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이면 전기요금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진다. 에어컨 사용이 늘어남에 따라 ‘전기요금 폭탄’을 맞았다는 기사도 늘어나고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없애자는 주장도 많아진다. 최근에는 탈원전정책 탓에 전기요금이 올라갈 것이라는 찬핵 진영의 주장까지 겹치면서 연례행사처럼 여름철이면 전기요금을 둘러싼 논쟁이 많아진다.

하지만 몇 년째 전기요금을 둘러싼 논의는 여름철, 가정용, 누진제 이 3가지 주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체적인 전기요금 체계 개편 같은 근본적인 논의는 계속 늦춰져 있고, 가장 기초적인 정보조차 제공되지 않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기요금 원가 문제이다. 국내 전력생산의 대부분을 공기업이 담당하고 있고 전력판매는 한전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발전단가와 전력판매 비용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공개된 자료가 없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한전이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기사들이 나오지만, 한전의 적절한 수익률을 거두고 있는지 등에 대한 분석 자료는 없다. 전력생산 단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력도매시장에서 발전소에게 지급되는 비용만 공개되고 있을 뿐, 이 비용이 적절한지 여부는 제대로 검증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정산조정계수 같은 것을 이용해서 수익이 많이 나면 발전사에 지불하는 정산비용을 줄이고, 손해가 많이 나면 정산비용을 늘리는 식으로 운영되어 왔다. 그나마 민간발전사의 경우에는 이런 제도조차 없어 지나치게 많은 수익을 거둔다는 지적과 적자에 허덕인다는 아우성이 번갈아가며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국민들의 전기요금에 대한 인식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전기요금을 아직도 ‘전기세’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전기요금은 세금이 아니라, 전기 사용량에 따라 내는 ‘요금’이지만 아직 많은 이들에게 ‘세금’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부는 그동안 국민적 요구가 있으면 수차례 전기요금을 인하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입말로만 ‘전기세’라는 말을 쓰는 것이 아니라, 개념적으로 언제든지 내릴 수 있는 세금 같은 것이라는 인식이 더욱 공고해졌다.

이런 가운데 또 정부가 여름철 전기요금 인하 카드를 들고 나왔다. 정부가 제시한 세가지 안은 경중의 차이는 있으나, 주택용 전기요금을 낮추는 기조에는 차이가 없다. 여름철 에어컨 사용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요금인하를 통해 국민 부담을 줄이겠다는 내용은 있지만, 그 비용을 누가 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이 없다. 결국 누군가는 이 비용을 지불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일종의 조삼모사 정책인 것이다. 

만약 그동안 정부가 국민들에게 부당하게 전기요금을 많이 거둔 것이라면 여름철에만 전기요금을 내릴 것이 아니라, 전체 요금을 인하해야 할 것이다. 공기업 한전이 폭리를 취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한전의 경영 상태나 미세먼지·에너지전환 정책 추진 상황을 볼 때, 그럴 여력은 없다. 정부 설명대로라면 오히려 매년 수천억 원의 비용을 한전이 부담해야 할 상황이다. 

기후변화·미세먼지·핵발전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전기요금에 각종 부담금을 늘리고 있다. 스마트그리드 등 송변전망을 현대화하기 위한 비용도 적지 않게 들어가고 있다. 우리보다 전기요금이 3배정도 비싼 독일의 경우, 주택용 전기요금에서 실제 전기 생산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19.3%에 불과하다. 발전 비용보다 송변전 비용(25.7%)이 더 많다. 또한 각종 세금과 부과금이 전체의 55%에 이른다. 국내 찬핵진영은 독일이 탈원전 정책으로 비싼 전기요금을 내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발전비용이 비싼 것이 아니라 ‘전기세’가 비싼 것이다. 독일이 이처럼 높은 전기요금을 감내 할수 있었던 것은 무작정 낮은 전기요금은 환경적 부담이 크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미세먼지, 국민 안전을 고려하려면 비용이 들어가야 한다는 매우 당연한 문제에 공감한 것이다. 이는 또한 발전 비용, 송변전비용, 각종 세금이 세분화되어 공개되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발전과 송변전 비용은 명확히 구분되어 공개되어 있지도 않다. 한전과 발전사가 부당한 이익을 거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은 계속 있었지만 한전의 적정 수익률에 대한 합의는 없다. 국민 모두가 전기요금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지만, 이처럼 기초적인 자료조차 없는 것이 우리 실정이다. 정부는 이번 달 안에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을 매듭짓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발표가 여름철 한 때 ‘선심성 정책’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당장 요금제 개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자료부터 내놓고 국민들의 의사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매년 연례행사처럼 주택용 누진제를 완화하는 정책이 적절한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조차 없이 또다시 요금만 깎아주는 정책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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