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글로벌 삼성’을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이 문제의식이 기자 눈을 세계로 돌렸다. ‘글로벌 삼성, 지속 불가능 보고서’라는 꼭지로 18일부터 연속 보도되고 있는 한겨레 탐사팀 취재물은 삼성 해외 제조 공장에서 벌어지는 ‘노동 착취’ 민낯을 고발하고 있다.

지난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만난 김완 기자는 이번 기획에 “한국사회는 ‘승계’, ‘무노조’ 키워드로 ‘중심부 삼성’을 비판하지만 ‘주변부 삼성’에 의문을 제기한 적 있었나 싶었다”며 “이번 취재를 하면서 우리가 삼성을 제한적으로, 절반만 이해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언론은 산재 투쟁을 하거나 노조 탄압으로 해고된 삼성 노동자 개인에 주목했다. 보다 넓은 시각에서 세계 최대 삼성 공장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보고 싶었다”며 “아울러 국내에서 ‘삼성맨’들은 안정된 삶에 진입했다고 평가받는다. 다른 나라도 똑같은가, 직접 현장 노동자들을 만나보자고 기획하게 된 이유”라고 말했다.

한겨레 탐사팀은 지난달 12일부터 2주 동안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3개국 9개 도시를 누볐다. 2만여 km. 지구 반 바퀴 거리였다. 해외 삼성전자 노동자 129명을 직접 만나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김 기자는 “설문 조사를 저지하려는 삼성 측 관리자, 보안요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등 작은 소동도 있었다. 기본으로 채증이 이뤄졌고 원천적으로 취재를 거부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 ‘글로벌 삼성, 지속 불가능 보고서’라는 꼭지로 18일부터 연속 보도되고 있는 한겨레 탐사팀 취재물은 삼성 해외 제조 공장에서 벌어지는 ‘노동 착취’ 민낯을 고발하고 있다. 사진=한겨레 유튜브 채널 화면 갈무리
▲ ‘글로벌 삼성, 지속 불가능 보고서’라는 꼭지로 18일부터 연속 보도되고 있는 한겨레 탐사팀 취재물은 삼성 해외 제조 공장에서 벌어지는 ‘노동 착취’ 민낯을 고발하고 있다. 사진=한겨레 유튜브 채널 화면 갈무리

한겨레가 만난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의 삼성 공장 노동자들은 각국 노동법이 정한 기준(8시간)이 아닌 공장마다 설정한 ‘택트타임’을 기준으로 일하고 있었다. 택트타임(tact time)은 하나의 제품을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말한다. 인도 노이다 공장의 경우 구형 갤럭시를 만드는 노동자는 하루 1600대를 조립해야 한다. 김 기자는 “자동차 공정과 달리 반도체와 휴대전화(스마트폰)는 노동자들이 바로 앞 부품을 반복적으로 배열하는 노동집약적 공정으로 제조된다”며 “택트타임 관리가 오늘날 삼성을 만든 핵심이다. 노동자들을 계속 압박하기 위해 전광판을 두고 지속적으로 생산 속도를 고지한다. 뒤에서는 관리자들이 고함을 질러 ‘빨리빨리’를 압박하고 모욕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 금지하는 작업과 직장 괴롭힘이 해외 공장에서는 일상이었다”고 덧붙였다. 

한겨레 보도는 삼성이 해외 노동자들을 어떻게 관리·통제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택트타임 관리는 공장 안에서 멈추지 않고 생활에 침투했다. 복지 혜택으로 간주되곤 하는 ‘통근버스’와 ‘기숙사’는 버스와 기숙사 시간표에 노동자를 꿰맞췄다. 시간표를 벗어나지 않는 노동자는 관리가 용이하다. “기숙사는 근무 시간대가 다른 교대 노동자들을 한방에 머물게 한다. 퇴근하고 돌아가면 누군가 쉬고 있으니 조용히 지낼 수밖에 없다.”(베트남 박닌 공장에서 만난 한 삼성 노동자) “삼성은 공장 근처에 사는 박닌 사람은 뽑지 않는다. 박닌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노점을 운영하는 박닌 주민)

김 기자는 “기숙사는 하나의 병영 공간으로 기능했다. 주거를 회사에 의존하면 회사에 저항할 수 없다”며 “베트남의 경우 공장 인근 남성 노동자들은 채용하지 않았는데, 같은 곳에 사는 이들이 회사에 저항할 가능성을 원천 배제한 조치”라고 말했다.

한겨레가 전한 해외 노동자들은 저임금, 미숙련, 저연령, 불안정 등으로 설명 가능했다. 계약직 노동자 임금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했고, 직업 교육과 실습 목적 외의 견습공을 채용해 노동을 착취했다. 1970~80년대 한국사회가 악용했던 방식이다.

▲ 한겨레 탐사팀 카메라에 담긴 김완 기자의 현장 취재 모습. 사진제공=김완 한겨레 기자
▲ 한겨레 탐사팀 카메라에 담긴 김완 기자의 현장 취재 모습. 사진제공=김완 한겨레 기자

“공장부지 안에 구급차가 상시 대기하고 있다. 의식 잃은 노동자가 구급차에 실려 나가는 걸 본 적도 있다. 공장에 의무실도 있는데 매일 100명 넘게 방문한다.”(21세 인도 전직 견습공 아프타르) “매일 서서 12시간 동안 일하고, 2교대로 돌아간다. 초과근무도 매주 10시간 넘게 한다.”(20세 인도네시아 현직 계약직 아르티) “옆 라인에서 여성이 쓰러지는 걸 본 적도 있다. 위해 물질 사용 여부는 모르겠다.”(23세 인도네시아 현직 계약직 비마)

김 기자는 “베트남 국제노동단체 관계자 말을 빌리면 삼성의 경영은 글로벌 기업 간에 ‘바닥을 향한 경쟁’을 추동하는 방식”이라며 “삼성 공장이 들어서면 글로벌 최저선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한국기업 대다수는 IMF와 국제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입었지만 이 시기 삼성은 승승장구했다. 이를 뒷받침한 것이 ‘주변부 통치’였다. 이런 방식의 경영이 지속가능하느냐가 보도의 문제의식”이라고 말했다.

김 기자는 “지난 20년 동안 국내 언론이 삼성 해외 공장을 제대로 취재한 적 없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며 “한국경제에 이바지하는 ‘글로벌 기업’은 그 자체로 ‘국익’이라는 인식이 작용했다고 본다. 사실상 최초로 삼성 해외 공장 실태를 주목한 취재물,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을 조명한 결과물이라는 점을 평가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18일부터 5차례 이번 취재물을 보도한다. 

한편 삼성은 14일 한겨레에 “글로벌 기업으로서 인권 존중과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각국의 법률로 보장된 근로자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 엄격한 관리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은 과도한 택트타임에 “실습생 가이드라인, 이주근로자 가이드라인 등을 마련해 취약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현지 노동법에 따라 휴식, 식사 시간을 제공하고 정기적 근로시간 현황 파악과 시정 조치를 통해 기준 이내로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 한겨레 18일자 4면.
▲ 한겨레 18일자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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