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자금을 받은 명단에 언론인도 포함돼있다는 검찰 발표로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정치권과 기자들의 유착관계가 사실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참여연대가 이석희전 국세청차장과 언론인의 재수사를 촉구하며 이들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충격의 여파가 언론계 안팎으로 확산되고 있다. ▶ 관련기사 3·8면

△돈 받은 의혹 언론인 10명 확인=검찰이 지난 8일 수사결과 발표 때 밝힌 언론인 20여 명 중 본지가 입수한 의혹 대상자 명단에는 모두 10명이 포함돼 있으며 이들은 중앙일간지 3개사, 중앙방송사 3개사, 지방방송사 2개사에 속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내역에 따르면 이들이 수수한 금액은 1500만원(1명), 300만원(2명), 200만원(7명) 등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대부분 당시 한나라당 쪽으로부터 촌지 성격의 수표를 받아 배서한 기억이 전혀 없고 수표에 배서 한 필적조사를 위해 검찰 등 관계기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일도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당시에 돈을 받았냐는 질문에는 적극적으로 부인하지는 않았다. 일부 언론인은 “정확한 기억은 없다. 다만 당시의 시대상황상 촌지 수수관행으로부터 자유로웠다고 단호하게 말하기는 어렵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들의 명단 공개와 관련, 신상규 서울지검 3차장은 “개인적으로 볼 때는 정치권과 언론인의 관계에 잘못이 있다면, 처벌관계를 떠나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알려야 하며 언론계 내부적으로 책임을 질 부분이 있으면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공소시효가 만료돼 검찰의 입장에서는 수사할 수 없는 부분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 99년 이미 조사=99년 세풍수사에서 이미 언론인 연루 여부를 조사해 이번에 밝혀진 내용을 파악했지만 본격적인 수사를 하지 않았고, 이번에는 언론인들이 이석희씨 등으로부터 돈을 받은 시점이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소환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신상규 3차장은 “언론인이 돈을 받은 데 대한 조사는 이미 99년에 이뤄졌고 당시 하나의 의혹사안으로 남겨뒀던 것”이라며 “이번 조사에서는 이들에 대한 공소시효가 지난 상황이어서 조사를 하지 않았고 그 내역도 공개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결국 언론인들의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았던 99년 수사 때 조사를 해놓고도 유야무야 넘긴 셈이 됐다.

△공소시효 논란=검찰의 공소시효 종료 주장을 반박하며 이석희씨와 언론인들에 대해 14일 각각 배임증재, 배임수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참여연대는 여러 경로를 통해 법률적 자문을 받은 결과 이씨의 해외도피에 따라 공범관계(배임수재)에 있는 언론인들의 공소시효도 일시 정지돼 공소시효가 유효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재수사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검찰 고위 관계자는 “고발건이 접수됐으니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지만 이미 수사가 종결됐고, 새로운 사실이 추가로 드러난 것도 아니어서 재수사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았다는 참여연대의 주장에 대해 “공범이라 해도 재판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는 시효정지가 인정되지 않도록 규정돼있다”고 반박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전제일 간사는 “이 사건에서는 무엇보다 검찰의 의지가 중요한데 검찰이 과연 수사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한편, 참여연대는 신상규 3차장이 연루 언론인 고발에 대해 14일 기자 브리핑에서 “부질없는 짓이며 (고발장이 와도) 쳐다보지 않겠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 15일 논평을 내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식 밖의 태도”라며 “책임 있는 발언인지 밝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상규 3차장은 “아예 안쳐다 보겠다는 뜻이 아니고 기자들에게 두차례에 걸쳐 (언론이 수사불가에 대해) 설명했고, 이미 다 끝난 사안인데 다시 볼 필요가 있느냐는 뜻으로 한 얘기”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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