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정치는 이제 그만
이미지 정치는 이제 그만
[윤형중 칼럼]

한 달 쯤 전에 혼자 식당에 가서 밥을 먹다가 무심코 앞에 켜져 있는 TV를 봤다. 마침 보도채널에서 정치 뉴스가 연달아 나오고 있었다. 그날 이슈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과 같은 당 강효상 의원의 한미정상 통화 내용 유출이었다. 황 대표가 다른 정당의 대표들과 함께 만나고 싶지 않고 대통령과 일대일로만 만나겠다고 고집했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그는 단둘이 찍힌 사진으로 대통령과 급이 비슷한 지도자이면서도 반대 진영의 대표자란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키고 싶었던 걸까. 강 의원은 왜 외교 기밀을 유출했을까. 청와대가 미국 정상의 방문을 구걸한다는 자극적인 언사로 대통령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갑론을박이 있긴 하지만 논란의 한 가운데에 서면서 자기 인지도를 높이고 싶었던 걸까. 존재감이 크지 않은 정치인에겐 좋은 뉴스든, 나쁜 뉴스든 가릴 상황이 아닐테니…. 입 속에 넣은 밥을 우물거리며 ‘정말 나랑 상관없는 뉴스들 뿐이네’라며 다음 뉴스를 기다렸다. 정치 분야 뉴스는 그 두 사안으로 끝이었다. 바로 다른 분야 뉴스가 나왔다.

▲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김도연 기자
▲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김도연 기자

그로부터 보름 쯤 뒤 오랜만에 종이신문을 펼쳐봤다. 종이질감을 오랜만에 느끼며 어떤 기사들이 담겼는지 한 장씩 넘기며 읽었다. 이날 이 신문 1면 팔면봉에서 “‘文의 男子’ 양정철, 국회의장·국정원장 이어 시·도지사도 줄면담 외”란 문장이 눈에 띄었다. 누구의 남자라니, 이젠 이런 고루한 인식이 담긴 표현을 안 쓰면 어떨까란 생각을 하면서도 정치면엔 어떤 기사가 있을까를 펴봤다. 가장 비중 있는 기사는 1면에 소개된 대로 “지자체까지 뻗은 ‘哲의 총선 행보’”였다. 한자(漢字)조차 신중하게 고른 이 신문의 감각이 돋보였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이름 가운데 ‘철’을 한자로 표기했다. 대통령 최측근 그룹이 있단 ‘삼철 프레임’을 확대 재생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 신문이 기사에서 하고 싶은 말은 인용된 발언으로 실린 한 문장으로 응축된다. “민주당 한 비문(非文) 의원은 ‘차기 대선 밑그림을 그리며 주자들 면접이라도 보겠다는 것인가’라고 했다”는 문장이다. 과연 저런 발언을 한 민주당 의원이 있었는지, 그 비문 의원이 누군지 이 신문은 검증받을 수 있을까. 이날 정치면의 다른 기사도 내겐 별 감흥이 없었다. “유승민 ‘내년도 대구 출마… 안철수와 언제든 연락 가능’”, “文대통령 ‘올해 국회 본회의 단 사흘’ 野 비판”, “부산에 상주하는 의사들 文대통령 주치의로 임명”, “황교안이 막말 경고한 날… 한선교, 바닥 앉은 기자들에 ‘아주 걸레질을 하네’” 등이 정치 분야 기사 전부였다. 이 신문은 참고로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만 문제였을까. 이날 다른 신문, 방송도 정치 뉴스로 비슷한 사안들을 비슷한 시각으로 다뤘다. 이들 기사에서 하나의 코드를 뽑아보자면 ‘이미지 정치’다. 정치인은 정치의 실체인 정책, 법규, 예산에 관심을 두기 보단 자기 이미지가 매체를 통해 어떻게 보일지를 주로 신경 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은 더 선명성 있고도, 더 힘이 세 보이는 이미지를 만들려 애를 쓴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끔찍한 막말도 그래서 나온다. 언론은 이런 이미지 정치를 경계하지 않고, 오히려 조장하는 보도를 하곤 한다. 정치인의 끊이지 않는 막말은 그것을 주요하게 다뤄주는 언론 탓도 있다.

이미지 정치는 정치를 무력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다. 정치가 우리 삶에 아무 영향도, 유익도 없다는 자조만을 재생산하고, 오직 정치인들에게만 의미 있는 권력 다툼이란 인식을 준다. 그 결과 정치의 중심엔 ‘누가 힘이 더 센지’ 경연하는 파워게임만이 남았고, 선거 중심에도 ‘인물’과 ‘판세’만이 있다. 언론도 정치 보도에서 누가 세를 드러냈거나 누군가와 갈등한다는 보도를 주로 하고, 선거에선 주요 후보들 일정과 지지율 여론조사가 주된 보도 내용이다. 결국 이미지 정치는 언론과 정치의 공동 생산물인 셈이다.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이미지 정치를 끝내려면 언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작은 실천은 이미지 정치에 부합하지 않는 기사 숫자를 늘려가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양정철 원장 행보를 집중 보도한 같은 날 한겨레와 중앙일보에 인상적인 기사가 하나씩 나왔다. 한겨레는 “‘봉준호 효과’… 정치권, 방송스태프 노동조건 개선 고삐”(서영지 기자)라는 기사를 정치면에 내보냈고, 중앙일보는 “황교안 ‘경제·안보 대안 만들어 9월 국민께 보고’”(최민우·김준영 기자)란 기사를 썼다. 두 기사는 정책을 다루는 진짜 정치 보도라고 볼 수 있다. 두 기사에서 제시된 내용의 후속 상황을 지속적으로 보도하는 것도 좋은 정책 보도의 전형이다. 

이미지 정치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정치의 본질적 의미는 퇴색되기 쉽지만 의외로 굉장히 중요하고도 긍정적 역할이 있다. 정치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이며 사회적 자원을 배분하는 수단이다. 그 관점으로 정치를 다루는 기사가 ‘이미지 정치를 끝내는 저널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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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06-22 17:36:29
막말과 비합법적인 점거, 그리고 욕설이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신뢰인가. 진보/보수를 넘어, 비합리적으로 자신의 이미지만 만들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행위를 없애는 것이 법이고, 국회의 입법활동이다. 법은 항상 존중돼야 하고, 법의 사각지대를 없애려고 국회의원은 열심히 의정활동을 해야 한다. 이런 국회의원을 지켜보는 게 국민의 의무이고, 세비를 낭비하고 국회를 보이콧하는 사람은 절대 다시 뽑아주면 안 된다. 이것이 공정하고 깨끗한 사회로 가는 방법이고, 국민이 주인인 나라로 가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