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방송사고가 났느냐고 물어보면 답은 없다. 왜 방송사고가 나지 않았느냐고 묻는 게 맞을 정도다.” (CG 업체 종사자 A씨)

지난 3월21일 SBS 드라마 ‘빅이슈’ 11‧12화에 컴퓨터 그래픽(CG)을 제대로 입히지 않은 화면이 그대로 노출됐다. ‘왼쪽에 인터넷 주소 간판 다 지워주시고 밑에 다 지워주세요’ 등 자막도 그대로 방영됐다. SBS는 방송 직후 “CG 작업이 완료되지 못한 분량이 수차례 방영되며 사고가 났다”고 해명했다. 

2017년 12월 tvN 드라마 ‘화유기’도 스턴트맨들 와이어를 지우지 못한 채 방송됐다. 화유기 제작진은 “후반 작업이 지연돼 방송 송출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방송사고의 큰 원인 가운데 하나는 ‘쪽대본’으로 상징되는 빡빡한 촬영 일정이다. 사전제작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지만 촬영만 일찍 종료될 뿐 편집·후반 작업은 여전히 방영 직전 완성된다. 적어도 방영 1주일 전에 후반 작업이 시작돼야 하지만 하루 전 편집권이 주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3~4일 전이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 

▲ SBS '빅이슈' 방송사고 화면.
▲ SBS '빅이슈' 방송사고 화면.

10년차 CG업체 종사자 A씨는 “몇 년 전 SBS 월화드라마를 할 때 그날 방영분을 밤 9시59분에 납품한 적이 있다. 대동소이할 뿐 드라마 후반 작업은 여전히 생방송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영화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 선명하다. 보통 영화 한 편에 들어가는 CG컷은 800~1000컷이다. 영화 후반 작업엔 보통 3~6개월이 소요되는데, 이 역시 질 높은 결과물은 포기한 최소 기간이다. 

tvN 18부작 드라마 ‘아스달연대기’의 CG 분량컷은 총 1만5000여 컷이 넘는다고 알려졌다. 회당 900컷 정도로 영화 한 편 분량이다. 3개월에 18회를 곱한 54개월, 즉 단순 셈법으로 후반 작업을 위해선 4년 이상의 시간이 요구된다. 

▲tvN '아스달 연대기' 홈페이지 화면.
▲tvN '아스달 연대기' 홈페이지 화면.

업계에선 “아스달연대기 2부는 7월에 끝나지만 3부는 9월에 시작한다. 그 이유는 후반작업을 마무리할 시간이 나지 않아 제작기간을 따로 뒀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와 관련 tvN 관계자는 18일 미디어오늘에 “아스달 연대기 3부는 하반기 방영 예정이며, 아직 정확한 방영일은 논의 중”이라며 “이유는 후반작업뿐 아니라 스토리 완성도를 기하고자 여러 가지를 감안해 정했다”고 밝혔다.

김두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장은 “생방송처럼 찍어대는 드라마 제작 시스템을 사전제작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며 “SBS ‘빅이슈’ 방송사고도 사전제작해야 한다는 스태프 의견을 무시하고 제작비 절감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예견된 일이었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막상 사고가 나면 내부 직원이 아니라 관련 업체 위주로 징계받는다”며 “CG 등 후반 작업 스태프들 대부분이 외주업체를 통해 계약한다. 내부 직원의 잘못된 판단으로 일어난 일에도 외주 업체 책임을 물어 비용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내보내는 일도 있다”고 전했다.

뉴스, 시사교양 프로그램도 마찬가지

방송 뉴스나 시사‧교양 방송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3월22일 KBS1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가 만든 대학교 로고가 노출됐다. KBS는 “협력사 담당자가 회사 내 아카이브에 보관 중인 이미지 대신 인터넷을 통해 다운로드한 이미지를 사용해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외부 인력과 작업하는 일이 빈번한 상황에서 점검이 부실했던 탓이다. 

▲KBS1 'TV는 사랑을 싣고'에 방송된 일간베스트가 제작한 이미지.
▲KBS1 'TV는 사랑을 싣고'에 방송된 일간베스트가 제작한 이미지.

뉴스 프로그램은 그래픽·자막 데스킹 과정이 따로 없는 곳이 많다. 보도 내용은 ‘취재기자-팀장-부장’ 순으로 점검 받지만 그래픽은 취재 기자가 책임지는 것이 보통이다. 평소에는 기자가 보도국 내 CG실 작업자에게 필요한 자료를 직접 의뢰한 후 검수도 하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엔 그런 절차가 누락된다. 이동조차 힘들 땐 AD에게 ‘이거 내용 알지? 가서 맡겨’라는 식으로 급하게 지시한다. 기자 스스로 검수 시간이 없거나 기자와 AD간, AD와 CG실간, 기자와 CG실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면 방송사고 가능성도 커진다. 

