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17개 기사를 준비해 대대적으로 보도한 ‘민노총 대해부’ 기획은 부실한 논리로 짜여진 과장 보도였다. 한국경제는 ‘민주노총의 권력 비대화’를 확인했다고 썼으나 노조 혐오 통념을 되풀이한 것에 가까웠다.

한국경제는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운영 구조, 규모 확대, 시위·파업 동향 등을 다룬 ‘법 위의 권력 민노총 대해부’ 기획보도를 냈다. 총 17개 기사로 3일 1·4·5면에 기사 7개가 실렸고, 4일엔 1·5면에 4개, 5일엔 1·4·5면에 기사 6개가 보도됐다.

과장은 첫 보도에서 가장 심했다. 지난 3일 1면 “‘무소불위’ 민노총…53개 정부委서 국정에 입김” 기사는 민주노총이 직접 참여하는 정부위원회가 53개라며 “국가정책 결정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썼다. ‘대한민국 제1 권력’ ‘全분야서 기득권 지키려고 실력행사’ 등은 부제다.

▲6월3일 한국경제 1면 "‘무소불위’ 민노총 … 53개 정부委서 국정에 입김" 기
▲6월3일 한국경제 1면 "‘무소불위’ 민노총 … 53개 정부委서 국정에 입김" 기

민주노총 정부위원회 참여는 법에 근거해 20년 전부터 시작됐고 권력 확대와 관련도 없다. 노동자 측과 사용자 측 위원 수는 모든 위원회에서 똑같고 관련 법도 노사정 협의기구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 요구에 따른 것이다. ‘중앙노동위원회’ 경우 노동위원회법 시행령에 아예 “총연합단체인 노동조합이 추천한다”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명시적으로 밝힌다. 민주노총이 ‘최저임금위원회’에 들어간 진 올해로 20년째다. 노·사위원 모두 9명씩이고 한국노총이 노동자위원 5명을, 민주노총이 4명을 배정한다.

민주노총이 총 58개 위원회에 참여할 동안 한국노총은 80여개 위원회에 참여한다. 지역 위원회까지 넓히면 150여개다. 사회적 대화에 적극적인 방침이나 규모 차이로 한국노총 참여율이 더 높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위원회 참여와 권력을 연결짓는 논리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대한상공회의소 정부위원회 참여는 노동계보다 더 많을 것”이라며 “대단한 권력도 아니고 노사정이 동수로 법령에 의거해 협의하는 것인데, 노동자들을 국민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악의적 프레임”이라 평했다.

▲6월3일 한국경제 4면 기사 "한진그룹 경영권 위협 … 그 뒤엔 민노총 있었다"
▲6월3일 한국경제 4면 기사 "한진그룹 경영권 위협 … 그 뒤엔 민노총 있었다"

"한진그룹 경영권 위협 뒤에 민주노총 있다." 한국경제가 지난 3일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를 이끌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 민주노총 추천 위원이 있는 것을 두고 단 제목인데 과장됐다. 노동자와 사용자는 국민연금을 내는 대표 당사자기 때문에 대표 추천 몫을 가진다. 노동자 대표 추천위원은 2명으로 이상훈 서울복지재단 센터장(민주노총 추천)과 김우창 카이스트 교수(한국노총·공공연맹)다. 사용자 대표로 경총은 최준선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 대한상의는 권종호 건국대 로스쿨 교수를 추천했다. 김경율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참여연대 추천)과 조승호 대주회계법인 본부장(공인회계사회)은 지역가입자 추천 위원이다. 연구기관 추천으론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KDI), 정부 추천엔 기획재정부가 이시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연금공단이 박상수 경희대 경영학 교수가 있다. 이상훈 센터장은 이 주주권행사 분과위원회 9명 중 1명이다.

한국경제는 민주노총 조합원이 지난 3월 100만3000명을 기록한 것도 ‘무소불위 권력’ 근거로 썼다. 지난 3월 임금근로자는 2019만여명으로 민주노총 조직률은 약 4.9%다. 전체 노조 가입율은 2017년 12월 기준 1956만여명 임금노동자 중 208만여명인 10.7%다. 지난해 12월5일 박성국 매일노동뉴스 논설위원은 “2016년 사업체실태조사 기준으로 54만1415개 회사법인 중 전경련·경총·무역협회·대한상의·중기협의 회원사 총수는 28만8836개로 사용자단체 조직률은 약 53.3%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6월5일 한국경제 5면 "[최종석의 뉴스 view] 노동 아닌 ‘노총’ 존중 … 민노총에 끌려다닌 정부가 문제"
▲6월5일 한국경제 5면 "[최종석의 뉴스 view] 노동 아닌 ‘노총’ 존중 … 민노총에 끌려다닌 정부가 문제"

한국경제는 지난 5일 “법원·검찰 등에서도 노동계 입김은 거세다”며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법률원 소속 변호사와 노무사가 60명을 훨씬 넘는다는 게 법조계 전언”이라 썼다. “김앤장, 율촌 등 국내 대형 로펌이 20~30명인 것과 비교된다”며 “통상임금 등 노동계가 이끌고 있는 주요 소송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판결이 잇따르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 덧붙였다.

