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코리아, 통제라는 이름의 폭력
미스코리아, 통제라는 이름의 폭력
[인권의 바람] 미스코리아 폐지 인권위 진정의 의미

‘미인’은 여성형 명사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언어의 기본값은 남성인데 ‘미인’만은 그렇지 않다. 이 단어는 유일하게 여성에게 인간의 지위를 허용하고 있다. 단, 아름답다는 조건 하에서다. ‘미’라는 족쇄는 오직 여성만을 향하므로 ‘미인’이라는 단어는 여성형으로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아가 ‘미’의 기준을 만드는 것은 남성이므로, 결국 여성의 인간적 지위의 박탈 여부는 남성에게 달려있게 된다. 실제로 여성들은 남성이 규정한 미의 기준에 부합되지 않으면 ‘죄인’으로 불리거나, 사회적 지위를 박탈당해왔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기업의 여성 채용 기준에 신장과 체중, 용모에 대한 항목이 포함되어 있었다. 남성들이 규정한 ‘미’에 대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여성은 사회적 존재가 되기 어려우며, 나아가 부도덕한 존재, 즉 ‘죄인’이 되어 인간의 지위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6월3일,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은 국가인권위원회에 미스코리아 대회 폐지 요구 진정서를 접수했다. 헌법 제11조 제1항(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제31조 제1항(평등의 원칙, 교육의 기회균등), 제32조 제4항(여성근로자 보호 및 부당한 차별 금지,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양성평등), 유엔(UN.국제기구) 여성차별철폐협약 2조 B항, 국가인권위원회법 2조 3항에 근거하여, 반 여성적, 성 상품화를 조장하여 헌법상 평등권과 인격권을 침해하고 있는 미스코리아 대회 폐지를 요구한 것이다. 이번 진정은 삶 곳곳에 스며든 통제의 사슬을 끊어내고 여성의 온전히 인간의 지위를 얻기 위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2년 전, 인터뷰에서 만난 한 여성은 자신의 직장에서 성희롱이 단 한 번도 발생한 적이 없다고 단언하였다. 나는 다른 사업장에서 발생한 성희롱의 예를 몇 가지 이야기해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런 일은 많다”고 답했다. 그녀는 ‘그런 일’들이 성희롱인지 몰랐다고 했다. 그저 불쾌한 일로 그것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옷 맵시가 어떻고, 다리가 어떻고. 그런 이야기는 일상적으로 들어요.” 그녀는 일상적으로 “너는 몸매는 괜찮은데 얼굴만 어쩌고하면 좋겠다”라거나 “니 몸매에 가슴이 D컵만 되면 남자들에게 인기 진짜 많을 것 같은데”라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었다. 

그녀는 가슴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듣는다고 했다. 한 남성 동료는 그녀에게 가슴을 확대할 수 있는 기구의 존재를 이야기하며 그것을 해 볼 것을 권하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그녀는 그런 이야기를 한 남성들에게 화를 내기보다는, 자신의 콤플렉스에 대해 생각했다. 남성들은 그녀에게 여자답게 다리를 오므리라거나, 여자답게 옷을 입으라거나, 여자답게 가슴을 확대하라(?)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그것이 ‘너를 위해 하는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자신의 몸을 재단하는 남성들이 아니라,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몸을 원망했다. 통제가 내면화된 것이다.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시민권을 얻기 전 여성은 단지 남성의 재산, 즉 소유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수많은 여성들의 희생과 투쟁으로 여성이 시민권의 주체가 된 이후, 여성을 재산, 소유물로 만들기 위한 통제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일상 곳곳으로 스며들었다. 여성에 대한 통제 단위가 점점 파편화되어 ‘몸’으로 고착된 것이다. 여성들의 욕망을 몸 안에 가두고, 몸이 여성의 유일한 존재의의인 것 같은 문화는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었다. 한국사회에서는 그 정점에 ‘미스코리아’가 있다. 여성들의 수많은 차별 경험의 내용들은 십수년의 역사를 거쳐 ‘미스코리아’라는 하나의 상징적 기호로 수렴되었다. 

▲ 왕관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 왕관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미스코리아 대회는 이승만 정권 시절 외교 목적으로 처음 개최되었다. 역사적으로 여성들의 몸은 남성과 남성 간 권력의 매개가 되거나 거래의 대상이 되어왔다. 1957년 미스 유니버스대회에 후보를 내기 위해 개최된 제1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이승만 정권의 대미 외교에 있어 일종의 도구 역할을 하였다. 당시 한국일보 사장 장기영씨는 회고록에서 “세계미인제전에 ’관직(官職) 없는 대사(大使)‘로 파견하자는 뜻에서 대회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전 한국일보 사장의 회고는 매우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에게, 그리고 국가에게 여성은 관직의 주체, 즉 인간이 아닌 단순한 ’몸‘이자 홍보용 ’상품‘이었던 것이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미스코리아 행사의 규모와 위상은 국가단위로 높아졌다. 박정희 정권은 미스코리아뿐만 아니라 어린이 미인대회, 지역별 특산품 미인대회, 미스 논개 선발대회, 미스 각선미 대회 등 각종 미인대회들을 우후죽순으로 개최하면서 여성들의 몸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였다. 박정희 정부는 여성들을 전후 국민들의 고단한 삶을 달래기 위한 ‘즐거운 구경거리’로 내몰았다. 이 무렵 군 내에서 ‘미스 여군 선발대회’까지 개최하기에 이르렀는데, 괴이한 것은, ‘미스 여군 선발대회’에서도 수영복 심사는 중요한 선발 기준이었다는 것이다. 직업의 내용이나 업무의 성격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여성과 미를 연결하는 코드는 그렇게 대중의 인식 속에 각인되었다. 

