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편 살해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의 의붓아들 사망 사건에서 언론이 경찰 발표만을 제목에 부각해 사건을 왜곡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충북 청주 상당경찰서는 17일 의붓아들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부검 결과 ‘심폐소생술 흔적이 전혀 없다’는 내용을 발표했고 여러 매체가 이를 제목으로 뽑았다. 하지만 국과수 부검 결과가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전문가 의견에 비해 신빙성이 떨어지고, 현 남편이 당일 심폐소생술을 했다는 현장 출동 소방관의 기록이 뒤늦게 나와 경찰 발표만을 부각한 언론보도에 의문을 더하고 있다. 

해당 기사를 처음 쓴 뉴스통신사 기자는 이날 경찰 발표와 반대되는 전문가 코멘트를 기사에 함께 실어 ‘단정적으로 보도하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그는 경찰 발표가 실체적 진실과 다를 가능성을 함께 기사에 언급해 경찰도 해당 보도를 불편해하는 시선이 있다고 전했다.

▲ 지난 7일 공개한 고유정 얼굴. 사진=노컷뉴스
▲ 지난 7일 공개한 고유정 얼굴. 사진=노컷뉴스

초동수사 미흡했던 고유정 의붓아들 사망사건 

고유정의 의붓아들은 지난 3월2일 오전 10시께 충북 청주 집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지난 14일자 CBS노컷뉴스의 현 남편 인터뷰를 보면 청주 상당경찰서는 사건 초기 고유정이 아닌 현 남편 수사에 집중했다. 반면 경찰는 사건 당일인 3월2일부터 전 남편 살해 혐의로 체포된 지난 1일까지 고유정을 단 한차례 조사했다. 

고유정이 아들 사망 이틀 전에 사건장소인 청주 집에 합류했고, 비록 다른 방이지만 고유정도 같은 집에 있었는데 고유정 수사는 부실했다는 게 현 남편의 주장이다. 청주 상당경찰서는 고유정이 거부해 조사를 못했다는 입장이다.

고유정이 지난 1일 전 남편 살인혐의로 체포됐는데도 아들 사망사건 수사 진척이 없자 현 남편은 지난 11일 수사촉구 의견서를 보냈다. 그럼에도 진전이 없자 현 남편은 지난 13일 고유정을 의붓아들 살인혐의로 제주지검에 고발했다.

이런 가운데 17일 청주 상당경찰서는 의붓아들 국과수 부검 결과 ‘심폐소생술 흔적이 없었다’는 소견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는 연합뉴스 “경찰 ‘의문사 고유정 의붓아들 심폐소생술 흔적 없어’”란 제목의 기사로 알려졌다. 다른 매체들도 연합뉴스 제목을 따라 보도했다.

▲ 7일 오전 경찰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발표를 전하는 기사. 여러 매체가 연합뉴스 제목을 따라갔다.
▲ 7일 오전 경찰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발표를 전하는 기사. 여러 매체가 연합뉴스 제목을 따라갔다.

경찰, 현 남편에 불리한 내용 언론에 흘리나 

실제 기사 댓글에는 경찰을 비판하는 내용이 많다. 경찰이 사건초기 고유정에 집중하지 않았고 사실상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경찰이 처음 범인으로 추정했던 현 남편에게 불리한 내용을 계속 언론에 흘린다는 내용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합뉴스가 제목과 리드(첫 문단)에 경찰 발표 내용만을 담자 시민들은 ‘연합뉴스가 경찰을 대변했다’고 지적했다.  

사건을 취재해온 A기자는 미디어오늘에 “연합뉴스 기사 끝부분에 보면 (아들과 함께 잠을 잤던 현 남편이 아들을 살리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전문가 코멘트가 있는데도 제목에 경찰 입장만을 담았다”며 “기사 제목과 첫 몇 문단만 읽으면 현 남편이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만하다”고 말했다. 

국과수는 통상 심폐소생술을 하면 흉부 압박이 강해 갈비뼈가 손상되는데 이 사건의 경우 그렇지 않아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냈다. 하지만 박종필 연세대 법의학과 연구부교수는 연합뉴스에 “소아의 경우 뼈가 연하기 때문에 잘 부러지지 않는 경우가 있고 성인보다 약한 강도로 흉부를 압박하기 때문에 현 남편이 CPR(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결국 연합뉴스가 ‘심폐소생술이 없었다’는 국과수 결과와 ‘심폐소생술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전문가 의견을 모두 취재했지만, 아쉽게도 국과수 결과만을 제목과 리드에 배치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 지난 3월2일 청주 동부소방서에서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작성한 '구급활동일지' 일부. 구급대원 도착 당시 거실에 아이를 눕혀 부모가 CPR중이었다는 내용이 있다.
▲ 지난 3월2일 청주 동부소방서에서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작성한 '구급활동일지' 일부. 구급대원 도착 당시 거실에 아이를 눕혀 부모가 CPR중이었다는 내용이 있다.

다수 매체가 경찰 발표를 보도한 뒤 현 남편이 사건 당일 청주 동부소방서에 알린 뒤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는 증거가 드러났다. 현 남편은 10년 경력의 소방관이다. 당시 구급대원들이 작성한 ‘구급활동일지’를 보면 구급대원들은 “환아 방안 침대위에 엎어진 채로 아이아빠에게 발견됐다”며 “구급대 도착당시 거실에 아이 눕혀 부모가 CPR 중”이라고 적었다. 

박 교수의 분석과 구급활동일지에 근거하면 국과수 결론에 의문을 품을 여지가 있다.   

해당 기사를 쓴 연합뉴스 B기자는 이날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부검 결과라는 중립적인 팩트를 전했을 뿐 현 남편을 범죄자로 몰자는 취지의 기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경찰 입장을 단정할 수 없다는 전문가 의견을 넣었다”며 “(전문가 의견 등 때문에) 이 기사를 쓰고 경찰에서도 좋은 소리 못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연합뉴스 B기자는 “경찰 입장을 전했다고 경찰을 대변했다고 볼 수 없다”며 “경찰에서 이런 발표를 했는데 나중에 현 남편이 범죄자가 아닌 걸로 밝혀지면 이런 경찰 발표가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독자들이 제목과 리드 정도만 읽을 경우 ‘심폐소생술이 없었다’고 오해할 수 있다는 지적에 B기자는 “소방서 구급활동일지 내용을 포함해 ‘종합’기사로 추가해 독자들 오해를 줄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 취재 이후 연합뉴스는 이날 오후 5시30분께 “‘의문사’ 고유정 의붓아들 심폐소생술 여부 놓고 설왕설래(종합)”이란 제목으로 추가 보도했다. 해당 기사에는 구급활동일지에 현 남편이 CPR을 하고 있다는 내용과 청주 동부소방서 관계자가 “사후 강직이 일어난 뒤 CPR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내용 등을 국과수 발표와 함께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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