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종영한 MBC 파일럿 예능 ‘가시나들’에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경남 함양의 문해학교에서 한글을 배우는 70~80대 할머니 5명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했다. ‘가시나들’은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의 준말로 영화 ‘칠곡 가시나들’ 예능 버전이다.

배우 문소리가 선생님 역할을 맡아 실제 한글 수업을 진행하고 최유정(위키미키), 이브(이달의소녀), 수빈(우주소녀) 등 20대 출연진이 ‘애기 짝궁’ 역할을 맡아 할머니들 배움을 돕고 그들의 일상을 공유한다. 할머니들이 ‘여자라서’ ‘가난해서’ 글을 배우지 못했던 사연, 먼저 세상을 떠난 ‘영감’을 그리워하는 모습에 코끝이 시큰해지지만, 배움이라는 기쁨과 가치, 세대 간 허물없는 소통, 할머니들의 우정에서 따뜻함과 감동을 느꼈다는 반응이 계속되고 있다.  

가시나들은 글쓰기(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지난달 19일 1회 첫 장면은 85세 이남순 할머니의 자작시 ‘제목 공부’ 낭독이었다. ‘글도 모르고/달력도 못보다/아무것 모르다//공부를 배우니/나는 살것네//버스도 혼자 타고/아들에게 전화도 하고/나는 살것네’ 가부장 현실에 한글을 배우지 못한, 그래서 공공서비스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었던 노년 여성들이 느지막이 글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세상과 소통이 가능했다. 할머니들의 시가 함축한 내용이다. 

가시나들 연출자는 ‘해직 언론인’ 출신 권성민 MBC 예능 PD다. 2012년 MBC에 입사한 그는 2014년 5월 세월호 참사 관련 자사 보도를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가 ‘정직 6개월’ 징계를 받았다. 징계 후에는 비제작부서인 경인지사 발령을 받았고, 그곳에서 웹툰으로 회사 조치를 비판했다가 2015년 1월 해고됐다. 이듬해 5월 대법원에서 해고 무효가 확정됐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권 PD를 만났다.

▲ MBC 파일럿 예능 ‘가시나들’ 연출자는 ‘해직 언론인’ 출신 권성민 PD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권 PD를 만났다. 사진=김도연 기자
▲ MBC 파일럿 예능 ‘가시나들’ 연출자는 ‘해직 언론인’ 출신 권성민 PD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권 PD를 만났다. 사진=김도연 기자

- 첫 단독 연출작이었다. 어렵지 않았나?
“첫 단독 연출작이긴 하지만 외주 제작으로 작업을 시작했다.(질문: 무슨 말인가?) 가시나들 원작은 영화 ‘칠곡 가시나들’이다. 영화 제작사 ‘단유필름’과 원작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그 과정에 힘든 부분이 있다. 연출이나 제작 면에선 내가 해보고 싶었던 걸 내 뜻대로 다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너무 즐거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MBC 예능국 내에서 처음 이 기획을 환영하지 않았고 제작비 압박도 컸다. 외부 제작사(단유필름)가 리스크를 많이 감당하게 돼 중간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면도 있다. 편성을 받는 과정에서 회사에 설득을 많이 했다.” 

- 가시나들이 JTBC에서 방송될 뻔했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칠곡 가시나들’의 김재환 감독은 원래 영화 제작하실 때부터 TV 방송 생각도 있으셨다. 저를 만나기 전 JTBC 쪽에서 김 감독에게 좋은 조건, 10회 이상 한 시즌을 보장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영화가 제작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개봉 전 김 감독에게 ‘저랑 같이 예능 한번 해보시면 어떻겠느냐’고 말씀을 드렸더니,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며 저를 믿고 MBC로 오셨다. JTBC 제안은 한 시즌 보장이었다. MBC가 제시한 조건은 열악했다. 처음에는 2회만 하라고 했다. ‘처음 하는 PD에게 뭘 믿고 4회씩 주느냐’는 분위기도 있었다. 파일럿 4회 얻어내는 과정이 힘들었다. 지금이야 프로그램 외부 평가는 좋지만 MBC 예능 부장단은 낯설어하는 면이 있다.” 

