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8일부터 방송을 시작한 TV조선의 주말 드라마 ‘조선생존기’는 여러 모로 상징적인 작품이다. TV조선은 개국 때부터 철저하게 보수적 성향의 중장년층과 노년층을 타깃으로 설정해 시사 토크쇼나 인포테인먼트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강세를 드러냈지만, 드라마나 예능은 약세였다. 그러던 TV조선이 2018년부터 절치부심에 나섰다. 2018년부터 방송을 시작한 관찰 예능 ‘아내의 맛’과 ‘연애의 맛’이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2019년에는 최고 시청률 16.6%(닐슨코리아 기준)를 달성한 트로트 서바이벌 ‘내일은 미스트롯’를 성공리에 마무리하며 예능에서 체면치레를 했다.

‘조선생존기’ 역시 그동안 TV조선 드라마가 중장년층을 상대로 하던 것과 달리, 본격적으로 청년층을 공략하는 방향으로 기획됐다. 동시에 오랜 시간 ‘의적’인 상징으로 전해진 ‘임꺽정’을 주인공으로 삼은 ‘유쾌한 시대극’을 표방했다. 비록 시청률은 계속 2%를 넘지 못하며 고전 중이지만 TV조선이 시청자의 폭을 넓히기 위한 몸부림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작품의 제작사이다. ‘조선생존기’는 굵직한 회사 두 곳이 제작에 참여했다. 그 중 한 곳은 ‘조선생존기’의 주연인 강지환의 소속사이자, 최근 개봉한 영화 ‘미성년’의 제작에도 참여해 점차 한국에 영향을 넓히고 있는 중국계 회사 ‘화이브라더스코리아’다. 그리고 나머지 한 곳은 멀티플렉스 ‘롯데시네마’와 영화 투자·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를 거느린 기업체 ‘롯데컬처웍스’(이하 롯데)다. 롯데는 2018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TV 드라마에도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이후 약 8개월 만에 ‘조선생존기’로 방송 산업에 본격적 도전장을 던졌다.

▲TV조선의 '조선생존기' 홈페이지 캡쳐.
▲TV조선의 '조선생존기' 홈페이지 캡쳐.

대형 영화사의 방송 산업 진출은 롯데가 처음은 아니다. 2008년에 설립되어 단숨에 메이저 영화 투자·배급사로 성장한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이하 NEW)는 일찌감치 2016년부터 자회사 ‘스튜디오앤뉴’를 설립하며 TV 드라마 제작에 뛰어들었다. 창립 작품이었던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전국적인 센세이션을 만들며 성공적으로 드라마 산업에도 발을 내딛은 NEW는 이후 JTBC와 협력하며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뷰티인사이드’, 그리고 최근 방송을 시작한 ‘보좌관 -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까지 총 네 편의 드라마를 제작한 상황이다.

나머지 대형 영화사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CJ엔터테인먼트(CJ ENM 영화사업부문)은 일찌감치 같은 그룹 내 자회사 CJ미디어를 통해 방송 산업에 진출했으며, CJ미디어가 CJ ENM 방송사업부문으로 재편된 뒤에는 영화 사업과 방송 사업의 연계를 적극적으로 꾀하고 있다. 특히 2016년부터는 드라마 제작 전문 자회사 ‘스튜디오 드래곤’을 설립하며 다른 방송국에 편성된 드라마 제작에도 관여하고 있으며, 2019년에는 OCN을 통해 인기리에 방송된 드라마 ‘나쁜 녀석들’의 극장판 스핀오프 ‘나쁜 녀석들 더 무비’를 기획하며 영화-방송 사업의 융합을 강화하고 있다.

