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사령관이 한식을 좋아하다는 ‘사실’은 뉴스가 될까.

조선일보는 17일 신문에서 “주한미군사령관의 고백 ‘한식 김치 없인 못살아’”라는 제목으로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이 각별한 한식과 김치 사랑을 ‘고백’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부하들과 평택 시내 한식당에서 식사하는 사진을 올리고 ‘한국 바비큐는 최고다’ ‘김치 없이 밥 먹는 날은 햇볕 없는 날과 똑같다’고 적었다. 이어 ‘한국에서의 생활은 굉장하다(#lifeinkoreaisawesome)’는 해시태그를 달고, ‘반대 의견 사절’(Don't @ me)이라고 적었다”고 보도했다.

해당 게시물에 ‘당신은 가장 쿨한 4성 장군’ ‘텍사스 바비큐가 이 얘길 듣게 되면 (섭섭할 테니) 말씀을 좀 수정해야 할 것’ 등의 댓글이 달렸다고도 했다.

조선일보 기사는 원고지 분량으로 채 4장이 되지 않는다. 주한미군사령관이 한식을 좋아한다는 것 이외에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지 모호하다. 뉴스 가치가 있는지 물음표가 달릴 수밖에 없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트위터를 인용해 지면에 실은 매체는 조선일보가 유일하다.

▲ 조선일보 17일자 5면 보도.
▲ 조선일보 17일자 5면 보도.

중앙일보는 16일 온라인판 기사에서 “로버트 에이브럼스 유엔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각별한 김치 사랑을 뽐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한식 예찬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달 21일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초청 오찬에서 오이소박이와 된장찌개를 등 한식을 깨끗이 비우며 한식 사랑을 알린 바 있다”면서 에이브럼스 사령관과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어쩜 이렇게 젓가락질을 잘 하느냐”고 하자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김치 없이 밥 먹는 날은 햇볕 없는 날과 똑같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보도대로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한식 사랑은 지난 청와대 오찬을 취재했던 많은 언론이 보도했다. 한미동맹 속에서 미군 장성과 청와대의 만남은 늘 주목 받기에 에피소드를 전할 수 있다. 그런데 뜬금없이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한식 사랑이 뉴스로 재탕됐다.

또 중앙일보는 지난 4일 서울 국방부 청사 2층에서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 앞서 사진촬영이 있었는데 이에브럼스 사령관이 “파이팅 포즈는 안 하냐”고 말했다고도 보도했다.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지난해 11월 부임하자 국방부가 잔뜩 긴장했다. 전임자인 빈센트 브룩스 사령관은 애국가를 4절까지 한국어로 부르는 친한파에다 정무감각이 뛰어났다. 반면 원칙론자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았다”며 “하지만 그런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21일 청와대 초청 오찬에선 그는 오이소박이와 된장찌개 등 한식을 깨끗이 비웠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쩜 이렇게 젓가락질을 잘하느냐’고 감탄했다고 한다. 그는 ‘김치 없이 밥 먹는 날은 햇볕 없는 날과 똑같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한식 사랑이 강경했던 미군 장성이 부드러워졌다는 인상을 주는 소재로 활용된 셈이다.

실제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지난해 11월 취임하기 전인 9월 지명자 신분으로 “DMZ는 유엔사 관할이기에 GP 철수는 유엔사의 판단을 거쳐야 한다”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다. 9·19 평양 공동선언 군사분야 부속 합의서에 정면으로 제동을 건 모양새였다. 또 그는 “남·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해도 두 나라 간의 합의이기 때문에 유엔 안보리 결의안 84호에 따라 (유엔군 사령관이) 서명한 정전협정을 무효화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대북관에서 강경한 입장을 밝혔는데 부임 이후 부드러워졌고 한식 사랑까지 기사화되는 상황은 무얼 의미할까.

대북 분야를 취재해 온 한 기자는 “우선 조선일보의 기사는 지면에 배치할 정도로 중요한 기사는 아닌 것 같다”면서도 “지난 한미 지휘관 초청 청와대 오찬 때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에이브럼스 사령관을 공개적으로 띄워준 것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오찬 때 “부친이 미 육군 참모총장을 역임하셨고 삼형제가 모두 장성 출신인 군인 명문 가족 출신으로 미 육군에선 최고의 장군이라는 평가를 받는 분”이라며 “한미 동맹의 한 축을 맡아주고 계신 것은 우리에겐 아주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보수 언론이 이를 포착했고, 한미동맹을 강조하고 싶어하는 바람이 투영돼 확대재생산하는 소재로 한식 사랑 기사까지 등장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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