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오염물질을 배출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조업정지 처분을 받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조업이 정지되면 재가동에 수개월이 걸리고 최악의 경우 시설을 재축조하는데 수조원 손실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지방자치단체의 탁상행정 때문에 국내 기간산업이 추락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핵심은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블리더(bleeder)라는 안전밸브를 개방해 오염물질을 배출했느냐 여부다. 블리더는 고로(용광로)가 안정되도록 하고 폭발방지를 막으려고 일정한 압력을 유지하도록 만든 안전밸브다.

현대제철과 포스코는 비정상적 상황을 막으려고 블리더를 개방했고 블리더 개방시 나오는 가스에 포함된 물질의 유해성은 미미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조업정지 처분을 받으면 고로 온도가 떨어져 쇳물이 굳어버려 재가동까지 수개월이 걸리고, 고로를 재축조하는 시간이 최대 24개월까지 걸려 8조원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철강업계는 조업정지 후 고로를 재가동해도 공정상 안전밸브를 열 수밖에 없는데 대안이 없는데도 지자체들이 유해물질을 배출했다는 이유만으로 무리한 행정처분을 내렸다고 주장한다.

관련해 언론은 일제히 지자체가 이런 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행정처분을 내려 철강업계가 ‘초비상’에 걸렸고, 최악의 경우 국내 기간산업이 흔들릴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언론 보도에선 지자체가 행정처분을 내리기까지 과정이나 유해물질 배출의 심각성, 철강업체들의 법률 위반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이 문제는 포스코 광양제철소 직원이 내부고발하면서 불거졌다. 이 직원은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고로(용광로)를 정비하고 재가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스와 분진 등에 섞여 있는 유해오염물질을 대기오염 방지시설을 거치지 않고 블리더, 즉 안전밸브를 열어 배출시킨다고 전남도에 고발했다.

전남도는 고발 내용을 확인하려고 현장을 찾았다. KBS는 지난 3월7일 전남도와 함께 배출 현장을 보도했다. 당시 KBS는 “높이 110m의 거대한 용광로. 광양제철 제1고로 상부에서 시커먼 연기가 치솟아 오른다. 시커먼 연기는 이내 근처 하늘을 삼킬 듯 뒤덮는다”고 현장을 고발했다. KBS는 “원래는 집진기 등 대기오염 저감 시설을 거쳐 굴뚝으로 내보내야 하지만, 아무런 여과 없이 오염물질을 외부로 무단 배출하고 있다. 고로 안의 석탄재와 일산화탄소 등은 미세먼지 발생의 주요 원인 물질”이라며 “포항과 광양제철소 고로는 모두 9기로 연간 120여 차례 정비와 재가동을 한다. 한 차례 정비와 재가동 때마다 길게는 한 시간. 짧게는 30~40분 동안 고농도 오염물질을 무단 배출한다”고 보도했다.

언론은 환경단체가 고발하고 이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행정처분을 내린 것처럼 보도하지만 애초 내부 고발에 따라 전남도가 현장을 적발했고, KBS 보도가 파장을 일으키자 환경단체가 뒤늦게 고발했다.

전남도는 내부고발 내용대로 유해물질배출이 이뤄졌다고 보고, 고용노동부에 법 위반 내용을 물었다. 고용노동부는 ‘이상(異常) 공정’에 따라 안전밸브를 개방한 게 아니라는 결론을 냈다. 환경부 역시 대기환경보전법을 위반했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안전밸브는 고로(용광로)의 폭발 방지를 위해서‘만’ 개방을 허가하도록 돼 있어 보통 때와 다른 ‘이상공정’ 때만 여는데 철강업계는 ‘정비공정’ 중 안전밸브를 개방했다.

▲ 지난 3월 KBS 보도 화면.
▲ 지난 3월 KBS 보도 화면.

고로 공정은 1차 가공된 코크스를 섞은 뒤 2차로 소석희, 그리고 열을 가하기 위해 미분탄을 넣는다. 마지막으로 철광석 원료를 넣어 녹이면 쇳물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가스가 발생하는데 중력집진장치와 세정집진장치를 거쳐서 가스를 배출하는 게 정상이다.

또한 고로(용광로) 온도가 높아 보통 8주 만에 온도를 하강시켜야 하는 작업인 ‘쉬풍’을 하기 위해 블리더 안전밸브를 연다. 그리고 다시 온도를 높이기 위해 ‘열풍’ 작업을 한다. 철강업계가 8주마다 한번 씩 이런 ‘정비공정’을 하면서 안전밸브를 개방해 오염물질을 배출시켰다는 게 지자체의 주장이다. 다시 말해 폭발 방지를 위해 허가된 장치인 안전밸브를 정상적 공정 때도 개방해 오염물질을 배출시킨 것은 법률 위반이라는 얘기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언론이 안전밸브 개방이 불가피한지 철강업계 입장만 대변하다보니 안전밸브 개방의 위법성이나 저희가 왜 행정처분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이 부족하다”면서 “3개도(경북, 충남, 전남)와 3개청이 같은 눈으로 보는 것을 탁상행정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안전밸브 개방 때 이미 설치된 대기오염 방지시설을 거치지 않고 가스를 배출시켰다는 것도 언론 보도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지자체와 업계 전문가에 따르면 블리더는 4개의 관으로 구성돼 있고, 그 중 ‘세미 블리더 밸브’ 라는 대기오염 방지시설이 있다. 정상적이라면 세미 블리더 밸브를 거쳐 천천히 가스를 배출해 오염물질을 막을 수 있는데 시간과 비용을 단축하기 위해 이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한꺼번에 안전밸브를 개방해 오염물질이 배출한다는 것이다.

이번 조업정지 처분으로 철강업계가 초비상에 걸렸다는 주장도 과하다는 지적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고로공정이 정지돼 쇳물이 굳어버리는 등 피해가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조업정지 처분 대신 법 위반 사항이 확인된 용광로 한 개 당 3000만원의 과태료를 납부하는 방법이 있는데도 조업정지로 수조원의 손실이 발생한다고만 강조한다.

철강업계와 지자체의 갈등이 조정될 가능성도 전혀 없진 않다. 충남도는 한달 반의 유예기간을 두고 오는 7월 15~10일 조업정지 처분을 내릴 계획이고, 전남도의 경우 18일 광양제철소 측이 제출한 의견서를 바탕으로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수개월 동안 안전밸브의 기술적 문제를 파악하고 현장을 적발했던 한 공무원은 “누가 봐도 법을 위반했기에 행정처분을 내렸다. 이번 조치는 지금이라도 있는 시설인 대기오염 방지시설을 거쳐 가스를 배출하고 방지시설을 늘리거나 보완하라고 유도하려는 의도가 강하다”고 말했다.

블리더 개방으로 배출된 오염물질의 유해성 문제는 양측 모두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 5월 배출 입구에 드론을 띄워 오염물질 수치를 측정해 현재 분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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