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는 ‘재벌’이라는 스트롱 집단이 있다. 거기서 언론사 수익 구조를 좌우하니 정말 수많은 가짜 경제뉴스가 판을 치고 있다. 재벌이 신문사 목줄을 쥐고 있다. 이 영역은 시장 논리도 통하지 않는다. 다른 저널리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경제 저널리즘 영역은 정말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 비관적이다.”(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언론의 자본 종속화는 정말 병폐다. 특히 한국 자본주의 재벌 세습 문제, 경제력 집중 문제가 극심하다보니 언론의 자본 종속도 다른 나라보다 심각한 양태다. 이에 더해 한국사회는 엘리트 카르텔 부패가 고질적이다. 엘리트 카르텔을 이루고 있는 주요 그룹이 대형 미디어 언론인 아닌가. 세습 자본주의 병폐와 부패한 엘리트 카르텔, 단순히 기자 교육 문제로 해결할 수 없다. 한국사회 구조 모순과 직결돼 있다.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조영철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24일 오후 서울 종로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가짜뉴스가 한국경제 망친다’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한국 언론에 내린 진단은 사실상 사망선고에 가까웠다. 이날 세미나는 ‘언론학자의 모임’ 미디어공공성포럼이 주최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경제 왜곡 보도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였으나, 재벌 대기업에 종속된 현재 언론 구조에서 마땅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암울한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만큼 한국의 경제 저널리즘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찍은 지 오래다.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가짜뉴스가 한국경제 망친다’ 세미나 발제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가짜뉴스가 한국경제 망친다’ 세미나 발제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발제를 맡은 이봉수 원장은 한국 경제 저널리즘을 크게 네 시기로 나눠 분석했다. ①1997년 외환위기 전후 ②2008년 경제위기 보도 ③2012년 대선 국면 위기설 보도 ④2014년 경제위기 처방 논란 등이었다. 그는 이 시기 나타나는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신문 경제 보도의 정파성 등을 분석한 뒤 현 문재인 정부에서도 위기와 공포를 조장하고 통계를 왜곡하는 보도 행태를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김영삼 정부는 ‘신한국’이라는 개혁 경제 어젠다를 띄웠으나 언론들은 주목하지 않았다. 대신 언론이 집중 부각한 담론은 ‘국제화’, ‘세계화’였다. 문재인 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 분배 중심 담론을 ‘혁신성장’이라는 성장 담론이 대체하는 현상과 닮아있다. 

이 원장은 이어 “수출증가율이 1996년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당시에도 언론은 난리가 난 것처럼 보도했다. 수출이 떨어지면 모든 경제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수출에 지나친 집착을 보였다”고 진단한 뒤 “하지만 이 시기 우리경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수출증가율이 하락해도 동행지수순환변동치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언론이 수출 이외 고용이나 생산 변수를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한승수 경제팀이 들어서며 금융 등 각종 규제가 완화됐고 언론은 IMF 외환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정권에 대한 호불호에 따라 보도 논조가 180도 뒤바뀌기도 했다. 4%대 경제성장률로 경제 상황이 나쁘지 않았던 2004년 5월 조중동은 “‘한국서 기업해요?… 난 떠날 겁니다’”, “경제는 수렁에 빠지는데 개혁만 외치니”, “한국경제 악순환 늪 허우적” 등 위기를 부추겼다. 정작 세계 금융 위기가 도래한 2008년 9월에는 “‘한국경제 9월 위기 없다’”, “삼성 사장단 ‘위기설 과장’” 등 우호적 보도를 쏟았다. 박근혜 정부 추경 예산을 반겼던 언론이 문재인 정부 추경 예산에 ‘총선용 퍼주기’라고 표변한 것과도 맥이 닿아있다. 

이 원장은 최저임금 인상에 비난 일변도인 현 언론에 대해 “2018년 한 해 동안 6개 경제지에서 ‘최저임금’을 검색하면 매체별로 최대 4343건, 최소 2232건의 기사가 뜬다. 대부분 기사에 ‘해고 도미노’, ‘고용 참사’, ‘물가 폭등’ 등 부정적 제목이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청년실업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지만 최근 전반적으로 고용이 늘고 저임금노동자 비중이 줄어드는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일부 성과도 나타나고 있지만 실업자 수 증가에 초점을 맞추는 등 보도하고 싶은 것만 보도하는 프레이밍 현상이 경제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표 사례가 지난 12일자 한겨레와 조선일보 보도다. 통계청이 발표한 5월 고용동향을 근거로 보도한 두 기사인데 제목은 극과 극으로 달랐다. 조선일보는 “실업자수 5월 기준 사상 최대… 3040·제조업 취업자 감소 장기화”라고 달았고 한겨레는 “5월 취업자 26만명 증가…생산가능인구 고용률도 역대 최고”로 뽑았다. 

