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당이 플랫폼 ‘자유와 공화’ 주대환 공동의장을 혁신위원장으로 영입했다. 이에 손학규 대표의 ‘버티기’가 승리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유승민계도 만장일치 찬성한 주대환 혁신위원장은 어떤 그림을 그려낼까? 

주대환 혁신위원장은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때부터 참가했고 2004년 당 정책위의장까지 지냈다. 

국가정보원은 2006년 북한 공작원을 접촉한 혐의로 당시 민주노동당 최기영 사무부총장 등 5명을 구속했다. 이른바 ‘일심회’ 사건이다. 이때부터 주씨는 진보정당 내 NL(민족해방)계열을 공개 비판해왔다. 

1년 뒤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 때 주씨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현재 민주노동당 위기의 핵심은 ‘김일성주의자’들이 당의 안방을 차지한 것”이라고 했다. 이 인터뷰에서 주씨는 “민노당은 원래 영국 노동당을 모델로 창당”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창당에 관여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아니라 브라질 노동자당이 모델이었다고 한다. 

결국 민주노동당은 2008년 초 분당됐다. 이 때 주씨는 조선일보에 자주 불려나와 주로 진보정당 내 NL계를 비판하는데 앞장 섰다. 조선일보 2008년 2월5일자 4면 ‘北에 발목잡힌 진보정치 실험 8년’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주씨는 “민노당이 국회에 진출(2004년)하면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남아 있던 김일성주의자들이 당에 들어와 기생하면서 노선이 변질됐다”고 했다. 

▲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했던 주대환 바른미래당 혁신위원장이 2016년 7월2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원·정책위 일자리특위 공동주최 ‘격차해소를 위한 해법, 왜 중향평준화인가’ 세미나에서 발표자로 참석해 정진석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했던 주대환 바른미래당 혁신위원장이 2016년 7월2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원·정책위 일자리특위 공동주최 ‘격차해소를 위한 해법, 왜 중향평준화인가’ 세미나에서 발표자로 참석해 정진석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해를 거듭할수록 주씨는 더 자주 조선일보에 불려 나왔다. 조선일보는 그때마다 주씨를 ‘반성하고 회계한 좌파 지식인’으로 분칠했다. 조선일보 2008년 9월2일자 류근일 칼럼 ‘어느 좌파 지식인의 커밍아웃’은 좋은 예다. 당시 주씨는 뉴라이트 재단의 계간지 ‘시대정신’ 2008년 여름호에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와 좌파의 진로’라는 글을 써 보수진영의 각광을 받았다. 

조선일보에 소환된 주씨는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플랫폼 자유와 공화 공동의장 등 직함이 바뀌어도 늘 ‘전 민노당 정책위의장’으로 불렸다. 

그는 2009년 1월에도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박정희 시대를 “부국강병을 추진하면서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복지제도의 기초를 닦았다”고 평가했다. 이 기사에서 그는 광우병 촛불을 “쇠고기 안전과 검역주권 상실을 우려한 국민들의 순정으로 시작했으나 점차 ‘이명박 퇴진’을 외치는 과격 시위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2012년 통진당 사태 때도 “주사파의 뿌리깊은 선거부정”(조선일보 2012년 5월4일 4면)을 비난했다. 그 사이 그는 2008년 무소속 총선 출마, 2012년 민주당 입당해 공천신청했다가 낙마했다. 

이후 그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이 주최하는 토론회에 나서거나 민정당 부대변인과 민자당 대변인을 지낸 박범진 전 의원이 주도한 사회민주주의 포럼에 발기인으로 참가한다. 

조선일보의 ‘주대환 사랑’은 현 정부에서도 여전하다. 조선일보는 그를 강성노조와 문재인 정부 비판의 불쏘시개로 활용한다. 그는 “정부가 대기업 노조의 기득권을 건드리지 못한다”고 비난했다.(조선일보 2017년 8월21일자 사설) 이 발언은 한 달여 뒤 조선일보 사설에도 재등장했다. 

오랜 방황 끝에 그가 제자리를 찾은 듯하지만 바른미래당의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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