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목사가 “이 성도가 내 성도가 됐는지 알아보려면 여집사에게 ‘빤쓰 내려라’ 해보라”고 대구 집회에서 말한 게 2005년 1월이다. 14년이 지났지만 기독교계는 전 목사를 통제하지 못했고 오히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으로 만들었다. “김일성 유일신을 믿는 이들이 청와대를 점령했다”고 말하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의 응원을 받는 전 목사는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주장했다.

전 목사는 이재오 자유한국당 상임고문, 송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 등과 함께 11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기도를 하다보니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없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라가 망하기 전에 지켜야한다”며 “문 대통령이 연말까지 청와대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목사를 필두로 전 목사를 지지하는 목사들이 청와대 앞에서 릴레이 단식기도를 진행할 예정이다.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우측)가 지난 3월20일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을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우측)가 지난 3월20일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을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교계 안에서도 한기총이나 전 목사를 비판하며 선을 긋는 주장들이 나왔다. 

한기총 교단이 60여개지만 대한예수교장로회 주요 교단이 탈퇴했고 대부분 정체 불분명한 군소교단일 뿐이라는 것. 교계 시민단체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7일 “한기총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조직이 아니다”라고 성명을 냈고, 교계 진보성향으로 분류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10일 “더 이상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지 말라”며 전 목사의 막말과 정치개입을 문제 삼았다. 

한기총과 전 목사는 교계와 동떨어진 채 탄생한 괴물일까. ‘빤쓰 목사’란 별명에 가려졌지만 전 목사는 “인감증명서를 끊어오라고 해서 아무 말 없으면 내 성도”라는 말도 했다. 핵심은 목회자의 궤변에도 ‘아멘’으로 화답하는 절대복종 원리가 법과 상식을 넘어 교계 내에서 통제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전 목사는 2008년 1월24일 사랑실천당 창당 발기인대회에서 “비례대표 3석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한 이 정당 창당발기인 명단에 이름을 올린 목회자는 무려 1만2040명이다. 이들이 평신도를 100명씩 확보해 120만표를 얻겠다는 게 기독교정당의 목표였다. 

19대 총선 비례대표 지지 1.2%를 얻은 기독교정당은 2016년 20대 총선 비례대표에서 2.63%(62만표) 지지를 얻었다. 내년 총선에서 전 목사는 기독자유당 비례대표 2석을 목표로 내걸었다. 기독교정당인 한국기독당이 1%를 넘긴 건 2004년이다. 기독교정당의 국회입성 의지는 교계의 오래된 ‘야욕’이다. 

이를 위해 전 목사는 유튜브 1000만 시청자를 조직하고, 지역구 수에 맞게 전국 253개 지역연합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253개 지역연합회장은 ‘북한이 침략해오면 남한 사람 2000만명이 목숨걸고 북한사람 2000만명이랑 같이 죽고 남은 사람들이 열심히 아기를 낳아 복원하자’고 말한 장경동 대전중문교회 목사다. 이를 “우스개 얘기였다”고 해명한 장 목사는 교계TV 뿐 아니라 지상파 방송에도 수시로 출연한 ‘스타 목사’다.  

▲ 장경동 대전중문교회 담임목사
▲ 장경동 대전중문교회 담임목사

전 목사는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위치한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다. 사랑의교회나 소망교회처럼 부자동네에 위치한 대형교회가 아니지만 전 목사가 대한민국바로세우기라는 관변단체 대표, 영화 ‘건국대통령 이승만’ 후원회장 등 정치활동에 열을 올리면서 스타목사로 자리매김했다고 볼 수 있다. 

전 목사의 정치개입은 정교분리 위반 뿐 아니라 실정법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지난해 5월 19대 대선 사전선거운동으로 선거법을 위반해 징역 10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그럼에도 지난 1월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에서 전 목사는 대표회장으로 선출됐다. 

최근 전 목사와 한기총이 주목을 받자 ‘한기총이 2011년 금권선거 이후 대폭 규모가 줄어 기독교를 대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절반의 진실이다. 한기총의 문제와 한기총 외 교단들이 갖고 있는 문제는 유사하다.    

한기총에선 2011년 이광선 목사의 폭로 이후에도 금권선거 논란이 이어졌다. 한기총 안팎에는 ‘10당 5락(10억쓰면 당선 5억쓰면 낙선)’이란 말까지 떠돈다. 한기총 대표회장에 출마하려면 1억5000만원을 내도록 정관에서 규정하고 있다. 애초에 돈이 없으면 출마조차 불가능한 규정을 만들었지만 낮은 곳을 택하라던 예수의 가르침을 실행할 수 있는 교단은 찾기 어렵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은 금권선거 논란에 지난 2010년 ‘총회선거개선을 위한 성명서’에서 “세상 선거보다 불법선거가 판을 친다”며 자성을 촉구했다. 2011년 예장합동 역시 총회 총무선거에서 금품수수 논란이 일었다. 예장고신은 2013년 교단지 기독교보 사장선거에서 금권선거 의혹이 있었고, 심지어 기독교대한감리회는 현재 감독회장이 금권선거 탓에 직무 정지와 회복을 반복하는 중이다. 감리회 금권선거 역시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1년 이광선 목사가 금권선거를 폭로했을 당시 한기총 대표회장은 길자연 목사였다. 그는 아들 길요나 목사에게 교회를 세습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미 주요 대형교회에서 3대 세습을 마친 감리회가 세습금지법을 만들 정도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됐지만 법 제정을 비웃듯 길 목사는 세습을 감행했다. 길 목사가 속한 교단이 한기총에서 활동하지 않는다고 소수의 문제라고 볼 수 있을까.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목사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한민국 어디로 가고있는가?’ 기자회견을 갖고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목사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한민국 어디로 가고있는가?’ 기자회견을 갖고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1989년 설립해 올해 30년을 맞은 한기총의 뿌리는 1960년대 박정희의 삼선개헌을 지지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교회협의회(NCC)가 삼선개헌을 반대하자 독재정권을 지지하며 출발한 조직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0년대 초반부터 대북 유화정책을 반대하고, 개혁법안인 사립학교법을 반대하는 등 수구성향을 고수해왔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받은 자료를 평화나무가 공개했는데 한기총은 2008년부터 올해까지 총 12억188만원을 지원받았다. 이 중 약 8억원을 이명박 정권 시절 지원받았다. 이광선·길자연·홍재철 목사가 한기총 대표회장을 하던 시기다. 지난 2013년 민중의소리 보도를 보면 2008~2012년 문체부가 ‘종교문화활동지원’ 명목으로 총 19억600만원을 지원했는데 이 중 약 8억원이 한기총 한곳에 집중됐다. 

문체부가 발표한 ‘2018 한국의 종교현황’을 보면 문체부 소관 기독교 종교분야 비영리법인은 8곳이다. 각 교단 등의 재산을 관리하는 ‘유지재단’을 제외하면 사단법인은 한기총 한 곳 뿐이다. 때문에 여전히 액수는 줄었지만 유일하게 문체부지원을 받고 있다. 국내 7대 종단이 참여하고 있는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에 기독교 대표로 한기총이 참여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교인들 상당수는 여전히 한기총 가입 여부가 이단을 가르는 기준으로 이해한다.

전 목사가 만드는 전국 253개 지역연합회는 한기총 확장의 한 방편이자 내년 총선에서 한국당과 기독자유당을 돕는 조직으로 기능할 예정이다. 총선 이후엔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조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한쪽에선 극우로 치달은 한기총의 소멸을 예상하지만 다수 정치인과 정치목사들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관련기사 : 이승만 장로, 이명박 장로, 그리고 황교안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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