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단체 활동가로 중증장애인의 노동 현실을 알렸다. 다양한 노동현장을 찾아 연대투쟁도 했다. 그래도 뭔가 부족했다. 연대‘만’ 하는 게 아니라, 장애인의 노동 현실을 알리고 싶었다. 인천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정명호 활동가 얘기다. 지난해 초 장애인운동 활동가들과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몇 명이 준비모임을 시작했다. 회의와 세미나가 이어진 끝에 장애인일반노조를 꾸리게 됐다.

장애인일반노조 준비위원회가 오는 12일 발족한다. ‘일반노조’는 노조를 만들기 어려운 노동자들이 직종과 산업, 기업을 초월해 만드는 노동조합을 말한다. 장애인일반노조는 지역 구분도 넘어선다. 정명호 활동가는 앞서 장애인 노동자들이 일반노조를 만드는 사례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모범답안 없이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셈이다. 정명호 활동가가 준비위원장을 맡기로 했다.

정명호 장애인일반노조 준비위원장을 11일 저녁 서울 마포구 휴서울이동노동자 합정쉼터에서 만났다. 언어장애가 있는 정 위원장은 보완대체의사소통장치(AAC)를 활용해 질문에 답했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사전에 한 차례, 대면으로 한 차례 이뤄졌다. 그는 “최중증장애인은 살아있는 자체가 노동”이라며 “장애인일반노조가 노동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고 싶다”고 했다.

아래는 정명호 장애인일반노조 준비위원장과 일문일답.

▲정명호 장애인일반노조 준비위원장을 11일 저녁 준비위원회 발족을 이틀 앞두고 서울 마포구 휴서울이동노동자 합정쉼터에서 만났다. 사진=김예리 기자
▲정명호 장애인일반노조 준비위원장을 11일 저녁 준비위원회 발족을 이틀 앞두고 서울 마포구 휴서울이동노동자 합정쉼터에서 만났다. 사진=김예리 기자

-장애인일반노조 준비위원회가 생긴다고 듣고서야 ‘왜 아직까지 없었을까’ 궁금했다.
“나도 그게 제일 궁금하다.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봤는데, 다른 나라에서도 우리처럼 장애인일반노조를 만든 경우를 보지 못했다. 아마 외국도 ‘중증장애인은 노동할 수 없다’는 생각이 팽배한 게 아닐까 싶다. 현장에서 노동하는 장애인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일과 더불어 중증장애인의 새로운 노동의 가치를 찾는 게 우리 조직을 만들게 된 이유다.”

-장애인의 고용 현실은 어떤가.
“정부가 밝힌 공식 장애인 실업률은 6.3%다. 전체 실업률(3.5%)의 약 2배다. 그러나 이는 허울뿐인 숫자다. 노동시장 진입을 아예 포기한 수많은 장애인은 실업자 통계에 들어가지 않는 탓이다. 전체 장애인 인구 대비 미고용률인 63.43%를 고려하면,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실업 상태라 보는 게 맞다. 그나마 취업한 장애인 가운데서도 임시·일용직이 60%다. 결국 10명 가운데 정규직 노동자는 1.5명 꼴이다. 이들은 대다수가 경증장애인으로, 50인 이하 열악한 사업체에서 일한다.”

▲정명호 장애인일반노조 준비위원장 등 활동가들이 지난 3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총파업에 연대참가하고 있다. 사진=정명호 위원장 제공
▲정명호 장애인일반노조 준비위원장 등 활동가들이 지난 3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총파업에 연대참가하고 있다. 사진=정명호 위원장 제공

-장애인일반노조가 하려는 일은.
“장애인 고용·노동 차별을 없애는 데 앞장선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도가 있지만, 정부 부처조차 법정 의무고용률(3.4%)을 지키지 않는다. 민간기업도 마찬가지다. 특히 대기업일수록 실제 고용률은 낮아, 법정 비율(3.1%)의 절반에 그친다. 노동하는 장애인들도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일터에서 부당한 일을 당해도 해고가 두려워 문제 제기하기 어렵고, 장애인의 노동은 최저임금 적용에서도 제외돼 있다.
장애인일반노조는 의무고용을 지키지 않는 기업을 찾아 법정 의무고용률을 지키라고 요구할 것이다. 정부엔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장애인 의무고용률과 부담금 대폭 상향조정 △장애인 노동 최저임금 적용제외 폐지 등을 요구한다. 각 사안에 따라 사용자와 단체교섭도 진행할 생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장애인의 노동을 새롭게 정의하는 일이다. 장애인의 노동가치는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경쟁과 효율 기준에 따라 평가절하된다. 예컨대 동료상담 노동의 경우, 한 중증장애인이 1년에 몇 명을 상담했다는 숫자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정작 중요한 건 상담 서비스를 받은 장애인이 얼마나 변화하고 발전했는지 여부다. 아직은 준비 단계에 있지만, 노동을 보는 기존 관점을 깨고 새로운 기준을 세우고자 한다.”

▲정명호 장애인일반노조 준비위원장이 11일 저녁 보완대체의사소통장치(AAC)를 활용해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정 위원장이 AAC에 문자를 입력하면 해당 내용이 스피커로 흘러나온다. 사진=김예리 기자
▲정명호 장애인일반노조 준비위원장이 11일 저녁 보완대체의사소통장치(AAC)를 활용해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정 위원장이 AAC에 문자를 입력하면 해당 내용이 스피커로 흘러나온다. 사진=김예리 기자

-가장 시급한 과제를 꼽는다면.
“준비위에서 좀 더 논의해봐야 하지만, 나는 의무고용을 가장 지키지 않는 기업 집단을 상대로 투쟁하고 싶다. 또 2배수 고용 제도가 있는데, 중증장애인을 한 명 채용하면 국가가 ‘그 기업은 두 명의 장애인을 채용했다’고 인정해 준다. 의무고용률을 지키라니까 이런 꼼수를 부리는 게 현실이다. 이런 제도의 문제도 고쳐가야 한다.”

-장애인일반노조가 생긴 이후 노동현장 연대는 어떤 모습일까.
“그동안 장애인권활동가로 많은 노동 현장을 찾았다. 쌍용차와 동광기연, 파인텍 부당해고 사태부터 최근 화두인 한국GM까지. 이렇게 연대해왔지만, 그간은 한 발짝 떨어져 같이 투쟁하는 느낌이었다. 반면 장애인일반노조가 발족한 뒤의 연대는 아무래도 이전보다 훨씬 주체적으로 다가가는 투쟁이 될 것이다.”

장애인일반노조 준비위원회는 12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발족 기자회견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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