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달 연대기’, 또는 ‘한국 방송 잔혹사’
‘아스달 연대기’, 또는 ‘한국 방송 잔혹사’
[성상민의 문화 뒤집기] 500억대 예산 투입한 드라마라기엔 불안정한 CG와 편집, 노동 문제…내외적으로 계속되는 혼란 이겨낼 수 있을까

지난 6월 1일, CJ ENM이 야심차게 준비한 드라마 하나가 본격적으로 베일을 걷었다. MBC 드라마 ‘히트’와 ‘선덕여왕’, SBS에서는 ‘뿌리깊은 나무’와 ‘육룡이 나르샤’로 많은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김영현, 박상연 각본가 콤비와 KBS ‘대왕 세종’, ‘신데렐라 언니’, ‘성균관 스캔들’, 그리고 CJ ENM으로 이적한 이후에는 tvN을 통해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를 연출한 김원석 PD의 만남으로 주목을 받았던 ‘아스달 연대기’이다.

‘아스달 연대기’는 스타 작가와 감독의 만남으로만 주목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장동건, 송중기, 김지원, 김옥빈을 비롯한 인기 배우가 총출동하며 조연진 역시 김의성, 조성하, 박해준, 유태오, 추자현, 손숙을 비롯한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며 이목을 모았다. 게다가 CJ ENM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이 드라마의 제작비는 한국 드라마 사상 최대 규모인 540억이었다. 사전 제작으로 모두 촬영을 마친 것은 물론, 일부 장면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브루나이 등지로 해외 촬영을 나서기도 했다. CJ ENM은 이미 명실상부한 한국 최대의 미디어 그룹이지만 ‘아스달 연대기’는 CJ ENM이 확보할 수 있는 예산과 자원을 최대한 끌어모아 만든 작품이었다. 달리 말하면 이 작품 하나에 CJ ENM의 명운이 걸렸다 봐도 과언은 아니다.

▲tvN '아스달 연대기' 홈페이지.
▲tvN '아스달 연대기' 홈페이지 화면. 

그러나 ‘아스달 연대기’는 방송 전부터 온갖 문제제기에 휘말렸다. 그것도 모두 ‘방송 노동’과 관련된 문제였다. 방송-미디어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2018년 설립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한빛센터’)와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이하 ‘방송스태프지부’)는 지난 4월 10일 ‘아스달 연대기’의 제작사이자 CJ ENM의 자회사인 스튜디오 드래곤을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이유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고발했다. ‘아스달 연대기’ 촬영에 참여한 방송 노동자들이 한빛센터와 방송스태프지부에 CJ ENM이 고강도의 야간-장시간 촬영을 강행한다며 지속적으로 제보를 보냈기 때문이다.

CJ ENM과 스튜디오 드래곤은 지난 2018년 9월 ‘주 68시간 제작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방송 노동 환경을 개선할 것이라 선언했지만, 그 이후로도 해당 가이드라인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특히 ‘아스달 연대기’의 경우 브루나이 해외 촬영 당시 무려 151시간 연속 촬영을 이어나갔다는 제보와 폭로는 큰 파장과 충격을 만들었다. 이에 한빛센터는 CJ ENM이 故 이한빛 PD의 사망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방송노동환경 개선과 재발방지대책을 이행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한 사항이 지켜지고 있지 않음을 이유로 4월 10일부터 5월 31일까지 52일간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나간 끝에 겨우 CJ ENM과 한빛센터, 그리고 방송스태프지부가 함께 방송노동환경 개선을 논의하는 면담 일정을 6월 중순으로 잡았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아스달 연대기’가 본방송에 돌입했지만, 막대한 제작비에 인기 배우-연출-작가진이 총출동한 작품 치고는 ‘아스달 연대기’는 애매한 상황에 놓여 있다. 분명 시청률은 나쁘지 않다. 닐슨코리아 기준으로 1화는 6.7%, 2화는 7.3%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문제는 본편의 구성이다. 500억대의 예산으로 제작한 드라마라 하기엔 CG나 편집은 계속 불안정한 모습을 드러냈고, 배우들의 연기 역시 쉽게 자신의 배역에 몰입하지 못하는 티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심각한 부분은 이 드라마만이 지니는 고유한 매력이 부족하며, 다른 드라마에서 차용한 지점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이미 많은 드라마 시청자들은 최근 종영된 미국 HBO의 드라마 ‘왕좌의 게임’이 ‘아스달 연대기’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한국의 상고사를 바탕으로 판타지 블록버스터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다짐과는 달리, ‘상고사’를 판타지적 설정으로 풀어내려는 연출은 빈약하거나 난잡하다. 기반이 부실한 상황에서, 드라마의 모든 요소들은 결국 한계를 이미 내재한 상태에서 흘러갈 수 밖에는 없다. 드라마 외적인 촬영에서도 노동 문제에 휘말렸지만 드라마 내적으로도 제작비만 블록버스터 수준일 뿐 엄밀한 준비가 안 된 지점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 '아스달 연대기'의 한 장면.
▲ '아스달 연대기'의 한 장면.

