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소천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영부인이자 여성·민주화운동가 이희호 여사 장례가 ‘여성지도자 영부인 이희호 여사 사회장’으로 진행된다. 김대중평화센터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동교동 사저를 ‘대통령 사저 기념관’(가칭)으로 사용하고 노벨평화상 상금을 대통령 기념사업 기금으로 사용한다고 밝혔다.

김성재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김대중문화센터 상임이사)은 11일 오전 11시 서울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교수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희호 여사 소천 당시 상황과 유언, 장례 관련 절차들을 설명했다.

장례위원회는 예정보다 앞당긴 오전 11시30분부터 조문을 받기로 결정했다. 오는 14일 오전 7시경 발인 형식 대신 신촌 창천감리교회에서 장례 예배가 진행된다. 이 여사는 서울 동교동 사저를 들른 뒤에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장례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장상 전 국무총리 서리와 권노갑 민주평화당 고문이 맡았고,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5당 대표가 고문단으로 참여한다.

김성재 위원장은 “이희호 여사는 두 가지 유언을 하셨다. 첫째는 국민들께서 남편 김대중 대통령과 자신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국민들이 사랑하고 화합해서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정치적 동반자이자 여성운동가, 민주화운동가로 살아온 이희호 여사가 2019년 6월 10일 밤 11시37분경 향년 97세의 나이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천했다. 사진=김대중문화센터 제공
▲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정치적 동반자이자 여성운동가, 민주화운동가로 살아온 이희호 여사가 2019년 6월 10일 밤 11시37분경 향년 97세의 나이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천했다. 사진=김대중문화센터 제공

이어 “두 번째로 동교동 사저를 ‘대통령 사저 기념관(가칭)’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노벨평화상 상금은 대통령 기념사업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도록 말씀하셨다. 이 유언을 받들어 변호사 입회 하에 세 아들의 동의를 받아 유언장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유언 집행 책임은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상임이사에 맡겨 김대중 대통령 기념사업과 민주주의 평화통일을 위한 김대중평화센터 사업을 잘 이어가도록 당부했다고 설명했다.

김대중평화센터 측은 향후 대통령 기념사업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으나 민주주의, 평화, 빈곤퇴치라는 김대중평화센터·김대중도서관 건립 목적에 부합할 것이라 밝혔다. 김 위원장은 “특히 여사님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평생 수고하셨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먼저 강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이 여사 소천 관련 보도와 관련해 “마지막 임종 시 어떤 병으로 소천한 것이 아니고 노환으로 가셨다. 힘이 없으니 눈을 감고 계시다가 병문안 온 분들이 계시면 눈을 뜨고 손 잡고 당당히 마주하셨다”며 “일부 언론에서 의식이 없으셨다던지 암에 걸리셨다는 기사들을 봤는데 전혀 아니다. 노환으로 소천하셨고 돌아가실 때까지 의식을 갖고 계셨다”고 말했다.

이희호 여사는 눈을 감기 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영부인이었던 권양숙 여사를 만난 뒤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박한수 김대중평화센터 기획실장은 10일 오후 4시55분경 이 여사를 찾은 권 여사가 “여사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저희가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여사님은 좋으시겠습니다. 대통령님 곁에 가실 수 있어서”라고 말하자 이 여사가 잠시 눈을 떠 가족들이 놀라워했다고 전했다. 설명에 따르면 오후 10시32분경 차남 김홍업씨가 “아무 염려 마시고 예수님 꼭 잡으세요. 아버님 만나시고 제가 잘 할게요. 사랑하고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뒤 모든 가족들이 찬송가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찬송과 시편23장 낭독을 함께 했고, 11시부터는 비서진 없이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이후 상태가 위독해진 이 여사는 11시37분 만 97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이희호 여사는 대학시절부터 여성지도자 양성과 여성권익신장 활동에 앞장섰다.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회, YWCA 등을 거쳤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혼한 뒤에는 민주의의와 인권, 평화통일을 위한 정치적 동반자로 헌신했다. 김 전 대통령 재임 시기 동안 양성평등법 제정, 여성부 신설, 여성재단 설립 등에 기여했으며 IMF 외환위기 시절 결식아동을 위한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을 창립했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때는 김 전 대통령과 함께 평양을 방문해 북한 어린이 돕기에 나섰고, 김 전 대통령 사망 뒤인 2015년에도 평화적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평양에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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