그 중 미스코리아 대회는 60년대 이후부터 텔레비전 방송으로 생중계되었다. 이로 인해 전 국민이 함께 텔레비전 앞에 모여 나노단위로 나뉜 여성의 몸에 점수를 매기며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선발된 여성들이 대통령을 알현(?)하며 큰 절을 하는 모습을 기사로 접하면서 대중들은 수치화된 여성의 몸과 권력을 하나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후 ‘미스코리아’는 이상적인 여성의 대명사처럼 통용되기 시작하였다. 여성들은 어려서부터 ‘미스코리아’를 성공의 지표로 학습하고, 여성들 스스로도 단지 몸의 가치가 자신의 전부인 것처럼 내면화하기에 이르렀다. 자신들의 몸이 끊임없이 보여지는 대상으로 재구성되는 것이 ‘일상’이 되고, 그 평가기준에 스스로를 맞추는 것이 ‘나를 위한 것’처럼 형성되어 온 것이다. 

‘이지혜 게임’은 주인공 이지혜의 삶을 따라가며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이 겪는 성차별 사건을 체험할 수 있는 게임이다. 5살 이지혜는 이웃 아저씨에게 ‘우주비행사’라는 자신의 꿈을 부정당하고 ‘미스코리아’라는 장래희망을 주입받게 된다. 게임 속에서, 여성이라면 응당 ‘미스코리아’가 최고라는 편견을 수용하게 되면 이웃 아저씨에게 칭찬받지만, 거부하게 되면 ‘여자 애가 드세다’는 비난과 낙인을 얻게 된다. 이 게임은 한국 사회 여성들의 삶의 축소판이다. 여성들은 어려서부터 이러한 이야기들을 한 번쯤은 들으며 자랐고, 자신의 최초 장래희망이 무엇이었는지 잊게 되었다. 

▲ 2013년 6월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57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 2013년 6월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57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이처럼 여성의 욕망은 오랜 시간에 걸쳐 사회적으로 조작되어 왔다. 조작된 욕망을 통한 통제의 내면화는 매우 끔찍한 종류의 폭력이다. 이 기나긴 조작과 왜곡의 역사를 끝내는 길의 시작은 여성이라는 존재와 미인의 상징적 기호인 ‘미스코리아’를 연결하는 통제의 사슬을 끊는 데 있다. 상징적인 기호를 제거하지 않고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2019년 6월, 대구에서 시작된 여성들의 ‘미스코리아 폐지’를 위한 움직임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되찾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미스코리아 대회 폐지에 대한 인권위원회 진정이라는 사건은 단순히 하나의 대중적 행사에 대한 거부에 있지 않다. 역사적으로 조작되고 왜곡된 ‘대중성’ 자체를 거부하는 행동이자, 여성의 주체성을 몸 안에 가두려는 전략 전체에 대한 저항이다. 여성들은 남성 중심 사회가 규정한 ‘여성’이 아닌 ‘인간’으로 대우받을 권리가 있다. 우리의 저항적 행동들이 지속될 때, 여성들은 ‘관직’과, 동등한 인류 구성원으로서의 지위를 되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와 그녀들은 마침내 잊었던 최초의 꿈을 되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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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06-17 20:48:27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하는거냐? 되고싶은 사람이 자기 스스로 갈고 닦아서 나가는 건데 도대체 누구 마음대로 폐지하라 마라 하는거임?

평화 2019-06-17 10:24:27
부당함을 직접 참여하고, 말을 해야 안다. 언론은 언제까지 3s(Sex, Sport, Screen)로 국민의 눈을 정치에서 돌리고 자극적인 것으로 선전선동만 할 텐가.

베소 2019-06-18 01:44:20
평등과 인권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파시즘=페미니즘 때문에 남성들은 둘째치고 같은 여성들도 고통받고 있다. 미니스커트를 시작으로 어머니 세대가 자유를 손에 넣어 쟁취한 ;꾸밀 자유;는, 이제 평등의 이름으로 금지되어지고 있다. 페미들은 남성이 여성을 혐오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들이 지켜주는 것은 여자가 아니라 페미에 소속된 자들 뿐이며, 이 소속감의 밖에 있는 여자들을 흉자라며 누구보다도 강하게 혐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