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새벽 4시(현지시간 29일 오후 9시)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에서 한국인 관광객 33명, 헝가리인 선장과 승무원 2명이 탄 유람선 허블레아니 호가 추돌 사고로 침몰하여, 이 중 7명만이 구조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곧바로 이어진 수색 작업과 6월 11일 선체 인양 및 추가 수색을 거쳐 28명의 실종자 중 24명이 시신으로 발견됐고 우리 시간으로 13일 새벽 1시 30분 경 아시아인 추정 시신이 1구 추가 수습되면서 신원 확인 중입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 국민들에게 허블레아니 호 참사의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는 사고 직후 대응팀을 급파해 진상 파악과 수색에 나서고 헝가리는 물론 주변국과의 공조까지 이끌어내는 등 신속하게 대처했으나 실종자의 생환은 없었습니다. 헝가리 정부의 미심쩍은 행보도 의혹을 사고 있습니다. 허블레아니 호를 추돌해 참사를 일으킨 바이킹 시긴 호의 선사의 선장은 증거인멸 의혹 및 뺑소니 혐의를 받았으나 헝가리 법원은 인정하지 않은 채 선장을 12일 석방했습니다. 헝가리 현지 언론은 극우 성향의 헝가리 정부가 바이킹 시긴 호 소유주와 특수관계라는 의혹도 제기했습니다.

언론의 재난‧참사 보도, 세월호 이후 개선됐나
문제는 우리 언론입니다. 이미 세월호 참사에서 수많은 오보와 왜곡 보도로 희생자와 그 가족을 억압했던 언론은 반복적 오보나 희생자 모욕 보도를 양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변화했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사고 직후인 30일부터 사망 보험금, 배상금을 예상한 보도가 쏟아지면서 또 참사 희생을 돈으로 환산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똑같은 보도로 지탄을 받고도 전혀 바뀌지 않은 겁니다. 

이 외에도 희생자와 그 가족의 신상, 개인적 사연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태도도 여전했습니다. 언론은 재난이 발생하면 그 진상과 수습, 희생자와 그 가족의 인권 보호에 집중해야 합니다. 참사를 ‘슬픈 가족사’ 등으로 꾸미는 것도 희생자 가족에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디어오늘 <헝가리 사고 유가족 개인정보 언론사에 ‘유출’>(5/31, 박서연 기자)에 따르면, 행정안전부가 사건 수습을 위해 만든 유가족 개인정보가 담긴 3장짜리 문건이 기자들의 단체 대화방에 유포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6월 5일 이상진 정부합동대응팀장은 현지 브리핑 자리에서 “기자로 추정되는 한국인이 유가족으로 위장하여 사망자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 침입하려고 시도했다”며 기자단에 자제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희생자와 그 가족의 신상을 파고들고자 하는 이러한 취재는 매우 폭력적인 방식이며, 인권 침해에 해당합니다. 

▲기자들에게 취재 자제를 당부하는 이상진 정부합동대응팀장(6/5, YTN뉴스특보 영상 갈무리)
▲기자들에게 취재 자제를 당부하는 이상진 정부합동대응팀장(6/5, YTN뉴스특보 영상 갈무리)

 

방송사들의 ‘희생자 사연 보도’, 꼭 필요한 보도인가

5월 31일부터 6월 5일까지 5개 중앙일간지와 2개 주요 경제지의 허블레아니 호 참사 관련 기사는 총 176건입니다. 민경욱 한국당 대변인의 ‘골든타임 망언’ 등 정치권 소식은 제외한 수치입니다.

▲헝가리 유람선 사고 보도량과 인터뷰/사연/개인정보 포함된 기사 수(5/31~6/5) ⓒ민주언론시민연합
▲헝가리 유람선 사고 보도량과 인터뷰/사연/개인정보 포함된 기사 수(5/31~6/5) ⓒ민주언론시민연합

 

이 중, 사고 생존자/유가족/주변인 등의 인터뷰가 포함된 기사는 총 17건으로 전체의 10% 가량이었습니다. 희생자의 직업이나 이직 시기 등 개인정보가 포함됐거나, 희생자의 개인적 사연을 다룬 기사는 12건, 7%였습니다. 생존자/유가족/주변인 인터뷰와 희생자의 개인정보를 담은 보도, 즉 희생자 및 그 주변인 신상에 천착한 보도의 총량은 중복체크를 제외하고 21건으로 전체 보도의 12%입니다. 이런 형식의 기사들이 사건 초기인 6월 1일까지 기간에 몰려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닙니다.

