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가장 급증한 범죄유형은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 즉 불법 촬영이다. 이제는 스마트폰을 넘어 드론을 이용한 불법 촬영이 발생하고 있고, 향후 AR·VR 등을 이용한 디지털성폭력 우려도 제기된다. 법이 범죄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사)전문직여성한국연맹(BPW)과 원유철 자유한국당 의원 주최로 ‘미디어 속의 양성 평등을 위한 전략 모색’ 세미나가 열렸다.

대검찰청 ‘2018 범죄분석’에 따르면 성폭력범죄의 급증 원인은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사용 보편화로 인한 카메라 등 이용 촬영과 추행 증가’로 나타났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를 맡고 있는 김현아 변호사(법무법인 GL)는 “디지털 성폭력 특징은 무한 확산이다. 보통 N분의1을 얘기하는데, 내가 N 자체인 것”이라며 “디지털 성폭력 범행은 10대에서도 심각해지고 노년층에서도 심각해지고 있다. 기존 성폭력이 유형력 행사로 분류됐다면 이제는 도구의 문제”라고 분석했다.

지난 5년 모바일에 익숙한 19세 미만 미성년자 피의자는 2012년 181명에서 2016년 601명으로 최근 5년간 3배가량 증가(경찰청 ‘카메라등이용촬영 검거인원’ 2013~2017년 8월)했다. 전체 피의자에서 청소년이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9.9%에서 13.4%로 늘었다. 50대의 경우 전체 성범죄자 피의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에 그쳤지만, 5년 사이 305%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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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소율은 저조하다. 2013년 54.5%였던 것이 2015년 32.3%로 떨어져 2016년 32.2%, 2017년 34.8%로 30% 선에 그치고 있다. 김현아 변호사는 “법이 범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김 변호사는 “1990년대 초반 서울의 한 화장실에서 불법 촬영 카메라가 발견되면서 법적 처벌이 시작됐다. 규정이 없어서 부랴부랴 만들었는데 촬영 행위만 처벌하도록 했다. 당시에는 국민이 이렇게 빠른 속도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가질 걸 예상하지 못해서 유포 행위에는 처벌 규정을 안 만들었다가, 유포가 문제되니까 또 부랴부랴 유포 행위 규정을 넣었다. 그때는 또 ‘촬영 당시 동의하지 않는’ 촬영물 유포만 처벌하게 했는데, ‘리벤지 포르노’라고 지칭되는 불법촬영물 유포에는 또 해당이 안 돼서 몇년 후 부랴부랴 메꿨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식으로 입법 공백이 생기고, 가해자 처벌에도 구멍이 생기지만 피해자 보호에 한계가 생기는 문제가 있다”며 “최근 10대 20대 범행에선 ‘합성’이 많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일상 사진에서 얼굴을 캡처해 나체 사진이나 동영상에 편집해서 넣는 것이다. 가해자는 얼굴만 피해자고 나머지는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내 얼굴이 들어갔을 때 피해자는 어떻게 느낄까, 피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묻기도 했다.

강소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노출 사진을 다루는 현재의 규정이나 기준이 모호해 점차 다양화되는 디지털 성범죄를 포괄적으로 다룰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며 “앞으로는 VR, AR 등 첨단과학기술로 만들어진 현실에서도 음란물들이 계속 생산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상 처벌 기준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경우로 규정돼 있다.

강 교수는 호주에서 법률 및 행정적으로 사용하는 ‘이미지 기반 학대’(image based abuse) 관점을 제안했다. “호주의 이미지 기반 학대에 있어서 ‘이미지’ 개념은 동영상 캡처, 홀로그램 등 시각적 정보를 폭넓게 의미해 당시 과학 기술을 넘어선 기술에도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VR in AR(가상현실 내 증강현실)에서 나타나는 이미지를 통한 성적 가해(학대) 행위도 포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어떤 경우에라도 미디어 기반 성적 학대를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도 “어차피 법은 제정되면 개정될 수 있고 시작해야 변화한다. 최소한 범죄피해를 인지한 상태에서 불법촬영물을 소지하거나 열람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되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온라인을 통한 디지털성범죄 특성상 피해자 구제를 위한 공적 기능 강화도 요구됐다. 김현아 변호사는 “삭제 영상이 있으려면 유포되는 영상도 있어야 한다. 해외에서 삭제업체 주인과 유포업체 주인이 같아서 불법촬영물을 유포한 뒤 특정 삭제업체를 요청하면 지워주겠다고 해 처벌된 사례가 있다”며 “디지털장의사들이 이런 영상을 가지면 가장 광범위한 데이터를 가진 업체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비용이 50~300만원에 6개월 정도다. 미디어활용도가 굉장히 높은 10대들이 피해자 되는 경우 많은데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전했다.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사)전문직여성한국연맹(BPW)과 원유철 자유한국당 의원 주최로 ‘미디어 속의 양성 평등을 위한 전략 모색’ 세미나가 열렸다. 사진=노지민 기자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사)전문직여성한국연맹(BPW)과 원유철 자유한국당 의원 주최로 ‘미디어 속의 양성 평등을 위한 전략 모색’ 세미나가 열렸다. 사진=노지민 기자

한편 이날 토론회에선 미디어리터러시를 비롯한 성인지적 교육의 필요성도 제시됐다. 변신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어느 나라나 디지털 발달 속도가 비슷한데 왜 우리나라만 심각한 문제가 되느냐. 그걸 소유하고 보는 회전율이 우리나라가 심각하다는 의미다. 여성을 성적대상화하면서 전유하는 걸 남성다움으로 학습했다는 문화적 특성이 있다”며 “영상물이 나와도 회전지키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차원에서 효과적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과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황경희 서울 YWCA 여성운동국 간사는 ‘미디어의 성차별적 젠더 재현’ 문제로 △불균형한 성비 △성역할 고정관념 △외모지상주의 △성적대상화 △성폭력 성희롱 정당화 등을 지적한 뒤 “성차별적 내용에 분노하는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중요하다. 어린이, 청소년, 성인들에게도 미디어를 통하는 내용을 선별적으로 취하고 성인지적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리터러시 교육이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양한 분야 제작자들에 대한 성평등 교육, 제작자 성비불균형 해소, 유관부처와 방송사의 의지 등도 강조했다.

최혜민 여성가족부 여성정책과 서기관은 “서울 YWCA 등 협력기관을 통해서 모니터링을 해왔는데 올해 확대된 예산을 통해 새로운 방법으로 모니터링해보려고 시도 중이다. 제보게시판을 신설해서 운영할 예정이고, 심층적으로 모니터링이 필요한 것들을 진행해 언론을 통해 홍보할 계획이다. 1인미디어도 포함해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며 “개선해야 할 사안이 발견되면 지속적으로 요청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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