- ‘시니어 예능’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원래 우정이 자연스럽지 않을 것 같은 관계에서 돋아나는 우정에 관심이 많다. 영화 시네마천국, 디즈니애니 ‘업’ 등 ‘노소물’(노인과 소년의 우정을 다룬 영화) 류의 우정을 다룬 콘텐츠를 좋아한다. 젊은 세대가 노년층을 혐오하는 현상이 심각하다. 그런 부분을 환기시킬 수 있다고 봤다. 영화 ‘칠곡 가시나’ 소식을 듣기 몇 년 전부터 인터넷에는 한글을 느지막이 배운 할머니들의 글씨와 글 이미지들이 많이 돌아다녔다. 여러 울림을 많이 줬던 것 같다.”

- 프로그램 평가가 좋다.
“시청자들 평가 중 가장 많았던 건 ‘단짠예능’이라는 말씀이었다.(웃음) 달고 짜고 하다는 건데, 웃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고 울 것 같았는데 갑자기 웃기고. 연출자로서 기분 좋은 칭찬이었다.” 

- 배우 문소리씨는 정말 교사 같았다. 
“기대 이상이었다. 문소리씨는 오랫동안 좋아한 배우다. 자연인으로서 노출이 없었던 배우 중 하나였다. 예능은 자연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실제 어떤 분이실까 궁금했다. 다른 여배우에 비해 훨씬 소탈하고 사람에 공감하는 능력이 클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문소리씨도 영화 ‘칠곡 가시나들’을 좋게 보셨고 섭외 과정은 순조로웠다. 할머니들이 여성 차별 현실에서 불합리하게 교육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점에서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도 있는데, 문소리씨는 이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너무 무겁지 않게 이끌었다. 문학 수업 준비도 완벽에 가까웠다. 수업 콘텐츠 가이드라인을 드리면 그 이상을 준비했다.”

- ‘애기 짝궁’ 연예인들의 진심도 느껴졌다. 할머니들과 서먹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진짜 손주들을 보는 듯했다. 섭외 조건이 있었나?
“‘예능 선수’들은 안 쓰려 했다.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예능 선수들은 카메라 앞에서 재미 포인트를 잡고 분량을 뽑아내는 기술이 탁월하다. 이런 선수들의 호흡에 끌려갈까 그동안 예능에 노출이 안 됐던 젊은 연예인로 구성했다. 카메라 앞에서 무언가를 자꾸 하려는 사람은 아니었으면 했다. 실제 자기 조부모와 얼마만큼 친분이 있는지 봤다. 이를 테면 최유정씨 같은 경우 2~3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할아버지와 너무 친했다고 한다. 노년층과 소통하는 방식이 서로 달라서 익숙하지 않으면 예의 차린다고 ‘예’, ‘예’ 그러다가 서먹하게 끝날 수도 있었지만 우리 출연진들은 자기 할머니를 대하듯 스스럼없었다.”

- 따로 당부한 말은 없었나?
“‘카메라 앞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러분 매력은 저희가 찾아 방송에 보여드릴 테니 여러분들은 자기 매력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기보다 짝궁 할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매력이 있는지 그걸 찾아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첫 출연 예능에 욕심이 날 수 있었을 텐데 당부했던 부분을 너무 잘 따라줬다.”

▲ 가시나들은 글쓰기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지난달 19일 1회 첫 장면은 85세 이남순 할머니의 자작시 ‘제목 공부’ 낭독이었다. 사진=MBC 가시나들 화면 갈무리
▲ 가시나들은 글쓰기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지난달 19일 1회 첫 장면은 85세 이남순 할머니의 자작시 ‘제목 공부’ 낭독이었다. 사진=MBC 가시나들 화면 갈무리

- 여타 예능과 자막이 달랐다. 최근 예능 트렌드는 자막만으로도 내용이 모두 이해되는, ‘디테일의 끝’인데 가시나들은 유독 차분했달까.
“보통 자막은 조연출들이 많이 쓰는데 이번은 거의 전편을 제가 다 봤다. 조연출에게 나눠주더라도 마지막 단계에서는 내가 직접 하나하나 고치면서 전편 자막을 모두 봤다.”