이 원장은 “둘 다 사실이지만 조선일보는 취업을 포기했던 여성 등이 경제활동인구로 유입되면서 실업률은 올라갔지만 고용 사정이 개선되고 있는 사실을 제목에서 부각하지 않았다”며 “조선일보와 한겨레 독자들은 한 사안을 두고 완전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통계 일부분만 확대해 경제 위기를 조장하는 보도는 실제 경제 침체를 가져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경제는 경제주체 심리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원장은 언론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경기후퇴’, ‘불황’, ‘경제위기’, ‘공황’ 등 극단의 용어를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24일 오후 서울 종로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가짜뉴스가 한국경제 망친다’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 왼쪽부터 최경영 KBS 기자,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 조영철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정재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사진=김도연 기자
▲ 24일 오후 서울 종로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가짜뉴스가 한국경제 망친다’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 왼쪽부터 최경영 KBS 기자,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 조영철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정재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사진=김도연 기자

토론자로 참여한 조영철 고려대 교수는 “지금의 경제 보도는 문재인 정부를 의도적으로 공격할 목적이 다분하다”며 “2018년이 고용위기, 고용참사, 고용대란이라고 말할 정도로 위태로운가. 그렇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 두 번째로 고용률이 높았던 해”라고 반박했다. 조 교수는 “언론이 무차별적으로 때리다보니 경향신문과 한겨레도 ‘고용쇼크’ 단어를 쓰게 됐다. 한국 언론의 경제 왜곡 보도는 정말 심각한 상태”라고 비판했다. 

최경영 KBS 기자는 “일단 ‘침체’, ‘공황’ 등 선정적이고 자극적 단어를 써야 기사가 잘 팔리고 그래야 데스크에게 인정을 받는다. 이런 구조에서 공포와 위기를 자극하는 보도는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미디어를 비평하는 이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들이 하나의 시장을 이뤄 더 좋은 비평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시장에 공영방송도 적극 뛰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경제 기사 하나하나에 대한 팩트체크도 중요하지만 경제 보도 프레임을 분석하고 어젠다를 제시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며 “경제 뉴스가 아무래도 어렵다보니 독자나 시청자들은 경제 뉴스를 외면하고 싶어 한다. 이 때문에 팩트체크에서 더 나아가 프레임 체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언론의 자본 종속화 문제에 공감대를 가졌다. 언론인 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팩트체크 활성화 등도 대안으로 제시됐으나 ‘경제 저널리즘의 자본 종속성 탈피’가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점에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대안은 쉽게 찾기 어려웠다. 이 원장은 “재벌이 신문사 목줄을 쥐고 있다. 이 영역은 시장 논리도 통하지 않는다. 다른 저널리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경제 저널리즘 영역은 정말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라고 했다. 

▲ 김중배 언론광장 상임대표가 24일 오후 서울 종로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가짜뉴스가 한국경제 망친다’ 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김중배 언론광장 상임대표가 24일 오후 서울 종로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가짜뉴스가 한국경제 망친다’ 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이날 세미나 축사는 김중배 언론광장 상임대표가 맡았다. 그의 말도 주목할 만하다. 김 대표는 “가짜뉴스가 한국경제를 망친다(세미나 이름)고 하지만 거꾸로 경제가 사람을 망친다”며 “신자유주의 역사가 인간을 괴물로 만들었다. 저 자신도 신자유주의 생태에 감염돼 있다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엉뚱한 경제 도그마, 그 도그마 정책이 인간을 괴물로 만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장 일변도 정책에 대한 일갈이었다. 

1957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 첫 발을 디딘 언론인 김 대표는 1990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내다 1년 만에 “언론은 이제 권력과의 싸움에서 보다 원천적인 제약 세력인 자본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며 사표를 던졌다. ‘김중배 선언’으로 남은 이 말은 한국 언론의 일그러진 오늘을 보여주는 거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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