기사만 보면 많아야 30명인 대형 로펌 노동 사건 담당 변호사들이 전문가 60명 규모의 금속노조와 맞붙어 불리하다는 내용으로 읽힌다. 우선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10명, 노무사는 6명이다. 16개 지역본부와 16개 가맹조직으로 구성된 민주노총 전체 법률원 변호사 수는 34명 안팎, 노무사는 20여명으로 조합원 1만8237명 당 1명 꼴이다.

한경은 불과 지난 1월 국내 10대 로펌 변호사가 3200명을 돌파했다며 김앤장(747명), 광장(480명), 태평양(431명), 세종(350명), 율촌(286명) 등의 순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2014년 7월29일엔 삼성그룹 법무팀은 500여명, LG그룹은 300여명, SK그룹은 120여명의 변호사를 운용한다고 전했다.(“힘 세진 사내변호사…삼성·LG·SK '10대 로펌' 규모” 기사)

보수·경제지에 ‘기울어진 운동장’ 없다

한국경제가 말하는 폭력엔 사건만 있고 맥락은 없다. 한국경제는 연재 3일 간 “무소불위 민주노총”을 강조했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전국 고용노동부 청사 점거 20건 중 11건이 2017년 10월 이후 발생한 통계를 공개했다. 한국경제는 “두 달에 한 번꼴 점거…고용부 청사는 ‘민노총 놀이터’” “민노총 폭력 휘둘러도…검·경·정치권, 손 못대고 눈치만 봐”라 적었다.

박정훈 전 알바노조 위원장은 “권력을 가진 자는 점거하지 않는다. 필요하지 않으니까”라 말했다. 2016년 1월 알바노조의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점거 시도는 20건에 포함돼있다. 당시 조합원 60여명은 근로감독관 제도 개선을 요구하려고 노동청으로 갔다. 체불임금 사건을 1년 넘게 해결하지 않거나 ‘사장 처벌해도 세상 안 바뀐다’고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는 근로감독관 사례가 수십 건 접수됐다. 근로감독관 인력·교육 확충을 요구해도 공식 절차를 밟아선 해결되지 않았다. 1시간 만에 연행된 이들은 주거침입 혐의로 약식재판에 21명, 정식재판에 14명이 회부됐고 1심에서 모두 벌금형을 맞았다. 현재 2심 진행 중이다.

▲6월3일 한국경제 5면 "두 달에 한 번꼴 점거 … 고용부 청사는 ‘민노총 놀이터’" 기
▲6월3일 한국경제 5면 "두 달에 한 번꼴 점거 … 고용부 청사는 ‘민노총 놀이터’" 기
▲한국경제 '법 위의 권력 민주노총' 기획 지면
▲한국경제 '법 위의 권력 민노총 대해부' 기획 지면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도 마찬가지다. 예로 한국경제가 불법이라고만 쓴 현대·기아차 비정규직지회 서울고용노동청 점거 뒤엔 15년 묵은 불법파견 사태가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미 2004년 현대차 사내하청 9234개 공정이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했고 대법원은 2010년 현대·기아차 파견법 위반을 확인했다. 불법파견을 확인한 판결만 7건이 쌓였다. 검찰은 2010년 접수된 현대차 불법파견 고소장을 8년 넘게 묵혀뒀고 그동안 고용노동부의 구속력있는 조치도 없었다.

비정규직지회는 14년을 싸웠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05~2006년 파업투쟁, 2010년 25일간 공장 점거 파업, 2012년 296일간 철탑농성 등을 했다. 비정규직지회는 일부 비정규직만 정규직화하려는 회사에 반발해 2014년 광화문 광고탑에서 323일간 고공농성을, 2015년엔 정몽구 회장 자택 앞에서 노숙농성을 했다. 지금까지 비정규직 노동자 3명이 사망했고 36명이 불법점거 등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노조엔 247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금이 청구됐다. 한국경제 기획엔 없는 내용이다.

‘무소불위 민노총’은 보수·경제지의 클리셰다. 문화일보는 현대중공업노조 부분 파업이 한창이던 지난 5월29일 “200만 넘보는 민주노총, 갈수록 무소불위” 제목의 1면 머리기사를 냈다. ‘무소불위 민노총 권력’ 지면 이름을 단 3면엔 관련 기사 3건이 더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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