- 자막을 선택하고 작성하는 기준이 있었나?
“감정이나 웃음을 시청자들에게 강요하지 않았으면 했다. 인물들이 아직 감정에 다다르지 않았는데 자막이 앞서 나가면서 그 감정들을 미리 설명하는 걸 지양했다. 또 최대한 할머니들 언어를 재현하려 했다. 우리 취향에 맞게 자막을 바꾸는 걸 지양했다. 자막뿐 아니라 편집에서 지금 예능의 트렌드는 ‘친절함’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오디오나 비디오 화면으로 알 수 있는 정보인데도 항상 자막이 한 번 더 설명한다.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에서 충분히 감정이 전달되는데 지금 어떤 감정이라고 자막이 꼭 짚는다. 그런 걸 하지 않았다. 덜 친절한 자막인 셈이다.(웃음) 시청자들은 보다 더 자유로웠을 것이다.”

- 에피소드를 이끄는 ‘진행자’가 없다는 것도 특이점이었다.
“우리가 우리 뜻대로 구성을 끌어가고자 했다면, 예능에 익숙한 출연진이 선두에 서서 주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할머니들 일상을 최대한 그냥 따라가고자 했다. 한 예로 한 할머니가 염소들에게 먹이를 준다고 하셨는데, 말씀과 다르게 가지 않으셨다. 대신 갑자기 진달래를 따러 가자고 하셨다. MC가 있다거나 기존 구성을 힘 있게 끌고 가고 싶었다면 ‘염소한테 함께 가시죠’라고 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웃음)”

- 할머니들 공통점은 ‘혼자’라는 것이다. 홀로 사시는 할머니가 섭외 기준이었나? 
“할머니들 모두 사별하신 분들이다. 농촌에는 홀로 계시는 노년 여성이 많다. 혼자인 분들 위주로 섭외하려 한 것도 사실이지만 영감님이 살아계시면 아무래도 문해학교를 다니기 힘들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영감님이 학교 가지 말라고 직접 만류하지 않아도 할머니 스스로 눈치를 보시더라. ‘남세스럽게 한글 모르는 거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느냐’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고. 혼자 사시는 할머니들은 자유롭고, 비교적 자기 삶을 살고 계신다. 우리 입장에서도 촬영이 수월하다.”

- 할머니와 문소리씨가 작성한 시들이 인상 깊었다.  
“‘시’는 영화 ‘칠곡 가시나들’ 영향을 받은 거다. 영화 이전 인터넷에 돌아다녔던 할머니들 글쓰기 대부분이 시 형태였다. 할머니들이 긴 글을 쓰는 건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데 시는 짧다. 당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기에 좋은 형식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시들은 3년 동안 할머니들이 쓰신 결과물들을 추린 것이라 퀄리티가 높았다. 우리는 짧은 시간에 안에 가능할까 싶었지만 기대 이상으로 매우 좋았다. 할머니들이 촬영 기간 안에 다 쓰신 것들이다. 글은 표현의 도구다. 할머니들은 자기 언어와 생각, 삶을 표현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할머니들이 글을 통해 정보를 획득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의 편의를 확보한 면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자기 언어와 글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그분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계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 출연진과 제작진 모두 할머니들에게 깊이 공감했던 것 같다. 할머니들 역시 제작 촬영이 전부 끝나고 상실감이나 공허함 같은 감정이 크지 않았을까?
“우리도 시청자들도 그 부분을 우려했다. 만약 이분들이 정말 깊은 산골짜기에 이웃도 마을도 없이 혼자 사셨다면 촬영하지 않았을 것 같다. 우리가 있고 없고 차이가 너무 큰, 고독의 위치였다면 촬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할머니들은 학교를 다니시는 분들이다. 자기 커뮤니티와 삶이 있는 분들이다. 그들 관계는 계속될 것이라 그렇게 큰 상실감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 같다. 요즘도 할머니들에게 연락을 드리는 출연진들이 있다. 최근 연락을 드리니 소판순 할머니의 경우 친구들과 밥을 비벼놓고 본방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시더라.(웃음)”

