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가 베트남 측이 원하지도 않는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 베트남전 피해자 소송을 대리한다고 보도했으나, 당사자가 사실과 다른 수준 이하의 보도라며 반발했다.

문화일보는 지난 13일자 11면에 “‘베트남전 피해’까지 과거사 소송하겠다는 민변” 기사에서 “민변이 베트남 국민을 대리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피해 행위에 대한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민변이 베트남전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고 ‘단독’ 보도했다.

▲ 지난 13일자 11면에 실린 [단독] '베트남전 피해'까지 과거사 소송하겠다는 민변 기사
▲ 지난 13일자 11면에 실린 [단독] '베트남전 피해'까지 과거사 소송하겠다는 민변 기사

문화일보는 “베트남 측은 과거사에 대해 서로 거론하지 말자는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민변 측이 과거사 문제를 표면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정식 재판이 열려도 당장 ‘소멸시효’가 문제”라고 했다. 민사소송인 국가배상소송은 불법행위가 벌어진 날로부터 5년 안에 제기돼야 해 소멸시효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법무법인 해마루 소속 임재성 변호사는 민변 차원의 소송 대리는 없다고 밝혔다. 관련 소송은 민변이 아닌 법무법인 해마루와 법무법인 도담이 위임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변호사법상 소송은 법무법인 또는 개인 변호사만 대리할 수 있다. 임 변호사가 민변 소속이고 민변TF 차원의 관련 논의는 있지만, 소송의 주체는 아니다.

문화일보는 지난달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민변 측이 일본제철과 후지코시의 국내 자산 매각 신청을 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소송도 민변은 소송 대리인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문화일보는 기사를 정정하고 사과했다.

▲ 지난달 3일 문화일보가 오보를 인정하고 [바로잡습니다]를 보도했다.
▲ 지난달 3일 문화일보가 오보를 인정하고 [바로잡습니다]를 보도했다.

임 변호사는 이번 소송을 위해 TF를 만들었다는 내용도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민변은 2017년 4월 TF를 만들어 지금까지 2년 넘게 활동하고 있으며, 2018년 4월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을 열기도 했다. 베트남전 피해자 소송 대리 목적으로 TF를 만든 게 아니다.

베트남 측이 과거사 문제를 표면화시키고 싶지 않아 한다고 단정하기도 힘들다. 지난 4월 103명의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들이 청와대에 청원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와 베트남법률가협회는 지난 4월16일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피해사건(이하 ‘베트남전 민간인 피해사건’)에 대한 한국정부의 진상규명과 피해회복 조치를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냈다.

베트남법률가협회는 베트남공산당 산하 조국전선위원회의 회원 단체이며, 상당수의 회원이 공산당원으로 소속되어 있다. 6만3,000명 이상의 회원(2017년 말)과 베트남 전국 63개성, 도시에 지부를 운영하고 있다.

▲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지난 4월16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 1층 회의실에서 베트남법률가협회와 베트남전 민간인 피해사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진상규명과 피해회복조치를 촉구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진=서울지방변호사회
▲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지난 4월16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 1층 회의실에서 베트남법률가협회와 베트남전 민간인 피해사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진상규명과 피해회복조치를 촉구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진=서울지방변호사회

임 변호사는 “강제동원의 경우 ‘한일관계를 파탄내는 것에 민변이 앞장서고 있다’라는 프레임으로 해마루가 오랜 시간 대리하던 사건의 집행절차를 민변이 했다고 썼다”며 “이번 역시 20년여간 진행되어온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논의를 무시하고, ‘민변이 한국과 베트남과의 관계까지 들쑤신다’와 같은 프레임으로 기사를 구성한 듯 하다”고 지적했다.

임 변호사는 “성명을 발표할 때 이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다가, 정작 민변이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보도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기사 대부분이 ‘민변 측’, ‘알려졌다’와 같이 정확하지 못한 인용이나 취재를 바탕이 두고 있어서 수준 이하의 기사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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