물론 속단은 이르다. 아직 ‘아스달 연대기’는 글을 쓰는 시점에서 아직 2화밖에 방송되지 않은 드라마이며, 언급한 문제점이 추후 개선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러나 ‘아스달 연대기’에 얽힌 온갖 사건·사고들은 한국 드라마가 현재 놓여 있는 상황을 다시 보게 만든다. KBS ‘겨울연가’가 예상 외로 일본에서 흥행하며 ‘욘사마’ 열풍과 함께 한류의 길을 처음으로 다진 뒤, SBS ‘별에서 온 그대’, KBS ‘굿 닥터’, tvN ‘시그널’ 등의 작품이 해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으며 한국 드라마의 외적인 크기는 점차 커지고 있다. ‘아스달 연대기’가 여러 무리수에도 불구하고 상고사를 주된 무대로 삼았던 것 역시, 방송 전부터 일찌감치 작품의 판권을 넷플릭스에 팔았던 모습과 함께 생각하면 판타지 드라마에 친숙한 해외 시청자를 노리기 위한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판타지 장르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없이 제작비를 늘리고, 유명 제작진을 모셔온다고 판타지 드라마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미 한국 드라마는 오랜 시간 동안 인건비에 대한 투자나 전반적인 방송 노동 환경 개선에 대한 노력은 등한시한채, 드라마를 통해 더욱 많은 수익을 얻는 것에만 목을 매었다. 이러한 흐름에 KBS나 MBC를 비롯한 공영방송 역시 함께 동참하며 더욱 상황을 악화하는 것에 기여했다. 뒤늦게 당장의 시청률에 구애되지 않는 장르를 시도하고, ‘쪽대본’에서 탈피해 사전제작을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변화는 방송사를 위주로 돌아간다. 외주 제작사는 물론, ‘방송 노동자’를 비롯해 한 편의 방송을 만드는 다양한 주체들 역시 지속적으로 소외돼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국 드라마는 운 좋게 점차 해외로도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갔지만 ‘아스달 연대기’는 그동안의 과거에 대한 숙고와 성찰이 없는 팽창이 결국 한계에 봉착함을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이다. 어두운 뒷면을 보지 않은채 화려한 겉면만을 드높이는 서사는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자신들이 어떤 이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을 바탕으로 서있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웅장해보이는 한국 드라마의 성채는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물론 이는 방송-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 웹툰, 공연, 음악, 미술, 게임 등등을 비롯한 한국 문화-예술계의 창작 노동 모두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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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06-08 20:23:36
'자신들이 어떤 이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을 바탕으로 서있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웅장해보이는 한국 드라마의 성채는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 깊게 동의한다.

ㅁㅁㅁ 2019-06-08 21:16:49
역사를 픽션으로 만든 환타지
파란색 피?
외계인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