- 다큐 같은 예능, 영화 같은 예능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예능은 보통 웃고 즐기는 방송 장르인데 심각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어떻게 답하겠나?
“방송 보신 많은 분들이 ‘재밌다’고 말한다.(웃음) 덧붙이자면 예능과 교양, 다큐의 장르 경계는 의미가 없을 정도로 흐릿하다. tvN ‘스페인하숙’ 등 나영석 PD의 경우 문법이 전혀 예능스럽지 않다. 구성 방식이나 호흡을 봐도 다큐멘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를 필요도 없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스스럼없이 예능으로 받아들인다. 장르와 경계를 이야기하는 게 이젠 큰 의미가 없다. 콘텐츠가 사람들 이목을 끌고 울림을 준다면 장르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물론 예능 장르의 본연 기능이 즐거움과 웃음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깔깔 웃을 수 있는 예능은 필요하다. 그런 요소를 좋아하는 분들은 그에 맞는 예능을 보면 되고, 내 입장에서는 내가 또 잘할 수 있는 예능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가시나들은 우려와 달리 재밌다는 평가가 많았다.” 

- 카메라 프레임이 예능보다 영화에 가까운 것 같았다. 약간 뿌옇다고 해야 하나. 카메라를 멀리서 잡은 느낌의 프레임도 눈에 띄었다.
“카메라는 시네마카메라로 촬영했다. 요즘 예능에서 영상미를 신경쓸 때 많이들 쓴다. 기존 예능 색감이 선명하다면 우리는 영화 톤으로 잡았다. 호불호가 있더라. 색감이나 화면이 예쁘다고 해주시는 분이 있는가하면 어둡고 답답하는 평도 있었다. 감정을 크게 자극하지 않는 장면에서 마음이 울렁울렁하셨다면 영상미 영향도 크다고 생각한다. 걷는 장면을 찍을 때 보통 카메라감독이 5m 앞에서 뒷걸음질하며 찍게 되는데, 우리는 최대한 먼 곳에서 영화 같은 프레임을 잡고자 했다. 이를 테면 할머니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걷고 버스에서 내려 다시 걸어가시는, 한 시간 이상 소요되는 등교 모습을 담을 때 그랬다. 영상미나 정취를 조금 더 보여주고 싶어 욕심을 냈다.”

▲ MBC 예능 가시나들 포스터.
▲ MBC 예능 가시나들 포스터.

- 시청률은 3% 수준이었다. 
“아쉬운 대목이다. 동시간대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있는데 한 주 전체 예능 가운데서도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이다. 슈돌과 동시간대에 들어가 2~4주 만에 가시적 성과를 얻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특정층 안에서 화제가 많이 된 것 같다. 트위터 같은 경우 마지막 방송날은 ‘가시나들 정규편성’ 태그가 한국 트렌드 2위까지 올랐다.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는 정규편성을 요구하는 글이 300여개 게시됐다. 그곳은 보통은 욕하러 들어오는 공간인데.(웃음) 주로 10~30대 여성 커뮤니티 위주로 프로그램 화면 캡처 등의 콘텐츠가 공유됐다. 젊은 여성들의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 본인도 정규편성을 바라고 있을 텐데?
“외부 평가는 좋은데 내부에서 아직 확신을 못 갖는 것 같다. 예능답지 않다, 전통 예능은 아니다는 평가도 있는 것 같다. 파일럿이 처음부터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일은 드물다. 우리보다 시청률이 안 좋은 프로그램들도 기회를 얻곤 하니까…. 다만 첫 파일럿 단독 연출 기회를 줬는데 정규편성을 못 받으면 PD가 인정을 못 받았다는 얘기와 같아 향후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걱정도 든다. 회사가 위기에 직면하다보니 수익성을 중시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 보니 당장 성과 없는 프로그램에 기회를 주는 것을 어려워한다. 복잡한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 연출자로서 느끼는 지상파 위기, 어느 정도 체감하나?
“당연히 미디어환경 자체가 지상파에 불리해지고 있다. MBC가 건강한 상태에서 대처했어도 쉽지 않았을 텐데 지난 10년의 비정상 운영 끝에 이제야 따라가려니 진통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PD입장에서는 딱 두 개다. 내 프로그램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얼마나 많이 받느냐. 그걸 하는 데 예산 등 운신의 폭이 얼마나 넓은가. 두 가지 조건에서 MBC PD들이 힘들어한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실패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일말의 정치색도 허용하지 않았던 과거 경영진과 비교하면 MBC 제작 자율성은 커졌지만 제작비 압박이나 연출 기회는 회사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예능 PD들이 그 측면에서는 변화의 차이를 크게 느끼진 못한다.”

