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권 독립은 추상적인 구호만으로 지켜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헤럴드에서도 ‘편집국장 임명동의제’, ‘연임 신임투표제’ 등의 제도가 있어 정상 가동됐다면 1면에 주스 신제품 출시 기사가 들어가는 등의 편집권 침해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5일 헤럴드(헤럴드경제·코리아헤럴드) 기자 노동조합(위원장 박도제)은 회사의 새 대주주가 된 중흥건설그룹이 지분 매각 계약서에 ‘편집권 독립’ 보장을 명시한 것은 긍정적인 조치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실질적인 편집권 독립을 위해 편집국장 임명동의제나 신임투표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주가 있는 언론사 기자들이 소유와 경영의 분리, 편집권 독립을 강하게 요구하는 이유는 이 같은 원칙이 제도화되지 않으면 언제든 사주의 입김에 따라 지면이나 방송이 사유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 언론을 중심으로 건설사가 언론사를 소유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지역 이권 사업을 따내기 위해 소유한 언론사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사가 사주인 언론사 기자들이 지자체를 출입하면서 개발사업 관련 정보를 입수하고, 보도를 통해 사주와 관련한 사업 추진을 독려하는 식이다. 

▲ 지난해 7월1일 KBS ‘저널리즘 토크쇼J’ “언론사 사주와 침묵의 카르텔” 편 방송화면 갈무리.
▲ 지난해 7월1일 KBS ‘저널리즘 토크쇼J’ “언론사 사주와 침묵의 카르텔” 편 방송화면 갈무리.

지난 2017년 5월 부영그룹이 대주주가 된 인천일보는 지역 언론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까지 ‘인천일보가 부영건설의 홍보지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인천일보는 부영건설이 송도테마파크 조성 개발사업 추진 과정에서 인천시와 폐기물 처리 문제로 어려움을 겪자 2017년 9월25일자 신문에 ‘송도테마파크 사업은 인천발전 견인차’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인천일보는 사설에서 “부영그룹에서 갖고 있는 좋은 이미지를 깎아내리려는 시도가 볼썽사납다. 아예 사업을 못하게 하려는 것인지, 사사건건 물고 늘어진다”며 “송도테마파크 조성 사업은 인천 발전과 더불어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고, 인천이 국내외 레저휴양 관광도시로 발돋움할 호재로 평가되고 있다. 부영이 인천을 기반으로 한 기업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자치단체와 시민, 언론 등의 성원이 절실하다”고 노골적으로 사주 추진 사업을 옹호했다. 

이에 국민의당 인천시당은 ‘인천일보는 부영건설의 기관지인가’라는 제목의 비판 논평을 냈고, 언론노조 인천일보지부도 ‘낯 뜨거운 부영찬가야 말로 해사 행위다’라는 성명서를 내어 사주 문제에 중립을 못 지킨 사설에 강하게 반발했다. 

인천일보 노조는 “부영 관련 편집국 보도와 사설로 상처받으신 모든 분께 사죄의 말씀을 먼저 올린다”며 “사익을 위한 보도가 판칠 때, 언론은 언론의 생명을 잃는다. 지금 인천일보는 혹시 그 길목에 서 있지는 않은 지 심각하게 곱씹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조와 당시 이인수 편집국장은 이른바 사주의 편집권 개입은 없다는 게 편집국의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지만, 이후에도 부영건설의 송도테마파크 추진을 밀어주는 기사와 사설은 반복됐다. 

▲ 지난달 28일 CJB 청주방송 청주 구룡공원 개발 관련 리포트 화면 갈무리.
▲ 지난달 28일 CJB 청주방송 청주 구룡공원 개발 관련 리포트 화면 갈무리.

인천참언론시민연합은 지난해 7월3일 발행한 언론모니터보고서에서 KBS ‘저널리즘 토크쇼J’가 7월1일 인천일보의 부영그룹 사주 관련 불공정 보도를 지적한 것을 두고 “인천 시민의 이익과 대변지가 아닌 자사 최대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형적인 지면 사유화 행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근엔 CJB 청주방송의 대주주 두진건설이 시민단체 반대에 부딪힌 청주 구룡근린공원 민간공원조성사업에 참가 의향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돼 우려를 낳고 있다. 지역 지상파 방송의 사주가 지역민간개발 사업에 뛰어들면서 방송 뉴스도 자칫 사주의 이해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치우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경아 청주도시공원지키기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지역 언론을 보면 어느 순간부터 청주시가 만든 개발 프레임을 언론이 그대로 대변할 뿐 시의 잘못을 파헤치는 자정 능력이 사라진 것 같다”며 “CJB의 대주주인 두진건설이 구룡공원 사업의향서를 냈기 때문에 그동안 청주시나 아파트를 지으려는 개발사의 입장에 편향됐던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종기 CJB 보도국장은 “시민단체 등에서 그런 우려의 눈으로 볼 수 있음은 이해가 되나, (사주가 추진하는 사업과) CJB 보도 방향은 전혀 무관하다”며 “내년 7월 도시공원 일몰제를 앞두고 현실적 방안이 무엇이고, 사회적 합의 기구를 통해 대타협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보도국의 입장이다. 만에 하나 두진건설이 사업자로 선정돼도 우린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객관적으로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 JTV전주방송은 왜 전주시를 비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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