게실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준비했다. 1년 넘는 준비 끝에 시민사회를 만났다. 공공노조는 2009년 10월부터 넉 달 동안 시민사회단체와 모두 6차례 회의를 거쳤다. 처음엔 ‘의자’, ‘휴게실’ 같은 다양한 캠페인 소재가 제시됐다. 논의 끝에 캠페인 이름은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로 정해졌다. 줄여서 ‘따밥’. 처음엔 너무 시혜적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3·8 세계여성의 날 공동기획단은 세계여성의 날 102돌을 앞두고 2010년 2월부터 ‘따밥’ 캠페인을 시작했다.

별도로 공공노조는 새벽 첫차로 출근하는 청소노동자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하는 ‘첫차’ 캠페인도 벌였다. 시민들 관심도 높아졌다.

따밥 캠페인에 불을 당긴 건 언론운동단체로 알려진 네티즌 모임 ‘진실을 알리는 시민(진알시)’였다. 진알시가 올린 따밥 아고라 청원은 10일만에 1만5000명 넘게 서명했다. 진알시는 ‘따밥’ 캠페인은 미디어법 반대 청원보다 2배 이상 빠르게 진행됐다고 했다.

▲ “청소엄마들에게 따뜻한 밥한끼를…” 다음 아고라 청원.
▲ “청소엄마들에게 따뜻한 밥한끼를…” 다음 아고라 청원.

한 유명 작가도 서명에 동참했다. 어떤 건축가는 ‘공공건축물 설계시 근로약자를 배려’하지 못한 자신을 반성했다. 한 국회의원은 간병노동자와 함께 서서 밥을 먹었고, 전직 국회의원은 새벽 첫차를 타고 청소노동자를 만났다. 공공노조는 실태조사와 함께 휴게실 개선과 식권지급을 요구했다.

석달 뒤 2010년 6월5일 토요일 오후엔 ‘청소노동자 행진’이 벌어졌다. 도시의 유령, 청소노동자들이 빗자루를 들고 대학로에 모였다. 따밥에 온 힘을 쏟은 공공노조 비정규직실장은 건강을 해쳐 휴직해야 했다. 청소노동자의 공공성을 사사건건 부정하고 공공부문 청소노동자 임금 인상과 고용 확대를 매번 삭뚝삭뚝 잘라온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이벤트 홍보를 오롯이 뒷받침하는 기사를 보면서 불편했다. 아는 것만 쓴 뒤 “뭐가 잘못이냐”는 기자들을 매일 보는 게 불편하다. 자신이 몰랐던 사실들을 모아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는 게 기자의 덕목이라고 배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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