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환자 주삿바늘인지도 모르고 찔린다”
“어떤 환자 주삿바늘인지도 모르고 찔린다”
국립대병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유명무실 “청소노동자 처우는 환자 건강과 직결”

온갖 집기가 널브러져 있고, 곳곳에 선혈이 낭자하다. 병원 청소노동자들이 청소해야 하는 수술실이 이렇다. 누구 피인지 모른 채 닦아내야 하는데 불안감이 엄습한다. 정리하려 바닥에 손을 뻗은 순간 주삿바늘에 찔리곤 하는데 감염되는 게 아닌지 두렵다. 환자가 퇴원한 다음 병실 청소 때도 마찬가지다. 이 자리에 있던 사람이 어떤 질환을 앓았는지 모른 채 호출하면 달려가야 한다. 

여영국 정의당 의원과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공공운수노조, 민주일반연맹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립대병원 파견 용역직 노동자 증언대회를 열었다. 

의료연대본부가 2015~2016년 국립대 및 국립대 위탁 시립병원 5곳을 조사한 결과 노동자 360명 가운데 62.5%가 환자에게 사용한 주삿바늘, 칼 등에 찔리거나 베였다고 답했다. 주최측이 제작한 영상에 나오는 한 노동자는 “200원짜리 장갑을 끼고 일하다보니 찔릴 수도 있고 감염될 수도 있다”고 했다. 서울대병원의 한 노동자는 “바늘에 찔리고 나서 이 환자가 누구냐고 물으니 독감이라고 하더라. 섬뜩했다”고 했다.

▲ 병원 청소노동자들이 청소를 해야 하는 수술실 모습.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 병원 청소노동자들이 청소를 해야 하는 수술실 모습.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증언에 나선 변성민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조직국장은 “메르스 사태 때는 장갑조차 제공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았다. 노조가 항의하고 나니 하루 한 켤레 주던 장갑을 한 켤레 더 준 게 전부다. 의료폐기물은 버리는 순간 장갑을 교체해야 하기에 두 켤레로는 부족했다. 장갑을 교체하지 않고 다시 병동으로 들어가야 했다.”

인력 부족도 문제다. 변 국장은 “사람이 부족하니 노동 강도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야간에는 1층부터 11층까지 3명이 청소하는데 형식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감염에 노출된 곳을 신경쓰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열악한 노동환경이 환자들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는 점이 핵심 문제라고 강조했다.

도급업체가 노동자들에게 과한 요구를 하거나 노조를 탄압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계옥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경북대병원 민들레분회 전 분회장은 사측의 노조 탄압 실태를 증언했다. 업체가 바뀌면서 재계약하는 과정에서 소장이 노동자들에게 따로 종이에 서명을 받은 다음 임의로 ‘노조 탈퇴서’라고 써 제출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전 분회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조합원들은 겁을 낼 수밖에 없었고 활동하기 힘들어 했다”고 말했다. 

전남대병원은 노조 조합원과 비조합원 탈의실을 별도로 설치했는데 조합원 탈의실은 좁고, 자동잠금장치도 없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복도에 사물함을 뒀다. 전남대병원 도급업체측은 노동자들에게 2명 이상 모여있지 말고, 특정 장소(파지장)에 3분 이상 머물지 말라는 등 과도한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고용 구조로 인해 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처우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점은 고질적인 문제다.

▲ 여영국 정의당 의원과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공공운수노조, 민주일반연맹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립대병원 파견 용역직 노동자 증언대회를 열었다.  사진=금준경 기자.
▲ 여영국 정의당 의원과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공공운수노조, 민주일반연맹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립대병원 파견 용역직 노동자 증언대회를 열었다.  사진=금준경 기자.

노동자들은 ‘정규직화’를 요구한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내걸고 공공부문 용역파견 노동자들의 계약만료 시점에 직고용하거나 자회사를 통해 고용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국립대병원은 1단계 전환사업장이기에 노동자들은 금방 정규직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13개 국립대 병원 가운데 정규직화가 이뤄졌거나 추진되는 곳은 두 곳 뿐이다. 강릉원주대치과병원은 파견 용역 노동자가 6명에 불과해 정규직화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부산대병원은 불법파견 시정 차원에서 정규직화가 추진되는데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부산대병원측은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을 원하지만 노조는 직고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병원에서 상시지속업무, 생명안전업무가 이뤄지고 전문성, 숙련성 등이 담보돼야 해서다. 자회사 구조로는 중간착취와 차별, 열악한 근로조건이 유지되는 점도 문제다. 노조는 부산대 노동자 1인 용역비와 인건비 차이가 월 89만원에 달한다고 밝히며 중간착취가 사라지면 직접고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며 10일부터 청와대 앞 농성을 시작했다. 6월을 기준으로 계약 만료되는 병원이 적지 않아 노동자들은 다급하다. 김종숙 보건의료노조 광주전남지역지부 부지부장은 “정부는 정규직화가 어디에서 막혀서 안 되는지, 살펴서 물길이 흐르게 해야 한다”고 했다.

여영국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정규직화를 발표하며 지지를 받았으나 희망고문이 됐다. 좋은 일자리를 공공부터 민간으로 확대한다고 하는데 공공에서 막혀 있다”며 “좋은 일자리는 이미 있는 일자리를 양질로 만드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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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06-12 18:53:01
국회가 마비되면 정부기관도 잘 돌아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국회가 잘 돌아가야 취약계층이 피해를 보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국회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투표로 주권을 행사한 것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회의원도 포함된다는 걸 명심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