거주지부터 근무지, 심지어 가족 실명까지…꼭 이래야만 하나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어 자세한 내용을 옮길 수는 없으나, 희생자들의 사연을 보도한 기사들은 누가 사고를 당했는지 유추할 수 있는 정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사건 피해자 중 부부동반 여행 중이던 안 모 씨(구조)‧유 모 씨‧최 모 씨를 포함한 6명은 ‘사연 기사’ 12건 중 총 5건의 기사가 거주지, 근무한 곳, 이직/퇴직시기, 세 가족의 교류 내력까지 기록했습니다. 실종자(선체 인양 후 사망 확인)중 가장 어렸던 6세 탑승객은 역시 총 5건의 기사에서 가족 여행을 떠난 계기, 거주지, 가족의 직업, 집안 내력 등이 공개되었습니다. 중앙일보와 한겨레는 직접 6세 탑승객 가족이 살던 곳을 취재해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 시누이와 같이 여행을 간 생존자 황 모 씨(5건), 남매가 같이 여행중이던 정 모 씨(4건), 한국인 가이드(3건), 고교 동창생(3건), 생존자 윤 모 씨 부녀(3건) 등의 사연이 언론에서 구체적으로 다뤄졌습니다. 과연 이렇게 개인 신상이라 할 수 있는 상세한 사연들이 재난‧참사 보도에서 꼭 필요한 것일까요? 참사의 진상과 수습, 대책 강구, 희생자 인권 보호라는 언론의 책무와 거리가 멉니다. 

피해자 가족의 실명이 나온 기사도 2건 있었는데, 동아일보 기사와 채널A에서 실명+영상 인터뷰를 진행한 실종자 정모 씨의 남편과 한겨레 기사에서 인터뷰 한 생존자 윤 모 씨의 부친이었습니다. 이 중 한겨레 기사는 삭제된 상태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위에서 열거한 여행객들의 사연 중 6세 탑승객 사연을 제외하면 모두 동승자 중 한 명 내지 두 명만 구조된 사례라는 점입니다. 언론들이 지나치게 이들의 사연을 자세히 다룰 경우, 사고 피해를 당한 사실과 가족/친지/친구를 어떻게 잃었는지가 신문기사라는 기록으로 영원히 남게 됩니다. 이는 잊혀질 권리를 침해할뿐더러, 가까운 사람들을 눈 앞에서 잃은 생존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큰 지장을 줄 수 있습니다.

유가족 취재 거부 사실 적시한 경향신문…거부할 일 애초 만들지 말아야
이렇게 언론들의 희생자 가족 취재가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실제로 유가족이 취재를 거부한 사례도 있습니다. 경향신문 <애타는 가족들이 마주한 건…무심한 강물뿐이었다>(6/1, 선명수 기자)는 헝가리로 출국하는 희생자 가족들을 취재했습니다. 일부 가족 인터뷰가 실렸으나 경향신문은 “대부분의 가족들은 ‘아무 할 말이 없다’고 손사래를 치며 취재진을 피했다”고 전했습니다. 가족의 생사가 기로에 놓인 상황에서 그 누구라도 취재진에게 인터뷰를 하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이는 기자들도 당연히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그렇다면 가족들의 심정을 알고 있을 경향신문은 ‘취재진 취재도 거부할 정도로 피해자 가족들이 실의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누구나 말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는 그 슬픔을 꼭 가족의 인터뷰로 보도해야 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재난‧참사는 물론, 강력 범죄 사건에서도 유가족과 그 지인을 과도하게 따라다니는 취재진들로 인해 언론이 과잉취재로 유가족을 괴롭힌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조선일보는 ‘민경욱 3분 막말’ 동조
이 와중에 자유한국당 민경욱 대변인의 막말에 유일하게 동조한 신문도 있습니다. 바로 조선일보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헝가리 유람선 사고 당일(30일) 아침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사고 대응과 신속대응팀 파견 등을 지시했습니다. 그러자 자유한국당 민경욱 대변인은 논평을 냈는데, “일반인들이 차가운 강물 속에 빠졌을 때 이른바 골든 타임은 기껏해야 3분”이라는 망언을 남겼습니다. 타국에서 변을 당해 소식조차 제대로 알기 어려운 피해자 가족들의 마음을 무시한, 변명의 여지 없는 막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이 이 발언을 비판했습니다. 조선일보와 함께 보수언론으로 꼽히는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중앙일보 <사설/막말‧혐오 대신 자유한국당의 대안을 듣고 싶다>(6/3)에서는 “도대체 민 대변인이 하고픈 말은 무엇인가. 대형 재난의 순간, 다 끝난 참사이니 정부와 대통령은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동아일보 역시 <한국당 또 설화…민경욱 “골든타임 기껏해야 3분”>(2019/6/3, 최고야 기자)에서 “정치권은 물론이고 누리꾼들은 실종자 가족의 애타는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며 비판했다. (중략) 온라인상에서는 ‘그럼 아무것도 하지 말란 소리냐’며 비판이 이어졌다”고 짚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신속 대응 지시’가 정치가 작동한 결과라는 조선일보 칼럼(6/6)
▲문재인 대통령 ‘신속 대응 지시’가 정치가 작동한 결과라는 조선일보 칼럼(6/6)