고의라 비난받는 일베 이미지 사고 가운데 일부는 우연히 발생하기도 한다. 기자와 CG실 간 소통이 헐거울 때다.

CG작업자는 CG기술 전문가이고 작업을 끝내는 데 집중한다. 이미지 자체에 오류가 있는지, 해당 이미지가 의뢰 취지를 잘 반영했는지 구체적으로 따질 여유가 적다. 결국 기자 몫으로 남게되는데 기자가 직접 사진을 구해주지 않거나 그래픽 내용을 제대로 검토하지 못했을 때 사고가 난다. 연합뉴스TV 인공기 삽입 사건이 일례다.

▲연합뉴스TV는 4월10일 뉴스 프로그램 ‘뉴스워치2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방미 길에 나선 소식을 전하면서 문 대통령 아래 태극기가 아닌 북한 인공기를 삽입했다. 사진=연합뉴스TV 보도화면 갈무리.
▲연합뉴스TV는 4월10일 뉴스 프로그램 ‘뉴스워치2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방미 길에 나선 소식을 전하면서 문 대통령 아래 태극기가 아닌 북한 인공기를 삽입했다. 사진=연합뉴스TV 보도화면 갈무리.

반복된 CG 사고로 논란을 겪은 SBS는 사고 방지를 위해 보도 CG실 한쪽 벽에 세월호 리본과 함께 일베가 조작한 리본 이미지를 나란히 붙여 놓기도 했다. 그래픽을 만들자마자 내보내는 경우도 빈번하다. 한 SBS 기자는 “어느 날은 정신없이 CG실에서 작업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보도 5분 전이었다”며 “그런 날은 아무도 검사하지 않고 그대로 방영된다”고 했다. 

그래픽 검수 절차 및 CG작업자 숙련도 강화가 대안으로 제시된다. 한 지상파 기자는 “승인권자가 ‘승인’해야 기사가 노출되듯, 영상도 누군가 ‘출고’를 해서 노출하면 어떻겠느냐”며 “대형사건이 아니면 한 부서에서 나오는 리포트는 많아야 5~6개인데 부서장이 그래픽까지 함께 볼 여력이 충분히 될 것”이라 말했다. 

CG작업자가 보도 문법과 윤리를 숙지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방송계 일각에서 ‘후반 작업 정규직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한 보도채널 관계자는 “20여년 전 입사할 땐 그래픽 제작부서 모두가 정규직이었는데 어느 순간 프리랜서와 계약직이 절반을 넘겼다”며 “숙련도 문제로 내부에서도 정규직 비율을 늘리자는 말이 나온다”고 밝혔다. 

▲(위쪽부터) MBN이 4월11일 김정숙 여사 이름을 김정은이라고 쓴 채 방송했다. 4월21일에는 문 대통령을 북 대통령으로 오기했다. 사진=MBN 보도화면 갈무리.
▲(위쪽부터) MBN이 4월11일 김정숙 여사 이름을 김정은이라고 쓴 채 방송했다. 4월21일에는 문 대통령을 북 대통령으로 오기했다. 사진=MBN 보도화면 갈무리.

한 보도전문매체 관계자는 “후반 작업이나 뉴스 자막, CG 등은 보통 외주업체나 프리랜서 인력도 함께 작업한다”며 “보통 팀장급은 본사 정규직이지만 팀원들은 프리랜서이거나 계약직인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방송 뉴스 등에서 CG나 자막 사고가 이어지는데, 사고가 반복된다면 개인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제작 시스템 문제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각 방송사에서 후반 작업을 맡는 외주업체가 몇 군데인지, 후반 작업 인력 가운데 정규직과 비정규 인력 비율은 어느 정도인지 알기 어렵다. 업계가 열악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정확한 실태 조사나 정책 대응은 이어지지 않고 있다. 

최정기 언론노조 정책실장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지만 노동시간이나 고용형태 실태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며 “방송통신위원회 등에서 실태 조사를 통해 문제를 점검하고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실장은 “CG 등 후반 작업을 보조적, 주변 업무라고 판단하는 것이 구조를 고착화하는 이유”라며 “방송사는 관련 업무를 상시 지속 정규직으로 유지하지 않고 비용을 최소화하려고만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외주업체와 계약하며 비용 절감을 하는 비용보다 사고 수습 시 지급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더 클 수 있다. 이를 테면 방송사 재허가 관련 점수가 깎이는 등 비용을 더 치러야 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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