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 상산고와 경기 안산 동산고의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재지정 탈락을 두고 보수언론은 “전북교육이 죽었다”거나 “자사고 죽이기”이라는 반대진영의 과장된 구호를 그대로 받아썼다.

전북교육청은 지난 20일 상산고가 재지정 평가에서 기준점수(80점)에 미달한 79.61점을 받아 재지정 심사에서 탈락했다며 즉각 자사고 지정취소 절차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경기교육청도 이날 안산 동산고가 기준점수 70점에 미달해 심사에 탈락했다 밝혔다. 경기교육청은 실제 점수와 감점 항목 등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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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조선일보 사설
▲21일 경향신문 사설
▲21일 경향신문 사설

21일 보도는 자사고 설립취지 분석에 집중한 언론과 탈락 자체에 집중한 언론으로 극명히 나뉘었다. 경향·한겨레·한국일보는 상산고·동산고가 자사고 확대 정책 추진 당시 약속한 설립취지를 지키지 않은 결과라 평했다. 반면 동아·세계·조선·중앙일보는 “원칙없이 정권 입맛에 맞춘 결과”라거나 “수월성 교육을 죽여 교육의 질 하락을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서울신문은 사회 혼란 가중을 강조하며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비판 보도한 언론의 사설은 제목부터 날 서 있다. “이번엔 자사고 죽이기 코미디, 나라에 필요한 것 다 부순다”(조선), “자사고 재지정 취소, 수월성 교육 막는 反교육적 처사다”(세계), “‘상산고 지정 취소’ 전북교육감, 만족도 만점학교 만들어봤나”(동아) 등이다.

조선은 특히 ‘전교조’ ‘좌파’ 단어를 자주 썼다. 조선은 사설에서 “친(親)전교조 교육감 한 명이 수많은 학생 학부모 교직원 동문들을 농락하고 있다”거나 “현 정부와 전국을 석권하다시피 한 좌파 교육감들은 '자사고 죽이기'를 추진해왔다”고 적었고 보도에서도 “(자사고 축소는) 친(親)전교조 좌파 교육감들이 핵심 정책 과제로 추진하는 것”이라 해설했다.

조선은 1면에서, 동아는 2면에서 홍성대 이사장 인터뷰를 실었다. “벽돌 한장 사준 적 없는 정부… 私學을 호주머니 속 물건 취급”(조선), “인재 양성하려는데 정부가 말리는 꼴… 기가 막혀”(동아) 등이다. 주로 정부·교육청이 수월성 교육을 축소하면서 교육 질 저하를 초래해 인재 양성을 막는다는 토로를 다뤘다.

▲21일 조선일보 1면
▲21일 조선일보 1면

비판 언론만 보면 자사고 심사 탈락은 곧 교육 질 저하다. 세계일보는 특히 사설에서 “천재 한 명이 천명, 만명을 먹여살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다. 정부는 수월성 교육을 유지하면서 교육 기회의 평등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사고 등을 존립시키면서 일반고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계일보 지적처럼 현재 상태를 유지하면서 일반고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 교육 현장에는 자사고가 입시 명문고로 변질되며 학교 간 격차가 벌어졌고, 학교 격차는 소득 격차를 반영해 계층 재생산만 강화한다는 문제제기가 있다. 지금의 자사고들을 있게 한 이명박 정부의 ‘고교 다양화 정책’이 당시 거센 반대에 직면한 이유이자 자사고 재심사 제도가 있는 이유다. “지정 목적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평가해야 교교 서열화 등 교육계 혼란을 줄일 수 있다.

▲21일 세계 사설
▲21일 세계 사설
▲21일 조선 5면
▲21일 조선 5면
▲21일 동아 2면
▲21일 동아 2면

한겨레는 “전북도교육청과 경기도교육청의 결정은 전주 상산고와 안산동산고가 지정 목적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라 평가했다. 자사고는 “입시 위주의 교육을 탈피하고 진로와 특성에 맞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대부분의 자사고는 입시를 위한 국영수 위주로 운영됐고 도입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경향신문은 “상산고의 경우 전국의 중학생 가운데 수학·과학 우수자들을 모아 다수의 의대 합격자를 배출해왔다”며 “일반고 2~3배에 달하는 등록금은 계층 간 위화감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또 “출발부터 잘못된 자사고체제를 그대로 놓아둔 채 공교육 정상화를 논하기는 어렵다”며 “전북과 경기 외 다른 지역도 재지정 심사 대상에 오른 자사고에 대해 엄격한 기준으로 공정하고 치밀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비판 언론은 재심사 탈락 논란 핵심으로 불공정한 심사를 든다. 전북교육청만 기준점수를 80점으로 뒀고 다른 시도교육청은 모두 교육청 권고인 70점으로 잡은 것을 두고 ‘형평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상산고 또한 이를 근거로 법적 싸움에 나설거라 밝혔다.

▲21일 한겨레 5면
▲21일 한겨레 5면
▲21일 한국 사설
▲21일 한국 사설

상산고는 기준점수보다 0.4점 가량 부족했다. 선발의무가 없는 사회통합전형 대상자(사회적 배려 대상자) 선발 지표에서 가장 큰 감점 –2.4점을 받았고 입학전형 운영의 적적성에서 –1.6점을 받았다. 학생 1인당 교육비 적정성은 1.6점이, 교비회계 운영 적정성은 1.2점이 감점됐다. 감사 지적 및 규정 위반 사례로 인한 감점도 –5점에 달한다. 상산고가 지정 목적대로 운영하려 노력했다면 감점 사유를 줄여 0.4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80점 기준이 아니라 왜 0.4점 미달했는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할 대목이다.

남은 관건은 교육부 승인이다. 교육청은 심사 탈락 결정에 대해 학교, 학부모 등으로부터 청문 절차를 거친 후 교육부에 승인을 신청한다. 교육부 장관은 ‘특목고 등 지정위원회’를 열어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장관이 취소를 승인하면 교육청이 최종 취소 결정을 내리는 구조다. 교육부는 7월 중 상산고와 안산동산고 취소 승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한국일보는 “자사고 존폐가 재지정 평가에 달린 만큼 엄격한 기준과 공정한 평가는 정책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요소”라며 “교육청은 엄정히 평가하고, 교육부는 면밀히 관리해야 논란의 소지를 없앨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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