 

그러나 조선일보는 <김창균 칼럼/과학 대신 정치가 작동하는 재난 사고 대응>(6/6, 김창균 논설주간)에서 민경욱 대변인과 같은 논리를 들며, “한국당 대변인이 ‘골든 타임은 3분에 불과하다’고 비판한 것이 논란을 일으켰다. 가족들 심정을 헤아리지 않은 정치 공세라는 것이다.(중략) 다만 지구 반대편 선박 침몰 현장에 ‘속도가 중요하다’며 구조대를 보내는 대통령 지시에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고 두둔했습니다.

김창균 논설주간은 세월호도 언급하며, “세월호는 대통령 공격 소재가 됐다. 대통령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면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을 가리지 않았다. 세월호는 대한민국의 재난 사고 대응을 과학 대신 정치로 바꿔 버렸다”, “그래서인지 재난 사고, 특히 선박 침몰 사고가 터질 때마다 문 대통령이 보이는 반응에는 어떤 강박이 느껴진다. 전임자가 시달렸고 자신은 정치적 수혜를 누렸던 ‘대통령은 그때 무얼 했느냐’는 공격의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라 썼습니다.

대통령의 신속 대응이 ‘정치’?, ‘골든타임 망언’이야말로 ‘막말 정치’
대통령의 신속한 대응팀 파견에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이 적지 않다고 했으나 아마 그것은 김창균 논설주간 본인을 포함해 소수에 불과합니다. 오마이뉴스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헝가리 참사에 대한 정부의 초기대응 평가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6/4, 성인 8602명 대상 500명 응답, 응답를 5.8%,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 긍정 평가는 61.4%, 부정 평가 24.4%, 모름/무응답 14.2%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 수반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문 대통령이 지시한 것은 구조 뿐이 아니라 종합적인 진상 파악과 사고 수습이기도 합니다. 헝가리는 98년부터 20년 넘게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총리가 장기집권하며 언론 통제, 삼권분립 침해 등의 행태로 독재국가라는 평을 받고 있어, 현지에 인력을 빠르게 투입하지 않았다면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사고 수습에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언론에서는 헝가리 현지의 여러 사고 축소‧은폐 의혹이 잘 다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조선일보의 칼럼에서는 악의도 느껴집니다. 지난 4월에 있었던 강원 산불 당시, 일부 극우성향 유튜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5시간동안 초기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허위정보가 퍼졌었는데, 조선일보는 고정 필진인 서지문 교수의 칼럼 <서지문의 뉴스로책읽기/통치권자의 반칙>(4/16,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을 통해 “바로 신문의 날 저녁에 발화한 강원도 산불이 엄청난 기세로 확산되는 동안 전혀 나타나지 않았고 수습을 위한 지시도 없어서 그가 그 5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고 의문을 제기한 유튜버들에 대해서 청와대에서 '대응팀'을 구성한다고 한다”며 해당 허위정보를 중앙일간지 중 유일하게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런 조선일보의 행태를 보면, 김창균 논설주간의 칼럼은 정상적인 비판이라기보단 ‘대통령이 공격할 빌미를 주지 않아 안타깝다’는 한탄에 보다 가까워 보입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정치세력으로 몰던 조선일보야말로 세월호 때나 지금이나 재난보도에 ‘정치보다 과학’이 필요해 보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5월 31일~2019년 6월 6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경제, 서울경제(지면보도에 한함)

※ 문의 공시형 활동가(02-392-0181)

※ 정리 박철헌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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