멀티플렉스 ‘메가박스’의 소유주 메가박스중앙은 명시적 방송 진출은 없으나, 역시 모그룹의 방송사 JTBC의 드라마 제작 전문 자회사 드라마하우스를 통한 연계를 조금씩 시도하고 있다. 특히 2018년에 개봉한 영화 ‘완벽한 타인’은 여러모로 영화와 방송을 넘나드는 합종연횡 실험과도 같았다. ‘완벽한 타인’의 인기 드라마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의 연출자 이재규 PD가 세운 영상 제작사 ‘필름몬스터’와 드라마하우스가 공동으로 제작했다. 영화의 투자와 배급은 롯데컬처웍스가 맡았으며, 동시에 공동투자사로 CJ ENM이 이름을 올렸다. CJ-롯데-JTBC라는 영상 산업계의 큰 손 세 곳이 함께 만든 작품이자, 하나의 실험을 위한 ‘적과의 동침’이었던 셈이다. 이후 2019년 메가박스중앙과 드라마하우스의 모회사 제이콘텐트리가 필름몬스터를 인수하며 ‘완벽한 타인’의 시도가 상징하는 의미는 더욱 강해졌다.

▲영화 '완벽한 타인' 포스터.
▲영화 '완벽한 타인' 포스터.

물론 영화사의 방송 사업 진출이 마냥 특이한 일은 아니다. 이미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일찌감치 TV 시장이 탄생할 때부터 방송 산업에 진출했으며, 일본이나 유럽 각국의 영화사들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다. 영화와 방송은 제작되는 방식이나 공개되는 형태만이 다를 뿐, 기본적으로 ‘영상’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에 비교적 수월하게 해외 영화사들은 매우 빠르게 방송으로 사업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이전부터 케이블 채널을 운영하던 CJ ENM과 메가박스중앙과는 달리, 롯데나 NEW는 2010년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겨우 방송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무엇이 이 두 회사를 움직이게 만들었을까. 회사마다 상황은 조금씩 다르다. 롯데컬처웍스는 롯데쇼핑에서 독립한 이후 주식 상장을 노리기 위해 사업 다변화를 꾀하고 있으며, NEW는 일찌감치 2010년대 이후 음반 제작 및 유통, 스포츠 중계권, 스포츠 선수 매니지먼트, 멀티플렉스(씨네스테이션Q)로 사업을 확장시켰다. 메가박스중앙 또한 주식 상장을 준비하며 매출액을 높이기 위해 일찌감치 준비했다. 

이들 회사들의 속사정을 공통적으로 꿰뚫는 요소는 모두 ‘매출 확대’이다. 특히 한국 영화 산업의 경우 2017년 이후 흥행에 성공하는 작품이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최근 롯데가 ‘신과 함께’ 시리즈의 두 편 모두 천만을 넘긴 것을 제외하면 CJ ENM 외의 대형 영화사들은 모두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영화 산업이 점차 악화되는 상황에서, 영화사에게 방송 산업은 무척이나 구미가 당기는 시장인 동시에 비교적 쉽게 도전이 가능한 영역이다. 동시에 CJ ENM과 같은 종합 미디어 그룹이 되기 위해서라도, 대형 영화 투자·배급사들에게 방송 산업은 언젠가는 진출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철저하게 산업적으로만 판단하면, 영화사들의 방송 산업 도전은 영화라는 영역을 넘어서 미디어 전반으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담대한 선택이다. 일찌감치 방송-영화-음악-공연 등을 아우르며 거대 미디어 그룹으로 정착한 CJ ENM과 비슷한 수준이 될 회사가 더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민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사업 영역 확대가 좋은 것일까.

이미 영화 산업은 대형 영화사들에게 좌지우지되고 있으며, 방송 산업 역시 ‘퍼블릭 엑세스’를 비롯한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은 뒷전이 된지 오래이다. 점차 방송 산업이 고도화되고, 기존 거대 자본의 진출이 강해지는 가운데에서 방송과 전파의 공공적 성격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지속적 감시와 관찰의 시선을 놓지 못한다면 이들은 영화를 넘어 방송 영역까지 순식간에 삼킬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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