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5월25일자에 게재된 졸고 ‘한빛 1호기가 안전하다는 궤변들’에 대해, 조선일보의 인터넷기사(5월28일자)에서 경희대 핵공학과 정범진 교수가 “원전이 안전하지 않다는 망상의 날개를 접어라”라는 제목의 반론(?)을 게재하였다. 그런데 필자의 소속 및 성명까지 거론한 글인 만큼, 비판형식을 띈 궤변에 대해 몇 가지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 기고문은, 필자는 경제학자로서 “1)핵공학의 음의 반응도 및 제어봉의 자동 낙하 등과 같은 기본 지식도 모르면서 그저 ‘이념적·정치적 선동’을 하며, 2)원전 격납용기의 밀폐성이 뛰어난 점도 무시하면서 근거 없는 공포심만을 조장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첫째 연구자의 세계에서는 학문 발전을 위해 논쟁이 불가결하다. 가령 이견(異見)이 있더라도, 자기의 전공분야에 자긍심을 가지고 몰입하는 연구자는 당연히 존중·보호되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다. 그러나 전공분야 또는 학위라는 권위(?)만을 앞세워 이견을 가진 이들을 그저 ‘문외한’이라고 배척 및 무시하는 한편, 자기들의 이해관계만을 앞세워 학문적 및 실증적 사실조차 왜곡하는 자들을 ‛마피아 집단’과 다를 바 없다고 단죄한다. 이런 사고(思考)의 집단 또는 개인이야말로, 현대의 학문 조류(潮流)인 복합적 학문의 융합 또는 학제(學際)적 연구에는 무관심한 채, 기득권 유지·확대만을 꾀하여 학문 및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필자가 한수원이 출력폭등에도 불구하고 긴급정지를 안한 점 즉 원자력 안전법을 위반한 안전 불감증 및 초기대응능력의 문제점을 지적한 데에 대해, 정교수는 “핵폭탄이나 체르노빌사고에 비유한 것은 ‘이념적·정치적’ 선동이며, 원자로의 기본적 메카니즘도 전혀 모른다”는 식으로 적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핵폭탄’에 대해 전혀 언급한 적도 없으며, 또 핵폭주사고의 경우에 대처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점에서 체르노빌사고를 소개하였을 뿐이다. 그런데도 핵폭탄까지 들추면서 “명백한 오류”라는 자의적 해석 즉 궤변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엉뚱하게 손가락 끝만 쳐다보고 있는 꼴’이다. 더구나, 연구자 특히 교육자가 금기시하는 ‛색깔론적 용어’까지 서슴없이 내뱉는 배짱(?)에 대해서 경악을 감출 수가 없다. 또 우리사회가 과학에도 이념·정치적 가치관을 요구하였던, 히틀러의 나치시대인가?

셋째 ‘음의 반응도계수’라는 경수로의 자기제어성을 들추면서, 필자가 이런 기본 지식도 모른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본 지식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한 만큼, 필자의 졸저인 ‘재처리와 고속로(경향신문사, 2016년)’에 적힌 ‘원자로 제어’의 설명이, 정교수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므로 부디 일독(一讀)을 권한다. 한편 경수로의 핵연료라면 물이 없을 경우 핵분열은 정지된다. 하지만 붕괴열 때문에 후쿠시마사고같은 중대사고로 이어진다. 즉 중대사고는 단일원인 아니라, 복합원인의 연속적 및 상호적 작용으로 일어난다.

심지어 겨우 핵공학과 1,2학년정도의 지식을 나열하면서, ‘역사상 최대지진이 발생해도 원자로 정지에는 문제가 없다’, 는 식의 단락적인 안전신화를 반복하는 데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기술(공학)은 물론 순수과학적인 사실이라도, 동 시대의 보편적인 합의에 불과한 것으로서 계속적인 시행착오를 거쳐 발전되어 온 것이다. 이처럼 과학적 사실조차 절대불변의 진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안전신화’를 외치는 자세는 이미 공학자의 기본자세를 상실한 것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 한빛원전. 사진=영광군청
▲ 한빛원전. 사진=영광군청

넷째 격납용기 내는 대기압보다 낮은 부압(負壓)이지만, 1일당의 누출량을 제한하는 기준 아래에서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후쿠시마(비등형경수로, BWR)의 경우, 격납용기가 국내 가압형경수로(PWR)보다 작은 대신, 수소발생의 방지를 위해 격납용기를 ‘질소’로 채워 두고 있었다. 그런데도 노심용융사고로 발생한 수소가, 고온으로 열화된 격납용기 뚜껑의 고무패킹 및 지진에 의한 건물손상(틈새)를 통해 누출되어 폭발한 것이다. 덧붙이면, 조선일보의 기고문은, 격납용기의 견고성 문제에 대한 언급을 슬쩍 피한 채 밀폐성만을 강조하고 있다. 국내 경수로의 격납용기가 절대적으로 견고하고 밀폐성이 높다면, 같은 경수로를 가진 유럽과 일본 등은 왜 격납용기 여과배기장치(CFVS)까지 설치하고 있는가?

그리고, 스리마일섬 원전사고시 격납용기 밖으로 방사능의 누출이 있었던 사실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데도, 정교수의 기고문에서만 격납용기의 밀폐성만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기고문은 당시의 카터대통령이 사고발생 사흘 후 평상복 차림으로 현장을 방문했을 만큼 안전하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카터씨는 핵잠수함의 승무원 경험자로서 원자로 개발에 참가하였으며, 1952년 캐나다의 연구소에서 발생한 원자로사고의 대처에 참가하여 피폭한 적도 있다. 이처럼 카터씨는 중대사고의 피해에 민감하였던 만큼, 일단 ‘노심용융이 정지된 상태’에서 이미 누출된 방사능의 저선량 피폭을 각오하더라도, 사고현장을 확인할 책무를 보통사람 이상으로 느꼈을 것으로 짐작한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사실과 이론에 근거한 논쟁을 여태껏 거절한 적이 없지만, 더 이상 정교수의 망상(妄想) 및 궤변을 상대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따라서 원자력학회가 공개토론회의 개최를 통해, 이번 사건을 둘러 싼 사실여부를 확인할 기회를 제공하기 바란다. 2016년 3월에 원자력학회의 이슈위원회 초대로, ‘건식 재처리와 고속로’문제를 둘러싸고 필자 단독으로 전문가들과 약 3시간에 걸친 논쟁을 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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