- tvN이나 JTBC 등과 비교했을 때 느끼는 것들도 있을 텐데?
“MBC에도 잘되고 있는 예능이 다수라 시청률 등에서 마냥 안 좋다고 평할 수는 없다. 다만 ‘저 회사는 저런 프로그램에도 기회를 주네’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저런 기획에도 편성을 주네’ 이런 느낌. 단적으로 가시나들만 봐도 JTBC는 김재환 감독에게 12회 보장을 약속했다. 우리는 레귤러는커녕 파일럿 4회도 열심히 싸워 얻어낸 것이니까.”

- 드라마와 예능 제작 현장에서 주 52시간 노동이 화두다. 가시나들 현장은 어땠나?
“밤샘 촬영은 애초 불가능했다. 할머니들은 주무셔야 하기 때문에. 대신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촬영이 이른 점은 있었다. 그래도 최대한 스태프들이 식사를 거르지 않게 노력했다. 현장은 힘들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괜찮았다. 스태프들이 기뻐하고 행복해한 이유는 물론 할머니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에 있었지만 해가 지면 촬영을 정리하고 스태프 식사에 신경을 많이 썼다. 스태프들이 과도한 노동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노력을 많이 했다.” 

▲ MBC 파일럿 예능 ‘가시나들’ 연출자는 ‘해직 언론인’ 출신 권성민 PD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권 PD를 만났다. 사진=김도연 기자
▲ MBC 파일럿 예능 ‘가시나들’ 연출자는 ‘해직 언론인’ 출신 권성민 PD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권 PD를 만났다. 사진=김도연 기자

- 현장에서는 주 52시간 노동이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제작 기간이 충분히 넉넉하고 사전 제작 기간이 길면 52시간을 준수할 수 있다. 그러나 방송사 대부분 사전 제작 기간을 충분히 주기 어려운 상황이다. 편성이나 전략 문제일 수 있는데 비용과 시스템 문제도 있다. 짧은 기간 안에 프로그램 완성도를 높이려다보니 발생하는 문제다. 주 52시간 준수는 노동자 요구인데, 정작 예능 PD들은 그렇게 일해선 못 만든다고 호소하는 상황이다. 현실적 고민도 필요한 것 같다. 관찰 예능 등 일상을 담는 예능들은 촬영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스태프들이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게 배려하는 것도 필요하다.”

- 한국방송 제작이 지나치게 노동집약적인 것은 아닐까?
“특유의 높은 밀도가 있다. 다른 나라 예능 쇼들은 그렇지 않은데, 한국은 유독 노동집약적 콘텐츠가 되는 경향이 있다. 편집이 디테일하다. 디테일한 편집으로 서사를 만든다. 컷마다 자막을 넣는다. 60~100분 예능 자막을 다 손으로 쓴다. 자막은 기껏해야 2~3초 쓰는 건데, 60분을 다 채우는 거니까 굉장한 노동집약 작업이다. 장르적 특성과 노동 환경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것 같다.”

- MBC 해직 언론인 출신이다. 이번 작업에서 이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생각보다 사람들은 나한테 관심이 없다.(웃음) 몇 년 전 해고 PD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하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해고나 파업 때 많은 관심을 보내주신 건 우리가 언론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공영방송이었기 때문에 사회적 지지와 응원을 받은 거라 생각한다. 해고 때 들었던 생각은 내가 PD로서 무언가를 만든다면 시청자들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으면 했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갔어야 하는 관심을 대신 받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관심이 필요한 이들에게 받았던 관심을 돌려드릴 수 있는 콘텐츠를 할 수 있길 바랐다.”

-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 말씀은?
“자막, 컷, 편집, 호흡을 세세하게 신경 썼다. 그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디테일하게 신경 쓰더라도 시청자들에게 다 전달되지 않으니까 사소한 걸로 힘 빼지 말자, 다른 스태프들 고생시키지 말자고. 그래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내가 손을 봤다. 그런데 시청자들이 생각보다 더 세세하게 봐주시고 그걸 잡아서 또 여러 말씀을 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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