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KBS 이사장에서 사퇴한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83)가 시사저널 인터뷰(1547호)에서 KBS 이사장 시절을 “타이틀에 비해 가장 결실 없고 힘들었던 때”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3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자택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이처럼 밝혔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9월 KBS 이사장에 선출된 이 교수는 인터뷰에서 “처음 그 자리(KBS 이사장)에 갈 적엔 공영방송에서 잘못된 역사 교육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었다”며 “그런데 방송이 이미 굉장히 정치화돼 있어 국회나 다름없는 아수라장이더라. 이사회도 실질적인 힘이 없고, 어떤 계획도 펼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공영방송에 대해 “내부에 정치세력이 들어와 있고 방송 자체가 완전히 권력화돼 버렸다”며 “그러니 사장 바뀔 때마다, 대통령 바뀔 때마다 왔다갔다 눈치 보기 바쁘다. 특히 새 정부 들어와서 친정부적 노조가 들어와 있으니까 정권에 불리한 내용 있으면 아예 안 내보내거나 편파적으로 보도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외면하고 유튜브 쪽으로 대거 이동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KBS 조직을 겨냥해 “1970~80년대 독점적 권위를 유지하며 흥청망청 조직을 운영하던 습관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서 “1년에 수천억원 예산을 받아서도 적자 체제가 고착화돼 있으며 정치권력이 내부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어 공정성도 잃은 지 오래”라고 주장했다.  

▲ 시사저널 1547호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
▲ 시사저널 1547호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

하지만 과거 경영진 시절 KBS가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시민들로부터 ‘개혁 대상’으로 꼽히거나 끊임없이 불공정성 논란에 시달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교수 발언에 어폐가 있다는 지적이다.

2017년 파업 당시 이인호 KBS 이사장과 고대영 사장 퇴진을 요구했던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의 이경호 본부장은 10일 통화에서 “이인호 이사장은 극우적 인물로 KBS 안팎에서 꼽혀왔다. 방송 공정성을 후퇴시킨 인사로 평가받는 그가 현 KBS 보도 공정성을 문제 삼는다면 도리어 KBS 보도가 과거보다 공정해졌다는 뜻”이라고 반박했다. 

이경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지난 대통령 대담 국면에서 알 수 있듯 KBS는 개혁 성향의 국민들로부터 여러 비판을 받았다”며 “패스트트랙 등 정치이슈에서 지나치게 기계적 중립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KBS가 보수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을 주저하거나 기계적 중립 입장을 보여 개인적으로는 우려하기도 한다. 그런 차원에서 이인호 이사장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본부장은 이 교수가 ‘이사회는 실질적 힘이 없었고 어떤 계획도 펼칠 수 없었다’고 주장한 것에 “이인호 이사장은 KBS 보도에 끊임없이 개입하려 했다”며 “그가 말한 ‘계획’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당시 이사장 직분을 잊고 사장 역할을 하고 싶어서 인터뷰에 그리 말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 교수는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국민의 역사 인식이 점점 더 비뚤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한 뒤 “특히 공산주의에 대해선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 만연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짜 공산주의를 이해하는 애국자들은 공산주의외와는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그걸 모르고 공산주의가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니까 좋지 않냐고 많이들 착각한다. 잘못된 인식으로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나라’라는 말을 하며 우리 국가를 부정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대통령과 주변 386세대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조부 이명세의 친일 행적에 관해 “솔직히 나도 할아버지가 친일파라는 얘길 들어왔는데, 결코 자랑스럽게 생각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부끄럽게만 생각하지 않는다”며 “당시 보통 사람들이 현실에 적응하며 사는 방법을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단편적으로만 알고 청산을 외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소모적인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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